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당 20만원에 1년 최대 수백건 처리해야
“단순 업무도 버거워”...실질적 역할 못 해
금융위는 내년 지원 예산 규모 되레 삭감
“변호사가 사채업자와 협상을 하고 사후 관리까지 하기에 한 명당 20만원의 인건비는 비현실적이다. (실질적인) 피해자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또한 업무의 우선순위로 여길 수 없는 환경의 영향이 크다.”
제도가 도입된 2019년부터 채무자대리인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법률구조공단 소속 변호사 A씨는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현재의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제도는 채무자들의 피해를 온전히 해결해주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적은 예산과 부족한 인력 탓에 실질적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할 여력이 없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제도는 불법 추심 등에 시달리는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제도다. 정부는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 변호사를 무료로 연결한다. 이들은 채무자를 대신해 전화 대응 등 추심과정 일체를 대리한다. 아울러 최고금리 위반 등에 대한 부당이득 청수소송 등 피해 구제를 지원한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이 늘어나며, 금융위원회 채무자대리인 제도가 본격 활성화된 지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실제 업무를 맡고 있는 현장에서는 제도의 효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 과중에 따라 적극 구제 조치가 소수에 그치며, 정부가 아닌 사설 채무 솔루션업체를 찾는 이들도 늘어난다. 제대로 된 조치도 없이 수수료 갈취만 하는 등 악덕 업체들까지 판치고 있다.
▶변호사 100명이 4000명 상대...“피해자 구제 못 해”=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법률구조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7월 기준 공단 소속변호사 정원은 144명, 현재 근무 중인 현원은 119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이후 2023년까지 매년 평균 4200명에 대한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이 이루어진 것을 고려하면, 변호사 1인당 매년 35명에 대해 채무자대리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제도를 이용하는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의 경우 하나의 채무만 가지고 있는 경우가 드물다. 빚이 빚을 낳으며, 많게는 50~60명의 채권자들에 추심을 당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인당 10건의 채무만 보유하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변호사 1인당 한 해에 300~400명에 달하는 채무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하지만 보수는 인당 20만원 수준에 그친다.
아울러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채무자대리인 선임을 신청한 채무자들 중 미등록대부업자들에게 피해를 받는 채무는 1292건으로 전체(1313건)의 99%에 달한다. 하지만 미등록대부업자들을 대상으로 단순 추심 대리 외 채무 교섭을 진행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미등록대부업자들의 경우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 채권자의 신원을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채무 관계가 장기화했을 경우 이자와 원금 간의 관계가 흐릿해지며, 초기 계약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설 불법사금융 솔루션 업체 관계자는 “여러 군데서 장기적으로 채무 관계를 이어온 경우, 채무자 본인도 처음에 얼마를 빌렸는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채권자와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한다”며 “채무 상황을 정리하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린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을 전담하고 있는 변호사들의 경우 채권자에 대한 문자 통지 등 추심 대리를 고지하는 기본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채무자대리인이 선임됐고, 이후 6개월간 채무자에 직접 추심을 할 경우 형사처벌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전달하는 데 그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피해자의 채무 상환을 점검하거나, 교섭을 하는 등 조치가 이루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쥐꼬리 보수’ 채무자대리인, 단순 업무도 벅차다=심지어 각종 추심 연락 수신을 변호사가 대신하는 채무 대리 업무도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다. 채권자가 특정되지 않는 특성을 악용해, 채무자대리인을 선임한 뒤에도 채무자에 반복해 추심 및 협박 전화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파산·회생 전문 변호사는 “추심업자들이 수법을 학습할 수 있어, 자세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지만 제도를 우회해 채무자에 직접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채무자대리인 선임 지원 제도의 효과에 대해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2023년 금융위원회가 조사한 채무자대리인 지원 실적 설문조사에 따르면 채무자대리인 지원 사업이 도움됐다고 답한 응답자들 중에서도 협박 등 불법채권 추심이 근절됐다고 답한 비중은 49%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이 여전히 추심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제도를 통해 심리적 불안감이 해소됐다는 응답자도 36% 남짓이었다.
변호사들은 부족한 예산과 인력으로 채무자대리인 지원이 ‘우선순위’에 해당하지 않아, 문자 통지 외 업무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A씨는 “현재 전문적으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를 보는 변호사들에게 배당되는 것”이라면서 “능동적으로 불법사금융을 저지하기보다 주어진 위탁업에 대해 형식적으로 대응하는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무자대리인을 하면서 인당 20만원 정도를 수취하는데, 일반적인 변호사들의 보수와 비교했을 때는 채무 건 하나하나를 살펴보기에 부족한 수준”이라며 “업무량이 너무 과중한 상황에서, 보수 현실화가 실질적으로 되지 않을 시 지금과 같은 업무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 부족 호소에도 금융위는 내년 채무자대리인 지원 예산 규모를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불법사금융 규모 대비 채무자대리인 지원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금융위는 2024년도 예산을 기존 8억8600만원에서 12억5500만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25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다시금 관련 예산은 12억원으로 축소됐다.
김광우·정호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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