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만에 만난 자매의 포옹
한 명은 상처로, 한 명은 사랑으로 자라
운명처럼 찾아낸 서로의 존재
[헤럴드경제=김율·박태미 PD] 세상 살이의 고됨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에게 가족은 소중하다. 지난 25일 인천국제공항에 선 하지원(39) 씨는 평생 존재마저 몰랐던 여동생의 입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인천공항에서 감동적인 재회가 이뤄졌다. 출생 직후 벨기에와 미국으로 각각 입양된 하지원, 다라 해넌 자매는 처음으로 한국 땅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자매는 말없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둘의 만남은 가족 계보 찾기 플랫폼 ‘마이헤리티지(MyHeritage)’의 유전자 정보(DNA) 테스트를 통해서 이뤄졌다. 2018년 다라 씨가 ‘마이헤리티지’에 자신의 DNA 검사를 먼저 의뢰했고, 올해 지원 씨가 같은 서비스를 통해 가족을 찾기 시작하면서 서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 만남이 지원 씨에게 더 각별했던 것은 불운한 삶을 이겨내면서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1985년에 태어난 지원 씨는 한국의 첫 입양 가족에게서 2년 만에 파양돼 벨기에 가족에게 다시 입양됐다.
“신분 도용, 아동 밀수, 인신매매. 제 두 번째 양부모는 이런 일에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분들은 이런 일을 조직하고 직접 가담했죠."
두 번째 양부모에 대한 지원 씨의 기억이다.
지원 씨의 양부모는 위조된 서류로 7명의 캄보디아 아이를 더 입양했다. 이어 입양한 아이들을 끊임없이 학대했다. 결국 지원 씨는 14살 무렵부터 보육원에서 유년기를 보내야 했다.
다라 씨는 “우리 자매는 한국에서 직접 만나기 전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며 “TV에서 다른 입양 형제, 자매들의 재회 장면을 봤고 얼마나 행복한지 이야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언니 지원 씨를 바라보는 다라 씨의 눈동자는 자꾸 흔들렸다. 다라 씨는 1986년 출생 직후 미국 미네소타에 입양돼 양부모에게 친자식 이상으로 사랑을 받았다.
다라 씨는 언니가 겪었던 역경을 전해 들으며 혼란스러웠다고 했다.
언니 지원 씨는 이제 세 아이의 어머니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유년 시절의 고통은 여전히 그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다라 씨는 입양 가족의 상봉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전했다.
“사람들은 상봉의 행복한 순간만 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오는 입양인들의 혼란과 의문, 그리고 슬픈 감정들은 보지 못해요. 우리에게 이 다음은 뭘까요. 우리 자매의 이 상봉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우리 자매에게 그건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1954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입양을 시작한 한국은 2022년까지 16만8427명의 아이들을 내보냈다. 국내 입양(8만1532명)에 비해 2배 이상 많다.
입양 서류에는 자매의 어머니는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젊은 학생이라는 점만 나와 있다. 익명으로 둘째 딸을 출산한 그녀는 두 딸을 입양 보냈다는 기록 외에 밝혀진 것이 없다.
“핏줄을 찾았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거기서 모든 게 끝나지 않아요. 우리 자매가 함께하지 못했던 모든 시간과 순간에 대해 생각하면 여전히 혼란스럽고 슬퍼요.”
자매는 앞으로 며칠간 서울에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다. 친부모를 찾아 여행하며 뿌리를 되짚는 일도 할 예정이다.
“여동생과 함께하는 한국 여행은 평생 스스로에게 되물었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마침표와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죠.”
지원 씨는 여동생의 손을 꼭 잡으며 힘줘 말했다.
글 = 김율·박태미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