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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의 독재자 vs 젊은 개혁가…두 얼굴의 ‘미스터 에브리싱’[더 비저너리 무함마드 빈 살만]
수천명 왕자 중 왕세자 차지…500명 대숙청
‘탈미국’ 독자 외교…여성 참정권 허용 등 개혁
‘비전 2030’ 수립…사막 위 최첨단 도시 ‘네옴’ 건설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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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9월 11일(현지시간) 리야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2017년 10월 30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의 리츠칼튼호텔 로비에서는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회장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경제 자문인 토마스 배럭 콜로니캐피털 회장 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티븐 므누신 트럼프 행정부 재무장관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스위트룸에 자리했다. 전 세계의 금융, 정치, 산업 분야의 저명 인사들이 ‘사막의 다보스’로 불린 사우디의 ‘미래투자계획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보기 드문 풍경이었다.

#2017년 11월 3일 리츠칼튼호텔에 시설팀원들이 투입돼 200개 객실문의 자물쇠를 제거했다. 커튼과 샤워룸의 문은 철거됐고, 스위트룸은 조사실로 개조됐다. 호텔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쫓겨나고 들어올 손님들의 예약은 취소됐다. 이어 알왈릴드 빈 탈랄 왕자, 미테브 빈 압둘라 알 사우드 사우디 국가방위부 장관 등 내로라 하는 인물들이 잡혀 들어왔다. 국빈용 영빈관으로 이용되던 최고급 호텔은 불과 며칠 만에 감옥으로 변했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두 날을 주도한 사람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였다.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인 브래들리 호프와 저스틴 셱은 저서 ‘빈 살만의 두 얼굴’에서 “리츠칼튼호텔 구금 사건은 빈 살만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하나의 의식이었다”고 평했다. 개혁을 꿈꾸는 젊은 지도자와 피의 독재자라는 두 얼굴을 가진 빈 살만은 막대한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최연소 글로벌 지도자로 부상했다.

어린 시절의 빈 살만(앞쪽)과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사우디-익스페트리어트(Saudi-Expatriates.com) 엑스(X)]
사촌 형 몰아내고 왕세자 차지한 전략가

빈 살만은 1985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왕자와 그의 세 번째 아내 파흐다 빈트 팔라 알히슬레인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살만 왕자가 부인들과 낳은 자식을 모두 따지면 13남매 중 8번째 자식이자 7번째 아들이었다.

왕위 계승권에서 우위에 있던 이복 형제들이 해외로 유학을 떠난 반면 빈 살만과 친형제들은 자국에 머물렀다. 아버지 살만은 첫째 부인에게서 낳은 이미 나이가 많은 아들들에게는 고압적이고 냉랭했지만 거의 50살 차이가 나는 빈 살만과 동생들에게는 보다 너그러워졌다.

어린 시절의 빈 살만은 몇 시간씩 비디오 게임을 하고 패스트푸드와 TV를 좋아하는, 목표가 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슈퍼마켓에서 난장판을 벌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조용히 처리하고 넘어갔다. 빈 살만에게 특별한 애착이 있었던 것이다.

철없던 10대 소년은 아버지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보며 돈과 권력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후 사우디 국내 대학인 킹사우드대학교에 수석 입학해 아버지를 보좌했으며 정부를 돕는 민간 컨설턴트로 몇 년간 일했다.

스물 네 살이던 2009년에는 리야드 주지사였던 아버지의 특별 고문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이어 리야드 경쟁력위원회 위원장, 킹 압둘아지즈 연구보존재단 이사장 특별 고문 등을 지내며 서서히 힘을 키웠다.

아버지 살만이 리야드 주지사를 지내는 48년 동안 왕가에는 최소 7000명에 달하는 왕자와 비슷한 숫자의 공주가 있었다. 이들 중 적지 않은 수는 탐욕과 사치, 부정부패로 왕실의 품위를 떨어뜨렸고, 살만은 이를 막기 위해 애썼다. 빈 살만은 아버지와 함께 공식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이들을 징계했다.

어린 시절의 빈 살만(왼쪽)과 아버지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 [사우디-익스페트리어트(Saudi-Expatriates.com) 엑스(X)]

당초 빈 살만은 왕위 계승 서열에서 까마득히 멀리 있었으나 왕세제였던 아버지의 두 형이 연달아 사망하고 아버지가 새로운 왕세제로 등극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5년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국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 살만이 새로운 국왕이 됐고, 빈 살만은 실질적 2인자인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살만은 왕위에 올랐을 때 이미 79세의 연로한 국왕이었고, 패기 넘치는 젊은 빈 살만은 곧바로 전면에 나섰다. 그의 모든 아이디어는 갑자기 최우선순위가 됐다.

아버지는 즉위 직후 전 왕세제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자를 왕세자로 임명했다. 왕실의 규칙과 질서를 의식한 조치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빈 살만이 더 큰 권력을 행사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등을 잇따라 만나며 존재감을 키웠고, 빈 나예프 왕세자를 교묘히 배제했다.

2017년 6월 빈 나예프는 한밤중에 궁전으로 오라는 전화를 받고 향했다. 빈 살만의 참모들은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의 자손 34명으로 구성된 충성평의회 의원들에게 연락해 빈 살만을 새 왕세자로 지정하기를 원한다며 명목상 의견을 물었다. 평의회 중 31명이 왕세자 변경에 동의했다고 왕궁은 발표했고, 한 참모는 빈 나예프에게 이같은 소식을 전하며 사임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했다.

처음에는 물러나기를 거부했던 빈 나예프는 밤새 압박을 당한 끝에 새벽 무렵 사임에 동의했다. 오전 7시가 돼서야 풀려난 빈 나예프가 궁전 복도를 지나 끌려갈 때 빈 살만이 나타나 몸을 기울여 입을 맞췄고, 사촌 형은 충성의 서약을 내뱉었다. 빈 살만의 부하는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살만 국왕은 결국 2017년 6월 21일 빈 나예프 왕세자를 폐하고 친아들인 빈 살만을 새 왕세자로 책봉했다. 사우디 초대 계승 이후 두 번째 부자 상속을 결정한 것이다.

왕위 계승에서 한참 후순위였던 빈 살만은 왕자만 수천 명이 있는 사우디 왕가에서 치밀한 계략으로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권좌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 9월 18일(현지시간) 슈라위원회에서 연례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
500명 대숙청…자비 없는 독재자

빈 살만은 왕세자에 오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전 압둘라 국왕의 파벌을 없애기 위해 왕족 대숙청에 나선다.

그는 2017년 11월 왕족과 정·재계 고위 인사 500여 명을 체포해 리츠칼튼호텔에 감금했다. 왕자 11명과 장관 4명이 줄줄이 잡혀 들어갔다. 경비 요원들은 이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감시했고, 호텔의 인터넷과 전화선은 끊겼다. 사우디 은행은 2000여 개의 계좌를 동결했다.

체포된 인물 중에는 ‘사우디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 억만장자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 압둘라 전 국왕의 아들인 미테브 빈 압둘라 왕자, 투르키 빈 압둘라 왕자 등 빈 살만의 사촌 형들이 포함됐다.

압둘아지즈 빈 파흐드 왕자 등 일부는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고,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는 헬기 추락으로 사망했으나 격추를 당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감금된 사람들은 폭행과 고문을 당하며 무시무시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숙청은 2019년 1월까지 계속됐고, 빈 살만은 재산 헌납 약속을 통해 1070억달러(약 146조원)를 국고로 환수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미스터 에브리싱(Mr. Everything)’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빈 살만은 2020년에도 빈 나예프 전 왕세자와 그의 동생 나와프 빈 나예프 왕자, 살만 국왕의 동생 아흐메드 빈 압둘아지즈 왕자 등 왕실 고위 인사 3명이 반역을 모의했다며 체포했다. 이들은 빈 살만이 왕위를 순조롭게 계승하는 데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인물로 여겨졌다.

반대 파벌을 모두 몰락시킨 빈 살만은 군 통제권을 장악하고, 초대 국왕 이후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지난 2015년 2월 바레인 마나마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

냉혹한 권력은 경쟁 관계인 왕족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향했다. 왕궁에 대한 비판은 허용되지 않았고,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우디의 시사평론가이자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였던 자말 카슈끄지의 암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카슈끄지는 워싱턴 D.C.의 사우디 대사관에서 대변인으로 근무했고 런던 대사관에서도 일한 인물로, 오랜 시간 왕가와 관계를 맺어 왔다. 그는 때로는 왕궁을 옹호하고, 때로는 왕가와 입장을 달리 했다. 빈 살만이 집권한 후엔 그를 여러 차례 비판하며 반정부 인사로 꼽혔다.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2일 전 부인과 이혼하기 위해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한 뒤 실종됐다.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 들어간 지 2시간 30분 뒤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 6대가 사우디 요원 15명을 태우고 총영사관을 떠났고, 카슈끄지는 들어가는 장면은 폐쇄회로(CC)TV에 찍혔지만 나오는 장면은 찍히지 않았다.

튀르키예 당국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에서 사우디 요원들에게 살해됐다고 밝혔다. 사우디 측은 카슈끄지가 총영사관을 방문한 직후 나갔다고 주장하며 암살을 부인했지만 이후 공식적으로 카슈끄지의 사망을 인정했다. 단 요원들과 몸싸움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카슈끄지가 살해 당할 당시 녹음된 음성 자료를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 제공했다고 밝혔고, 미 중앙정보국(CIA)은 카슈끄지의 암살을 지시한 인물이 빈 살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호프 기자와 셱 기자는 “빈 살만은 나라를 관광객들에게 개방하고, 부패를 척결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은 끌려가서 다시는 정부를 비판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사우디인들에게 주는 핵심 교훈은 ‘당신들은 빈 살만이 결정해 준 범위 안에서만 자유롭다’는 것이었다”며 “겉보기에는 사우디가 개혁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는 심각했다”고 평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가 지난 2016년 9월 4일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탈미국’ 독자 노선…여성 참정권 허용도

빈 살만은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사우디와 미국 및 다른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그동안 사우디는 중동에서 대표적인 ‘친미’ 국가로 꼽혔으나 빈 살만은 ‘탈미국’과 독자 외교 노선을 추구했다. 반미까지는 아니지만 미국 의존도를 낮추면서 사우디의 국익을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운 데 이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가가 급등하자 미국이 석유 증산을 요구했으나 사우디는 이를 외면하고 감산으로 수익을 올렸다.

여기에 미국과 패권 다툼을 벌이는 중국과 2022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맺고, 2023년에는 중국이 주도하는 안보 동맹인 ‘상하이협력기구(SCO)’의 대화 파트너로 합류했다.

반미 진영인 러시아와도 손을 잡고 원유 감산을 이끌고, 정치·통상·경제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밀착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이 적으로 여기는 이란, 시리아와도 관계 정상화에 나섰다.

사우디는 2016년 사우디 내 시아파 운동을 주도해 온 성직자 님르바크르 알 님르 등 47명을 반정부 테러리스트 혐의로 집단 처형했다. 이에 분노한 이란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테헤란 주재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했다. 사태가 번지자 빈 살만은 아버지와 함께 이란과 단교를 선언했으며 이란 외교관을 추방했다.

그러나 지난해 중국의 지지로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의 리야드 개최가 확정되고 중국이 중재에 나서자 이란과 7년 만에 복교를 했다.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왼쪽)가 지난 2017년 3월 14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동을 갖고 있다. [게티이미지]

또 지난달에는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 전까지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중재 노력에 퇴짜를 놨다. 미국이 중동 정세 안정을 위해 공들여 온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에 대놓고 선을 그은 것이다. 사우디는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대가로 미국에 상호방위조약 체결과 민간 핵 개발을 위한 우라늄 농축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빈 살만은 국내 정치·종교 분야에서도 개혁을 실시했다. 사우디는 중세 이슬람 시대의 근본주의를 추구하는 ‘와하브주의’가 지배해 왔으나 이러한 옛 질서가 계속될 경우 나라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의 운전과 참정권을 허용하고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종교적 이유로 폐쇄됐던 영화관을 35년 만에 부활시키고, 방탄소년단(BTS) 등 외국 가수의 공연을 허용했다.

국가 개조를 위해서는 인구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청년층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빈 살만은 잇따른 개혁 조치들로 이미지 쇄신에 힘썼다.

사우디 ‘네옴’ 프로젝트의 핵심 시설 ‘더 라인’의 구상도. [네옴(NEOM) 홈페이지]
최연소 지도자, ‘네옴’의 꿈 이룰까

빈 살만은 석유에만 의존한 사우디의 경제와 막대한 부를 투자 없이 흥청망청 낭비하는 왕실에 위기 의식을 느꼈다. 석유가 고갈되거나 수요가 줄어들 경우 사우디는 가난한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석유가 없는 시대에도 민간 투자로 부국이 되기 위해 2017년 탈(脫)탄소 국가발전 계획 ‘비전 2030’을 수립해 추진하고 있다.

핵심 사업은 사막 위에 건설하는 최첨단 도시 ‘네옴’이다. 홍해와 인접한 사막과 산악지대에 서울의 44배 넓이에 달하는 2만6500㎢ 규모로 친환경 스마트 도시와 바다 위 첨단산업단지,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릴 산악 관광단지 등을 짓는다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네옴 사업비는 발표 당시 5000억달러(약 682조원)였으나 최근에는 최대 1조5000억달러(약 2045조원) 규모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 2조달러(약 2726조원) 이상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이 수주 기회로 여기는 초대형 프로젝트지만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심 시설인 수직 도시 ‘더 라인’에만 1조달러(약 1363조원)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체 비용이 더 늘어날 수 있고, 기술적으로도 구현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자금 조달이 난항을 겪으며 공사가 지연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사우디가 네옴 예산을 수십억 달러 삭감할 전망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빈 살만은 네옴 외에도 홍해 제다의 키디야 해안에 관광·엔터테인먼트 복합단지를 건설하는 ‘키디야 프로젝트’, 리야드에 세계 최대 규모의 ‘킹 살만 국제공항’을 건설하는 프로젝트, 리야드 북서부에 세계 최대 신도시를 건설하는 ‘뉴 무라바 프로젝트’ 등 메가 프로젝트를 15개나 발표했다.

아직 39세밖에 되지 않은 빈 살만은 세계 주요 지도자 중 최연소이지만 강대국 수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막강한 부와 권력을 지녔다.

변혁은 완만하게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최고위 관리들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만약 그게 옳은 일이면 오늘 바로 하세요”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빈 살만의 개혁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준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이 젊은 지도자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부와 권력을 어디에 사용할지, 사우디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지 자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빈 살만 왕세자가 2021년 1월 10일(현지시간) ‘더 라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알아라비야(Al Arabiya) 유튜브 갈무리]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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