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적 회복 이후 개그맨 커리어 뒤로 하고 사업·작가의 길로
외식사업 운영 외에도 베스트셀러 인문학 강연자로 종횡무진
“죽기 직전까지 기대와 설렘으로 한 발짝씩 앞으로 걸어갈 것”
개그맨 겸 작가 고명환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유명 개그맨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베스트셀러 인문학 책을 연이어 출간하며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고명환(52) 작가. 그는 과거 개그맨으로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지만, 그를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넣었던 대형 교통사고는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사고 이후 ‘더 이상 끌려다니는 인생을 살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고 작가는 동서양 인문학 고전을 탐독했다. 그리고 이는 그에게 삶을 새롭게 추동하는 원동력이 됐다.
고 작가는 2000년대 초반 둘도 없는 콤비인 개그맨 문천식과 함께 MBC ‘코미디 하우스’에서 ‘와룡봉추’ 코너로 큰 인기를 얻었다. 전국에 있는 밤무대를 하루 다섯 군데씩 돌았고, 잠은 3시간을 채 자지 못했다. 그래도 4~5년 무명 생활 끝에 찾아온 전성기인 터라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건 줄 알았다. 서울에 집도 두 채나 샀다. 그런데 막상 그 하루하루가 행복하지는 않았다.
고 작가는 당시를 회고하며 “그냥 늘 힘들고 늘 쫓기고 그런데도 우리는 언젠가 행복한 날이 있을 거라며 참고 살라고 하잖아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실은 그게 아니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러던 그에게 삶의 전환점이 된 계기는 다름 아닌 2005년 발생한 불의의 교통사고였다. 당시 KBS ‘해신’이라는 드라마를 찍고 서해안 고속도로로 상경하던 때 그는 매니저의 졸음운전으로 발생한 15톤 트럭과의 대형 사고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고 작가는 “그 당시 우리는 거의 다 시속 190㎞ 이상씩 다녔던 것 같다”며 “완도에서 촬영하고 충청도에서 촬영하고 그랬는데, 디지털로 전송이 안 되던 시기라 내가 현장에 도착하지 못하면 드라마 출연진과 제작진 120명이 모두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심각한 뇌출혈과 수백 군데의 골절, 심장 출혈 등 생명을 위협하는 부상 속에서 그는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직감했다고 한다. 고 작가는 “사고 직후 목포에 있는 병원을 들렀다는데, 거기서는 보자마자 ‘이분은 거의 죽었다. 빨리 서울 큰 병원으로 가라’고 그랬다고 한다”며 “결국 삼성의료원에서 눈을 떴는데, 심장 안에 핏덩어리가 너무 커서 언제 터질지 모른다며 빨리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고 유언할 거 있으면 정리하라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그제야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일생 동안 ‘진정한 나’를 잃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내가 해놓은 업적, 예를 들면 사업도 잘 일궈냈고 애도 잘 키웠고 대통령상도 받았고 그런 어떤 업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죽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죽음의 순간까지 가보니 업적은 일(1)도 없었어요. 단지 내가 진짜 왜 이렇게 ‘남들이 말하는 대로만 살았지?’라는 생각만 들었어요. 34년을 그렇게 살았더라고요.”
죽음의 문턱 앞에서 그는 어영부영 살았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진정한 자기만의 삶을, 마땅히 살아야 할 삶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생에 대한 의지였을까. 길어야 이틀이라던 고 작가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기적적으로 회복했다.
개그맨 겸 작가 고명환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교통사고 이후 그는 개그맨 활동을 중단하고 현재는 사업가이자 방송인,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고 작가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져 회복하던 당시 수많은 고전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책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길은 무엇이었을까. 고 작가는 그 고민에 대한 해답으로 외식사업과 글쓰기를 꼽았다.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거랑 일기 쓰는 거 잘했거든요. 어쩌면 개그맨의 재능보다 이쪽 분야가 내 미래를 열어줄 창이 될 거라 생각했어요. 조금씩 해보자고 결심하게 된 거죠.”
고 작가는 대학원에 진학해 극작을 전공하며 글쓰기를 연마했다. 4차례에 걸친 사업 실패도 있었지만, 끝내 메밀국수집과 돼지갈비집을 성공시키며 연 매출 수억 원을 기록하는 성공한 외식사업가가 됐다. 고 작가는 “사실 이 메밀국수집은 본격적으로 책을 쓰려고 차린 가게였다”며 “성공해도 좋고, 실패해도 좋다는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했는데, 가게가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가를 깨알같이 적어서 투자한 만큼을 회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공한 외식사업가로서 그가 생각하는 사업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절대로 먼저 고객의 돈을 뺏으려 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 작가는 “사업은 시소를 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많은 것을 고객에게 제공하고 고객을 무겁게 만들어서 내가 올라가는 구조, 즉 남을 통해서 내가 올라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장사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 역시 아직 완벽하게 못 하고 있지만, 이 메밀국수집도 육수 공장 차리고 면 공장 차리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만 너무 집중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며 “그런데 언젠가 메밀국수를 드시던 손님 두 분이 나를 조용하게 부르더니 ‘사장님 우리 동네에 있어 줘서 너무 고마워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때 비로소 가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방향성이 분명해졌다”고 설명했다.
개그맨 겸 작가 고명환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고 작가는 현재 ‘손님을 먼저 우선해야 한다’는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으로 외식사업을 운영하는 한편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 ‘이 책은 돈 버는 법에 관한 이야기’, ‘나는 어떻게 삶의 해답을 찾는가’ 등 교양서적과 강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는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다. 그는 올해도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라는 인문학 책을 출간하며 주도적으로 개척하는 삶의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고전이 읽기는 어려운데 읽다가 뭔가를 딱 깨달아버리는 순간 심장이 뒤집어지면서 그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거죠. 고전이라고 하면 몇백 년, 몇천 년 동안 살아남은 책이잖아요. 사람들이 책을 읽고 깨달아 보니 ‘이런 위력이 있구나’를 스스로 알게 되는 거예요. 사람들이 스스로 ‘사람 안 변한다 안 변한다’ 하는데, 그거는 몰라서 하는 소리고 사람은 무조건 변합니다. 게으른 사람도 열정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고, 패배감에 젖은 사람도 긍정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고, 누워 있던 사람도 다시 일어나서 움직이게 할 수 있어요. 이게 단순히 설득으로는 안 돼요. 책을 읽고 본인 스스로가 직접 깨달아야 그때 그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고 작가는 교통사고 이후 ‘단 1초도 내가 가기 싫은 시간에 내가 가기 싫은 장소에 가지 않는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34년간 끌려다닐 만큼 끌려다녔으니 남은 인생은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굳게 결심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로 가득한 그는 저술과 강연 활동 외에도 유튜브를 통해 수만 명의 구독자와 직접 소통하고 있기도 했다. 그가 올리는 ‘아침 긍정 확언’은 미래에 바라는 모습과 희망을 아침마다 외치는 일로, 이에 동참하는 사람은 계속 늘고 있다.
“산이든 바닷가에서든 돌탑 쌓여있는 거 보잖아요. 맨 밑에 돌탑 쌓을 때는 사실 돌 하나가 별로 소중하게 느껴지진 않는데, 내 키만큼 쌓아놓고 아슬아슬한 때에 그 위에 한 개의 돌을 얹으면 엄청 가치 있게 느껴지죠. ‘아침 긍정 확언’도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 올린 힘의 소중함을 느끼며 지속하고 있습니다.”
시한부 선고까지 받았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한 고 작가에게 ‘극복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지 물었다. 그는 ‘긍정의 마인드’라고 답했다.
“요즘 사람들은 옳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시간을 오래 씁니다. 저는 강연에 나가서 ‘그렇게 하지 말고, 빨리 결정해서 행동에 옮긴 뒤에 그 결정을 옳게 만들면 된다’고 말해요. 절대 정답을 찾으려고 하는데 정답은 없는 거예요. 내가 안 간 길에 대해서 ‘저쪽으로 갈 걸’ 하면서 후회하거나 그쪽을 아쉬워하지도 말아야 해요. 그냥 내가 결정한 무언가가 있으면 거기에만 집중하는 거죠. 결국 내가 결정한 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옳게 만들 수 있다는 긍정적 믿음이 저에겐 극복의 힘입니다.”
고 작가는 책을 집필하기 위해 통영 욕지도에 정례적으로 방문한다. 현재는 내년에 출간할 목적으로 ‘몸과 정신의 근육’에 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고 작가. 인터뷰 내내 그의 눈빛은 청년처럼 빛났고, 그의 말 속에선 조지 버나드 쇼, 노자, 도스토옙스키, 헤르만 헤세 등 불멸의 사상가와 작가들이 자연스레 등장했다. 앞으로 고 작가에게 남은 인생의 목표는 뭘까.
“마지막 죽는 날까지도 저는 제가 녹슬어 사라지지 않고 닳아서 사라져야겠다고 생각해요. 뭔가를 향해 계속해서 한 발짝 걸어 나가는 기대와 설렘으로 살고 싶어요. 죽기 1초 전까지도 그렇게 하다가 죽으면 저는 얼마든지 잘 죽을 수 있다고 확신하거든요.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도 ‘내일 당장 지구의 종말이 와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죽기 직전까지 기대와 설렘을 가지겠다’는 말로 해석하고 있어요. 여러분도 사과나무를 많이 심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개그맨 겸 작가 고명환이 10월 29일 서울 용산구 헤럴드스퀘어 스튜디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