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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정리=함영훈 기자]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에 자리한 고장, 함양은 그 이름만큼 따듯한 볕으로 눈부시다.

북쪽으로 덕유산이 위치하고 남쪽으로 지리산이 감싸 안고 있는 듯한 함양은 토지의 약 80%가 산지다. 그래서인지 나무들의 다채로운 향연이 고장 곳곳 이어진다. 함양읍 중앙에도 울창한 숲이 있는데 특별하고도 오래된 이력을 가진 함양 상림이다.

상림 꽃무릇 [촬영=박산하]
함양 상림 빅토리아 수련 [함영훈 기자]

함양의 색을 가장 뚜렷하게 발견할 수 있는 곳도 이 숲이다. 함양이 가진 자연환경과 역사, 인물을 잇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장소이기 때문이다. 함양군에서는 상림의 사계를 함양 8경 중 제1경으로 꼽고 있으니 함양을 방문한다면 꼭 들러야 할 여행지다.

함양 상림은 사람의 힘으로 조성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함양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조성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함양읍의 중앙을 흐르고 있는 위천은 매년 홍수가 발생해 백성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최치원 선생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 옆으로 둑을 쌓았고 그 둑을 따라 촘촘하게 나무를 심었다. 최치원 선생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혜가 스민 숲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가 많은데 흉년이면 백성의 배고픔도 달래주었다고 한다.

숲에는 최치원 선생의 지극한 효성도 담겨있다. 그의 어머니가 상림에 산책하러 갔다 뱀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최치원은 숲을 향해 위협을 가하는 동물이나 곤충들을 크게 꾸짖었단다. 그의 효성 때문인지 지금도 뱀 같이 위협적인 생물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뾰족한 조릿대를 많이 심어둔 까닭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함양 상림은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숲 주변으로 공연 무대와 전시관 등 시설물이 생기더니 상림공원이란 이름이 더해졌다. 그래도 여전히 이곳 주민들은 오랜 이름, 상림숲이란 명칭을 잊지 않고 부르고 있다.

공원 입구의 관광안내소와 야외무대를 지나면 본격적인 숲길이 펼쳐진다. 맨발이 시리지 않은 계절에는 많은 이들이 길게 이어진 맨발걷기길에서 숲을 즐긴다. 고운 흙길과 지압 보도, 울창한 그늘이 있어 걷기만 해도 절로 건강해질 것 같다. 1.6km에 이어진 숲길은 물이 자주 범람했다는 위천 옆으로 울창하게 이어져 있다. 현재 하천은 메마른 모양새지만 그 옛날 백성을 위협했던 홍수를 막아준 든든한 방패막이 이 숲이었다니! 새삼스레 놀랍고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상림숲 [함양군 제공]

활엽수 120여 종 2만여 그루로 채워진 숲은 갑자기 다른 세상에 빨려들어 온 듯 그 풍경이 눅진하다. 갈참나무와 졸참나무 등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가 주를 이루고 보리수와 산수유나무, 화살나무에서 덩굴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해 마치 산 하나를 품은 듯하다.

초가을이면 가을꽃이 한들거리고 그중 30만구의 붉은 꽃무릇이 장관을 이룬다. 꽃무릇은 겨울에도 설경 사이 푸릇한 대가 올라와 색다른 풍경을 보인다. 완연한 가을에는 길 위에 활엽수 낙엽이 알록달록한 양탄자가 된다. 은은하게 빛이 드리워지는 오후에 숲은 더욱 깊은 온기를 낸다. 언제 찾아도 그 계절에 꼭 맞는 한 폭의 풍경이 반갑게 맞이하리라.

숲으로 들어서는 곳에 2층 누각이 있다. 정자에 서면 멀리 지리산이 보인다고 해 이름 지어진 망악루는 현재 함화루로 이름이 바뀌었다. 1380년에 토성으로 쌓았다가 1729년에 석성으로 다시 축조한 함양 읍성의 남문으로 삼문(三門) 중 유일하게 남아 있다. 그밖에 아담한 정자들과 길 중간에 있는 약수터는 숲의 자그마한 쉼터다. 개항기 때 세워진 함양 척화비, 1923년 최씨 문중에서 세운 함양 최치원 신도비도 볼 수 있어 숲의 역사를 넘기듯 배워가는 즐거움도 있다.

약수터 [함양군 제공]

고요한 나무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 보자. 같은 수종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진 연리목을 발견한다. 남녀의 사랑이 이뤄지고 애정이 두터워진다는 의미를 지니는 연리지와 연리목은 종종 볼 수 있지만 상림에는 색다른 또 한 그루의 나무가 있다.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 수종이 서로 다른 나무가 합쳐진 연리목이다. 하나가 되기까지 긴 시간과 수고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경쟁이 아닌 화합과 배려를 의미하는 나무가 아닐까. 또 다른 특이한 나무도 만난다. 몸뚱이에 사자머리 모양의 혹 하나를 달고 있는 나무다. 혹은 나무에 생긴 일종의 암으로 이미 고사해야 할 정도로 아픈 나무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 스스로 회복하고 있는 대견한 나무다.

“서어나무 잎들도 고운 선생 눈 맞춤에 숨 쉬며/ 딱따구리들 서어 껍질 쫓으며 고운의 말씀들 삼키며/ 뿌려진 한 톨의 씨앗으로 발아된 천 년의 유혹이다” 이 고장에서 자라 30년 넘게 상림을 오가며 여러 글로 풀어낸 박행달 작가의 시 〈천년의 유혹. 상림〉은 시인의 상림을 사랑하는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숲 주변으로 공원 시설도 둘러볼 만하다. 공연 무대와 음악분수, 함양의 특산물인 산삼을 주제로 한 전시관과 최치원 선생의 뜻을 기리는 역사 공원 등이 자리한다.

함양 상림 연못 위 구름다리 [함영훈 기자]

울울창창 숲 옆 습지엔 우리의 전통 수련 외에 호주수련, 빅토리아 수련, 핑크레오파드스, 불스아이 등 지구촌 습지식물이 다 모였다. 습지 사이 구름다리와 돌길은 2030세대 커플의 포토포인트이다.

함양은 선비의 고장이기도 하다. 함양을 대표하는 인물, 조선 시대 성리학자로 일두 정여창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 보자. 개평한옥마을에는 100년이 넘은 60여 채의 고택이 들어서 있다. 전통 가옥과 돌담이 어우러지는 예스러운 마을을 사붓이 산책하기 좋다. 마을에는 정여창 선생의 고택인 일두고택도 있다. 사대부가의 품위가 고택 곳곳 스며있는 곳으로 사랑채 앞, 부드럽게 굽은 소나무가 특히 멋스럽다. 일두고택 앞에는 500년을 이어 빚어 온 가양주를 시음할 수 있는 솔송주문화관이 있다.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함양남계서원은 정여창 선생의 뜻을 기려 세운 서원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한국의 서원 중 하나로 누마루부터 사당에 이르기까지 배치가 정갈하다. 강당을 앞에, 사당을 뒤에 배치하는 우리나라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을 처음 도입한 곳이다. 명성당에서 바라보는 너른 들판의 광경이 마음을 넉넉하게 만든다.

함양대봉산휴양밸리는 대봉산의 운치 있는 절경을 집라인과 모노레일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산등성이를 따라 정상까지 오르는 모노레일은 대봉산의 단풍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대봉산을 더 짜릿하게 즐기고 싶다면, 집라인에 도전해보자. 5코스로 이뤄진 약 3km의 집라인은 상상 이상의 스릴을 경험할 수 있다.

당일 여행 코스는 상림→개평한옥마을→함양남계서원, 1박 2일 여행 코스는 첫째 날, 함양대봉산휴양밸리→개평한옥마을→함양남계서원, 둘째 날, 상림→농월정국민관광지가 좋겠다. 청계서원, 함양 지리산 둘레길 등도 함양에서 가볼만한 여행지로 꼽힌다.

취재협조: 한국관광공사, 함양군/ 글: 박산하(여행 작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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