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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구제와 빈티지

내가 중고 의류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건 대학교 1학년 무렵이다. 2000년대 초반 당시 동대문 거평프레야 6·7층에 가면 랄프로렌 셔츠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단추가 없는 것도 소매 끝이 해진 것도 있었지만 정식 매장에 없는 특이한 디자인이 많았다. 가격은 1장에 몇만원 수준이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며 보물찾기처럼 마음에 드는 걸 고르던 기억이 있다.

당시 이 가게들은 빈티지 숍이라 불렸다. 그래서 이런 옷들을 빈티지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엄밀한 기준으로 보면 구제, 즉 세컨핸즈 숍이다. 전 세계 어딘가에서 누군가 입었던 옷들을 제3세계를 포함한 어떤 경로를 통해 한국에 들여와 다시 파는 것. 동대문, 동묘가 대표적인 시장이다. 인터넷 카페나 플랫폼을 통해 개인 간 중고거래를 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구제를 포함한 중고의류 시장은 날로 더 커지고 있다. 온라인 리세일 플랫폼 스레드업(ThredUp)가 발표한 ‘리세일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중고 의류 시장은 2028년까지 연평균 12%의 성장률로 3500억달러(약 471조62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국내에서도 중고의류 유통 플랫폼 서비스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빈티지 의류는 구제와 무엇이 다를까? 구제가 신제품에 비해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 달리 빈티지는 출시가를 현저히 상회한다. 높은 가격의 형성엔 몇 가지 이유가 따르는데 이는 단연 희소성 때문이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생산방식의 차이다. 청바지의 대명사 리바이스는 지금까지도 매년 수억벌의 청바지를 만들고 이는 10만원~20만원 선에서 판매가 된다. 그러나 1950~1970년 사이에 만들어진 일부 청바지는 많게는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이유가 재미있는데 71년 이전의 리바이스 청바지에는 ‘Levi’s‘ 레드 탭의 ’e‘가 현재와 달리 대문자였다. 그래서 ’E‘가 들어간 바지는 수집가들 사이에서 매우 희귀한 아이템으로 간주된다.

또 제조 비용 절감을 위해 7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제조 방식이 달라졌는데, 그 이전까지 사용하던 미국의 콘밀(Cone Mills) 생산 셀비지 데님의 견고함, 페이딩 효과는 지금도 구현이 어려워 각광을 받는다. 버튼도 현재의 알루미늄과 달리 과거는 견고한 구리를 썼다. 백포켓의 스티치가 싱글인지 더블인지도 가격을 가르는 구분점이다.

밀리터리 제품들도 일부 품목들은 빈티지로 취급받는다. 실제 전쟁에 사용된 제품들이 특히 인기다. 과거에만 사용했던 원단 제조방식이나 특수염료로 인해 몇십년이 흐른 지금 매우 독특한 형태로 색감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들이 있다. 특히 제조 이래 어딘가에서 수십년간 빛과 공기에 물들어 새겨진 세월의 흔적은 재현할 수도 없어 희소성과 가치가 더 높아졌다.

몇 년 전 트래비스 스콧과 저스틴 비버가 너바나 밴드의 투어 티셔츠를 입고 등장하며 유명 밴드의 투어 티셔츠 가격이 급격히 올랐다. 과거 손으로 한 염색이나 실크스크린 프린팅이 시간이 지나며 생긴 변화 때문에 비싼 것도 있지만 셀럽들이 가격을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건 한번 희소해진 제품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것. 관심이 생겼다면 지금이 최저가일테니 하나쯤 구매해보는 것도 좋다.

지승렬 패션칼럼니스트

hop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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