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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테파’ 나가자, “뚱뚱해서 무슨 무용이냐 악플…이런 나도 하는게 한국무용”
오는 31일 부터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스테이지 파이터’ 최종인 ‘휙’ 안무
정길만ㆍ이재화, ‘지금의 한국춤’ 고민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 아프로 머리를 한 무용수의 몸짓은 인식의 세계를 박차고 나온다. 사물놀이 장단에 맞춰 폭발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무용수는 응축미의 한국적 몸짓을 거부하고 비보잉으로 틀을 깨부순다.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로 선보일 단원 최종인의 ‘휙’. 숏폼(short-form) 콘텐츠에 익숙해진 현대인이 핸드폰을 휙휙 넘기는 모습을 보며 춤으로 구상했다.

“사람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이 결정되는 시간은 0.18초, 첫인상을 판단하는 시간은 3초, 유튜브에서 쇼츠 콘텐츠의 시청 지속 시간은 8초를 넘기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어쩌면 지금 우린 모든 것이 싫증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이순간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저에 대한 이야기예요.”

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지금의 한국춤’을 고민해온 안무가들이 ‘한국무용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한국무용수들이 모인 국립무용단은 올해로 세 번째 ‘안무가 프로젝트’를 통해 무용단의 미래 자산이 될 안무가들을 육성하고, 이들의 감각으로 새로운 한국춤을 제시한다.

올해 안무가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은 국립무용단 훈련장인 정길만, 국립무용단 ‘가무악칠채’로 일찌감치 안무에 도전한 이재화, 2020년 대한민국무용대상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고 유튜브에선 ‘썬캡보이’로 잘 알려진 최종인이다.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은 “무용단의 지향점은 전통에 대한 당찬 도전”이라며 “전통춤의 보존이 아닌 전통문화의 정서나 춤의 원리를 현재화하고 동시대 해석을 반영해 현대 예술로 인정받고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세 명의 안무가는 이념이나 철학, 구성 방식에 있어 극단적인 개성을 갖고 있다. 기존의 의미를 전혀 다르게 재해석하거나 탈장르화한 안무가의 차별화된 어법을 기대해달라”고 당부했다.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정길만 [국립극장 제공]

세 안무가의 가장 큰 고민은 ‘한국춤의 정체성’과 ‘오늘날 한국춤의 존재 의의’였다.

정길만은 ‘침묵하는 존재의 나약함’이라는 작품을 통해 침묵을 강요당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한 위로를 건넨다.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겨 느릿하게 시작해, 리듬을 위한 동작들을 풀어내고 괴롭고 불편한 표정과 몸짓으로 메시지를 녹인다.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과 저항의 순간들이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이 작품을 통해 “설명되지 않는 부조리를 안고 사는 인간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는 “늘 한국춤을 세계화하고, 한국춤을 국가 브랜드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다”며 “윤이상 작곡가의 음악이 세계에서 통하는 것처럼 무언가 공통의 언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 경우엔 한국춤이 생겨나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번 국립무용단의 안무가 프로젝트는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 육성 사업’을 통해 선발된 24명의 청년 교육단원이 각 작품의 무용수로 참여한다. 50대에 접어든 정 안무가에게 이번 작업은 오래도록 한국춤을 수련한 자신과 20대 청년 무용수들의 생각의 차이를 들여다 보고, 서로의 거리를 좁혀갔다. 정 안무가는 “그동안 내가 찾으려 했던 한국춤의 현대적 감각과 청년 단원들이 찾으려는 그것에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며“서로 소통하며 세대 간의 다름을 안무에 녹이려 했다”고 말했다.

이재화는 ‘탈바꿈’이라는 제목의 춤을 통해 안무가로의 기량을 마음껏 보여줬다. ‘가무악칠채’에 이어 지난 4월 초연한 ‘사자의 서’, 지난달 공연한 ‘행 플러스 마이너스’의 조안무로 참여한 그는 탄탄한 구성과 기획으로 새로운 춤의 세계를 열었다. 탈춤을 소개로 한 작품이자,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한다는 주제로 창작됐다. 탈꾼들이 탈을 교체하듯 얼굴을 바꿔가며 춤을 추고, 1인무에서 군무로, 2인무에서 3인무로 다시 2인무로 오가는 구성이 영리하고 매끄럽다.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이재화 [국립극장 제공]

이재화는 “‘늘 한국적인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안고 지냈다”며 “전통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은 다르다. 한국적인 춤을 추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전통춤을 춰왔지만, 그것이 오늘날 한국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무용이라는 장르는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의 한국을 말할 수 있는 춤이 ‘한국적’이라는 수식에 어울릴 것 같다. 이번 공연도 ‘한국적인 것’을 찾는 수많은 시도 중 하나”라고 했다.

최종인은 ‘오늘의 한국춤’과 ‘한국춤을 통한 소통’을 고민한다. 그는 최근 인기리에 방송 중인 케이블 채널의 엠넷의 K-무용 서바이벌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 중이다. ‘스테이지 파이터’는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 장르의 무용수들이 출연해 각 장르별 계급전쟁을 벌이며 경쟁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는 “나의 한국춤은 지금 춰야 하는 춤이자 관객과 무용수, 안무자 모두 즐길 수 있을 만한 춤, 무용에 조예가 깊지 않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춤”이라며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하게 된 것 역시 관객의 니즈를 파악해 한국무용이라는 장르를 통해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립무용단 안무가 프로젝트 최종인 [국립극장 제공]

프로그램 방송 이후 적잖은 악플에도 시달렸다. “이렇게 뚱뚱한데 무슨 무용이냐”, “왜 나왔냐”는 악플도 있었다. 최종인은 “한국무용을 하면서 항상 부적격한 몸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하지만 무용이라는게 키 크고 잘 생긴 사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왜 안되냐고 말하고 싶었고, 이런 사람도 하는 만큼 그리 어려운 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안무작 ‘휙’을 통해서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2024년의 한국춤을 선보인다. 최종인은 “한국무용은 국가번호 82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추는 차별화된 장르이자, 추는 춤이 아닌 추어지는 자연스러운 춤”이라며 “지금 이 시대에 맞는 춤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스테이지 파이터’ 방송분에서 그는 한국무용 장르의 댄스필름 계급 미션에서 언더 계급으로 강등됐으나, ‘군무 마스터’로의 완벽한 역할을 수행, 주역보다 멋진 군무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탁월한 군무 마스터로의 역량을 보여줬으나 그의 이번 작품엔 군무가 없다. 한국무용은 물론 현대무용, 스트리트 댄스와 재즈에 이르기까지 총 7명의 무용수가 검무와 장구춤, 진도북춤 등의 한국적 움직임을 보여준다. 그는 “무용수 본인만의 오리지널리티와 정체성을 보여주고 싶어 군무보다는 개인의 모습을 더 담아냈다”며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춤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장르의 무용수들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휙’이라는 의성어가 주는 찰나의 호흡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2024 안무가 프로젝트’는 이달 31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한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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