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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의 무게가 달라졌어요” 아이돌은 마이크 대신 페인트 붓을 들었다[우리사회 레버넌트]
아이돌 BTL 출신으로 페인트공 된 오지민 씨
군 전역 앞두고 찾아온 아기천사
두 아들 아빠…“원동력은 가족”
“땀 흘려 이룬 것, 쉽게 사라지지 않아”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위해’ 마이크 대신 붓을 잡은지 1년 7개월째 된 보이그룹 BTL 출신 오지민(30) 씨. [본인 제공]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내가 흘리는 땀만큼 내 가족이 행복해지겠지. 그런 마음으로 붓을 잡고 있어요.”

반짝이는 아이돌에서 붓을 잡는 페인트공으로 변신한 보이그룹 BTL 출신 오지민(30) 씨는 헤럴드경제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생후 38개월, 9개월인 로운이와 로이 아들 둘 아빠이기도 한 오씨는 팀이 해체된 후 ‘먹고 살기 위해’ 붓을 들 수밖에 없었다. 손에는 곳곳에 흰 색 페인트가 묻어있었다.

오씨는 “2014년께 BTL의 엘렌으로 데뷔하게 됐어요. 처음 데뷔할 때부터 2집 활동까지 계획해서, ‘우리 그룹은 잘 될거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2집 앨범으로 컴백하기 하루 전날인 2016년에 컴백이 무산된 거에요. 그때부터 기약 없는 기다림이 시작됐어요. 저도, 다른 형들도 뿔뿔이 흩어졌죠. 재데뷔를 알아보고 있다가 먼저 군대를 다녀오자는 생각에 2019년 입대를 했는데, 전역할 때 쯤 아기 천사가 찾아왔어요. 선택을 해야만 했죠”라고 말했다.

보이그룹 BTL에서 서브보컬을 맡았던 오지민 씨의 모습. [키로이컴퍼니 제공]

모아 놓은 돈도, 집도, 직업도 없었던 상황. 오씨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때 중심을 잡아준 건 지금의 아내. “생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아내의 결단에 오씨는 전역하자마자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쇼호스트와 마케터로 영상 편집 일을 했지만 세 명이 생활하기에는 부족한 월급이었다. 몸은 고되지만 미래가 보였던 기술직을 준비하고 있던 찰나, 집 근처 페인트집 사장님이 기술을 가르쳐줄테니 찾아오라고 했다. 하루 일당 13만원, 가족을 위해선 일을 해야만 했다.

오지민 씨는 자신의 원동력은 가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본인 제공]

제일 처음 간 현장은 5층 빌라 옥상 방수 작업. 양손에 20㎏짜리 페인트통을 들고 엘리베이터 없이 5층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했다. 6개월 간 붓을 잡기 전 퍼티(밑작업)을 배우는 동안 몇 번이고 도망가고 싶었다. 밤만 되면 허리, 목, 손목 할 것 없이 쿡쿡 쑤셨고, 손가락이 너무 부어 불타는 느낌에 잠도 못 잘 정도였다. 오전 5시부터 시작되는 일과도 고됐다. 하지만 등 뒤에 가족이 있기 때문에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결국 페인트를 배운지 1년 5개월 만인 지난 7월에 사업자 등록까지 해냈다.

사업자를 내고 나서는 더 열심히 살 수밖에 없었다. 그는 “첫 고정 거래처 일이었는데, 공정에 걸리는 시간을 잘못 계산한 거에요. 오후 3시에 일꾼들이 다 퇴근할 시간이 됐는데 공정이 반도 안 끝났더라고요. 밤 12시까지 남은 일을 혼자 했죠. 적자를 보면 안되니까... 그때 드라마 ‘나의 아저씨’ 수록곡인 손디아의 ‘어른’ 노래를 듣고 많이 울었어요”라고 소회했다.

오지민 씨는 “절실함만 있으면 어려운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본인 제공]

오씨는 시간이 지나도 지금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붓을 잡는 지금이 자랑스럽다고도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그는 “아이돌 생활도 물론 좋았다”면서도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내가 노력해서 쟁취한 게 없는 것 같은 거에요. 얼떨결에 여기까지 끌려온 느낌. 그래서 못 놨던 것 같아요. 미련이 남아서. 근데 지금은 제가 땀 흘린 만큼 차곡차곡 쌓이는 거잖아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거에요. 그래서 가정을 꾸린다는 선택은, 페인트를 잡는다는 선택은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심에는 원동력인 가족이 있고요”라고 말했다.

오씨는 3년 내 사업체를 키우고, 가족을 조금 더 사랑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낚시 웨어 브랜드 잔카(ZANCA)의 마케터로도 활동하고, 삼화페인트 본사와 협업이 성사돼 제품 홍보도 맡고 있다.

그는 “기술직은 비전이 확실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도전을 하는데 겁먹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몸은 힘들지만, 자기만의 절실함, 이 일을 해야 하는 절실함만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강조했다.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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