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함영훈 기자] 한때 한반도의 3배가 넘는 튀르키예 아나톨리아땅을 호령하던 고르디온(Gordion Ancient City)엔 지금, 인걸은 간데 없고, 2800년전 궁성 잔해만 남아 황량한 모습이다.
주변은 고르디우스왕, 미다스왕 등 프리기아(Phrygia) 왕국을 이끌던 영웅들의 고분군이 있고, 그 중 가장 큰 미다스 왕릉이 사방 지평선인 이 땅에 우뚝 솟아있다. 고르디온 도성 터에서 보면 근처에 예쁜 주유소도 보인다.
고르디온 도성 터. 뒷편 고분군 중 가장 능이 미다스 왕릉이다. |
바르한 지형 |
바람이 한쪽방향에서 많이 불어오는 바람에 산처럼 흙과 모래가 치우친 모습으로 쌓인 ‘바르한(Barchan) 사막 지형’이 마치 왕릉 중 하나인 것 처럼 서 있기도 하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대나무숲 메아리로 인해 망신당한 임금 미다스. 손 대는 것 족족 황금이 된다는 미다스 왕은 광업·섬유산업·농업·도예·제빵산업의 진흥, 무역과 화폐경제를 통한 국부의 확장 등 숱한 업적을 남긴 것으로 고증된다.
그럼에도 업적은 덮히고 근거없는 놀림거리가 2800년이나 지속된 불운의 임금이다. 그는 이 고르디온의 주인이던 고르디우스 왕의 아들이자 후계 왕이다.
고르디온 박물관 앞에 그려진 미다스왕의 모습. 어린이 청소년 관람객을 위해 만화처럼 그렸다. |
미다스의 무덤 발굴 조사결과, 그의 손에 닿기만하면 황금이 된다는 구전설화가 무색할 정도로, 황금이라고는 작은 흔적 조차 없었고, 대신, 그가 개발했다는 주석 광산과 그가 활성화시켰다는 화폐경제 얘기만 고증되고 있는 상황이다.
미다스 아버지 고르디우스 얘기를 꺼내면, 모두들 ‘매듭’ 부터 떠올린다. 기원전 800년 무렵 지금의 튀르키예 땅, 소아시아 아나톨리아 고원을 차지하고 있던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신전에 자신의 마차를 바치고는 복잡하게 매듭을 묶어둔다. 바로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다.
고르디우스 왕궁이 있던 고르디온은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서쪽으로 90㎞ 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다.
고르디온 유적 전경 |
3200~2400년 전 고르디온 사람들이 살던 유적은 21세기 현재 비록 황량하지만, 지난해 하이포 스타일(투르크+로마 양식) 목조 사원 5곳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풀기 어려운 문제’를 뜻하며, 고르디우스 매듭을 푸는 행위는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된다. 고르디온 지역에서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마차를 제우스 신전에 봉안한 뒤 복잡한 매듭으로 묶어둔다.
그리고는 “이 매듭을 푸는 자, 아시아의 왕이 되리라”는 신탁을 남기게 된다. 이 말 속의 아시아는 소아시아 즉 아시아대륙의 축소판 처럼 생긴, 아나톨리아를 말한다. 이스탄불을 제외한 한반도의 3.5배 가량되는 튀르키예 대부분의 지역이다.
앙카라에서 출발해 고르디온 도착 직전 도로변 풍경 |
이 매듭을 풀기 위해 수많은 영웅들이 도전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500년 가량 지났을까. 프리기아 원정에 나선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제우스 신전을 찾아가 매듭 풀기를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자, 칼로 잘라 버렸다.
앞서 그는 이집트를 정벌할 때 최고 신전 부터 찾아가 제관 성직자를 무기로 위협해 자신이 이집트의 주인이라는 신탁을 받았다는 것을 강제로 알리게 한 바 있다. 신탁을 들은 이집트 백성은 제관에 대한 믿음 때문에라도 이를 수긍했고, 알렉산드로스는 손쉽게 이 나라를 손에 넣었다고 이집트 사학자들은 전한다.
알렉산드로스가 고르디온왕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린 다음 지중해 동편의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 것은 ‘반칙’이라는 논평이 이곳에선 우세하다.
"님아, 매듭을 그 칼로 자르지 마오" 고르디온 박물관 앞 알렉산스로스의 모자이크 그림. |
이집트에 이어 상습적인 반칙이라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신탁에 의존하던 시대 선무공작을 잘한 것이다.
그러나, 반칙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케도니아의 영광은 단기에 소멸되고, 중동,인도지역 그의 정복지는 원래 주인들이 대부분 곧바로 되찾는다.
소아시아는 알렉산스로스가 지배를 선언한지 불과 몇 십년 되지 않아 마케도니아 영향력이 사라지고, 앗시리아, 리디아, 프리기아 및 히타이트 잔존세력 등 5~6개 국가가 병존하게 된다.
이집트는 알렉산드로스의 하수인인 프톨레메우스와 그의 후손 클레오파트라가 지배하지만, 300년후 로마에 지배권을 넘겨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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