규제 대폭 완화·전략적 비축 자산 약속
‘가상화폐 부정적’ SEC 해임 여부 촉각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선 효과에 힘입어 사상 처음 개당 가격이 8만달러를 돌파했다.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업비트 고객센터 전광판에 비트코인 개당 가격이 10시 20분 기준 8만426달러를 나타내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시장 열기가 뜨겁다. 가상화폐 대표인 비트코인은 트럼프 당선 이후 천장이 뚫린 듯 무서운 기세로 오르고 있다. 가상화폐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게 작용하면서다.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상화폐 업계는 트럼프 당선으로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중’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 당선으로 들뜬 업계 분위기를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선거 유세 기간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임해서라도 규제를 완화하고,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자산으로 삼겠다고 말한 바 있다.
7월 ‘비트코인 2024 콘퍼런스’에서 트럼프는 미국 정부가 현재 보유한 비트코인을 팔지 않겠다며 “이것은 사실상 미국의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량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지구의 가상화폐 수도이자 세계의 비트코인 슈퍼파워”라며 친 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비트코인은 랠리에 돌입했다. 대선 전날에 6만8000달러 선이던 비트코인은 선거 당일인 5일 7만5000달러 선으로 치솟았다. 7만5000달러는 3월 기록했던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수치다. 이후 8일에는 7만7000달러 선으로 역대 최고점을 달성한 후 10일 오후 1시 기준 8만1000달러를 넘어서며 초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당장 월가의 관심은 가상화폐에 보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SEC 위원장 교체 여부에 쏠리고 있다. SEC 위원장인 게시 겐슬러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첫날 자르겠다”고 말할 정도로 가상화폐에 강경한 인물로 분류된다. 지난해 SEC는 가상화폐 최대 거래소인 코인베이스가 거래소임에도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약 7건의 증권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하기도 했다.
가상화폐에 친화적인 공화당이 미국 상·하원을 장악하면서 비트코인이 미국의 전략자산으로 비축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신시아 루미스 상원의원은 8월 연준이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보유하고, 5년 간 100만개를 매입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루미스 의원은 6일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비트코인을 전략자산으로 비축할 것”이라고 거듭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전세계 비트코인 공급량의 1%에 해당하는 21만개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했던 상원을 공화당이 탈환하면서 미국 의회에 계류 중인 가상화폐 법안들도 통과에 속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5월 공화당이 우세한 하원에서 통과한 ‘21세기 금융 혁신 및 기술 법안’은 상원에서 좌절된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가상화폐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에 규제 당국이 더 수용적인 태도를 가지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WSJ에 따르면 차기 상원 은행위원회 위원장에 오를 가능성이 높은 팀 스콧 역시 가상화폐에 긍정적인 인물이다. 스콧은 가상화폐 거래소를 운영하는 기업 요건을 완화하는 새 가상화폐 규제 초안을 구상 중이라고 WSJ은 전했다.
크리스틴 스미스 블록체인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전환점을 맞았다”며 “최악의 상황은 지나갔고, 업계가 지속 가능한 정책을 수립할 길을 맞이했다”고 말했다.
다만 가상화폐 시장이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변동성이 큰 자산을 다루지 않으려는 은행이 가상화폐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달러가 아닌 가상화폐를 보관할 수 있는 은행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WSJ은 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자신의 공약을 얼마나 실천할지도 미지수다. 데이비드 예맥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유세에서 몇 가지 엉뚱한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가 하는 말을 들으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상화폐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며 새 정부에서도 규제가 이어질 여지가 남았다고 지적했다.
김빛나 기자
binna@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