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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앙카라가 이끈 아나톨리아 문명, 세계인의 놀이터가 되다[함영훈의 멋·맛·쉼]
튀르키예 헤리티지 여행③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와 콘야, 아피온
목조 사원, 미다스 유적 등 세계유산 즐비
아나톨리아 문명 중심, 찬란한 앙카라 석양
인사동 같은 하마뫼누 마을, 코리아 가든도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 전경

[헤럴드경제(앙카라)=함영훈 기자] 지구촌 수많은 노을 풍경 중 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성(城)에서 보는 석양은 더욱 특별하다. 마천루 빌딩과 옛거리, 산·강·호수, 청춘의 핫플레이스와 아나톨리아 유적, 사원의 첨탑들, 히타이트·로마·투르크 헤리티지 등을 빨강, 주홍, 핑크빛 스펙트럼으로 아름답게 물들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서 훌륭한 노을을 볼 수 있는 전망대는 과거 군사들이 지켰을 망루들이다. 아름다운 석양은 물론이고, 다른 망루에 모여선 여행자들이 노을을 보며 즐거워하는 표정 역시 좋은 구경거리이다.

석양 아래 낭만적인 프로포즈

한반도의 3배 크기인 아나톨리아 고원의 어느 봉우리에 태양이 잠긴 이후엔, 검붉은 황홀경 속에서 사랑 고백, 청혼 세레모니를 하는 튀르키예 선남선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성 아래 마을은 과거 달동네(게제콘두)였지만, 지금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되어 여행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아기자기한 다기 세트, 인형, 전통 대장간이나 철물점, 빵집 등을 구경한다. ‘ㄱ’자로 꺾인 전통 투르크 나팔인 듯 보이지만, 블루투스로 핸드폰에 연결이 가능한 이 첨단 제품은 아날로그에 익숙할 것 같은 60대 아저씨가 춤추면서 판다.

앙카라성 노을

앙카라성 서북쪽에는 1세기 아우구스투스 신전, 원형 극장, 3세기 카라칼라 목욕탕 등 로마 유적이 여럿 남아있다.

성의 망루에서 서쪽 기슭으로 400m 가량 내려가면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을 만난다. 튀르키예인들에게 “당신들은 서양이냐, 동양이냐”라고 물어보면 “우리는 세계의 중심”이라고 말한다. 튀르키예는 유럽인 이스탄불과 아시아인 앙카라-콘야-아피온-가지안테프를 모두 품고 있다.

동·서양 요충지에서 피어난 아나톨리아 문명

튀르키예에는 1만2000년전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테페와 세계 최초의 빵 타쉬테펠레 등 세계 최고(古)의 문명과 동·서양 문명이 모두 모여있다.

‘해 뜨는 땅’이라는 뜻의 아나톨리아는 많은 제국이 지배하거나 공존했다. 기원전 2000~800년 전후엔 세계 최초 철기 발명국이자 이집트군을 격퇴해 람세스2세에게 굴욕을 안긴 히타이트 제국, 기원전 1000년대에는 골르디우스의 매듭, 미다스의 손, 2024 프랑스 올림픽 마스코트인 자유의 상징 ‘프리기아 캡’ 등으로 유명한 프리기아가 지배했다.

터키항공이 복원해 제공하는 1만2000년전 빵

이후 인류 최초 동전 발명국 리디아, 우주인급 지혜를 가졌다던 수메르와 경쟁한 아시리아, 히타이트 3국의 공존기를 거쳐 아케네메스 왕조, 헬레니즘 제국, 알렉산드리아 정권, 켈트족, 로마(비잔틴제국), 몽골 일한국이 머무른 후 지금은 투르크(돌궐)가 1000년 가까이 지배하고 있다.

문명박물관은 120년 전 아타튀르크 대통령이 이 땅의 모든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로 로마신전 등과 함께 새롭게 단장해 부분 개장하다가 1968년 그랜드 오픈했다. 중세~근세 국제 대상들이 묵던 여관(쿠르슌루 한)을 리모델링했다.

문명박물관에서 만난 ‘9000년전 비너스’

내부에 들어가 선사시대 유골을 보면 쪼그려 있는 것이 많은데, 엄마품으로 되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 비너스를 닮은 ‘대지의 여신상’이 9000년 전 유적인 콘야의 차탈회위크에서 발굴돼 이곳으로 옮겨졌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은, 9000년된 튀르키예 대지의 여신상

우리의 단군왕검과 비슷한 시기, 비슷한 역할을 했던 제사장의 산양 뿔 형상 청동모자도 있다. 튀르키예는 상고사의 한 축이던 탱그리즘(Tangurism)도 존숭한다. 바로 고조선연방제국의 단군(Tangun)신앙이다.

한국보다 2000년 빠른 금세공 유물, 옹관과 석관, 기원전 19~18세기 아시리아-카파도키아 상인·주민들이 주고받던 점토판 편지(거래의향서, 이혼증명서, 안부서신 등) 등이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박물관 아래 전통 마켓은 고춧가루, 마늘, 대추야자, 순대를 닮은 짭조름한 쏘시지, 의류, 장난감, 할레 직후 입는 소년의 예복, 결혼 예물, 알렉산더와 스펠링이 비슷한 이스켄델 케밥 등을 파는 만물시장이다. 시식 인심도 좋다.

고르디온에서 만나는 ‘미다스의 손길’

앙카라 남부엔 기원전 800년 아타톨리아를 지배했던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온이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미다스의 손 이야기로 유명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가 복잡하게 묶여진 고르디우스 왕의 매듭을 세심하게 풀려 하지 않고 단칼에 베어버리고, 사제를 협박해 자신이 새 군주라는 신탁을 받아낸 다음 지중해 동편의 광대한 영역을 차지한 것은 ‘반칙’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고르디우스 왕조 도성 유구와 미다스 왕릉

고르디오스의 아들 미다스는 손으로 만지는 모든 것이 황금으로 변했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가 묻힌 왕릉에는 금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고르디온 주변에서 주석·아연광산을 채굴, 일찌기 동전을 사용해 국부를 창출했던 지도자다.

스스로 몸이 금덩이가 돼 죽었다거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소문이 대나무숲을 통해 알려져 망신을 당했다거나 하는 미다스의 비극 설화는 프리기아를 전복한 승자들이 선대 왕조를 비하하려고 지어낸 얘기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대학생들의 부조리 고발, 정보 공유의 장 ‘대나무숲’은 미다스 설화에 기반한 것이다.

2800년의 세월 속에 무너진 도성문와 궁중 사람들의 생활 유구는 거대 미다스 왕릉과 함께 드넓은 앙카라 남부 고원 지평선 지대를 지키고 있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조 사원
튀르키예에서 만나는 세계유산

고르디온 유적은 13세기 셀주크제국 시대에 만든 하이포 스타일 목조 사원 5곳과 함께 지난해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됐다. 목조 사원들의 내부 구조는 얼핏 영주의 부석사 전각 같은 느낌을 준다.

평평한 나무 천장, 지붕을 지탱하는 내부 기둥(로마식 하이포 스타일), 대들보, 자른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드는 쿤데카리(kündekari) 기법 등 동·서양 건축 양식이 혼재돼 있다. 셀주크 정복자들은 로마인-투르크인 간의 결혼을 적극 추진해 문화적, 혈연적 동화를 꾀했다고 한다.

이 곳에 있는 세계유산 사원은 ▷베이셰히르 에슈레풀루 ▷시브리히사르 울루 ▷카사바쾨이 마흐무트 베이 ▷아히 세레페딘 ▷아피온카라히사르 울루 모스크 등 5곳이다. 이 중 시브리히사르 울루는 가장 크고, 이 사원을 배경으로 한 가족 드라마 ‘괴뉠다으’의 인기로 많은 신도와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시브리히사르는 소를 거꾸로 타고 다니는 우리의 맹사성 선생 같은 이야기 선생님 ‘호자’로 유명하다. 사제, 교육자, 제관을 겸한 호자의 영묘는 콘야 매블라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2000년전 자연암석 속에 만든 마리아성당
아냐지니 석굴 주거공간. ‘인류 최초의 아파트’로 불린다.
인생샷은 성모마리아 석굴교회에서

아피온 아야지니 마을의 성모마리아 석굴교회는 타포니현상으로 거대 암석에 공간이 생긴 것을 계획적으로 다듬은 곳이다. 인생샷 명소이다.

1세기 기독교 태동기부터 신앙의 집회장소로 쓰였고, 정식 교회는 10세기 무렵에 멋진 석조로 탄생했다. 그 옆 거대 바위는 석굴 생활공간이다. 이곳은 마치 ‘인류 최초의 아파트’인 듯 보인다.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석굴 카페·레스토랑·교실 등 쉼터와 놀이 공간이 함께 있어 마치 요즘 아파트의 커뮤니티센터를 보는 듯 하다. 튀르키예에는 성바오로가 설교했던 콘야 인근 비시디아 성바로오 교회와 이즈미르 페르가몬 등 10대 기독교 성지가 있다.

콘야의 세마춤

아나톨리아 5대 거점 중 놀거리는 앙카라, 먹거리는 푸드축제, 웰니스 호텔 및 병원으로 유명한 아피온, 볼거리 세마 공연은 콘야가 제공한다.

앙카라에선 ▷전통예술,식도락,커피점(点) 보기를 하는 인사동 닮은 하마뫼누 마을 ▷대형 쇼핑센터와 청춘들의 놀거리들이 가득한 크즐라이지구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상징으로 지은 코리아가든 등에는 꼭 가봐야 한다.

앙카라 코리아 가든

외관은 서양 사람인 듯 보이지만 튀르키예인은 돌궐(투르크)의 이웃 고구려 등의 후예인 한국인을 만나면 친척을 대하듯 반긴다. 앙카라 사원 앞에서 커피를 막 끓여 내온 치과의사도, 문명박물관에서 만난 초등학생도, 아피온에서 만난 여대생들도 여행자들에게 먼저 다가와 한국인임을 확인하면 반가워 어쩔 줄 몰라한다. 아나톨리아 문화유산 답사는 그렇게 다채로운 놀라움의 연속이다.

[취재 도움:튀르키예 문화관광부]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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