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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이 만든 용기, 善일까 惡일까
격동의 프랑스근대사 속 ‘군중심리’ 관찰
개인보다 무리속에서 도덕·야만성 증폭
지도자는 ‘타고난 아우라’ 있어야 역설

20·30대를 중심으로 저녁시간 한강과 도심 공원 등에서 최소 10명이 넘는 무리가 대오를 맞춰 함께 달린다. “젊은이들이 함께 운동하는 것이 활기차 보인다”는 호평도 잠시였다. 최근에는 이런 러닝동호회에 미운털이 박혔다. 일부 동호회의 안하무인적 행태로 “혼자서는 눈도 못 마주칠 애들이 무리에 속했다고 운동장 전세 낸 듯 유세 떤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소심하던 사람도 군중에 속하면 한껏 기분이 고양되면서 목소리가 커지는 경험을 한다. 왜 그럴까.

군중심리에 관한 책인 ‘현명한 존재는 무리에 섞이지 않는다’는 이 같은 궁금증을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약 130년 전인 1895년 프랑스 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이 저술한 ‘군중심리’의 프랑스 원전을 완역하고 해설을 덧붙인 최신 한국어판이다. 고전은 영원하며, 인간은 사실 수렵채집 시절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될 만하다.

현명한 존재는 무리 에 섞이지 않는다/귀스타브 르 봉 지음 김진주 옮김/페이지2북스

르 봉은 군중에 대해 각 개인이 누구인지, 생활양식, 직업, 성격, 지적 수준이 얼마나 유사한 지와 관계없이 그 군중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종의 집단적 정신에 종속된다고 봤다. 덕분에 개인일 때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즉 오직 군중을 이룬 개인에게서만 발현되는 사상과 감정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일반 개인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군중만의 특수성이 나타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한다. 저자는 먼저 “군중을 이룬 개개인이 수적 우세라는 배경을 믿고 무적이라도 된 듯 도취해 혼자라면 억눌렀을 본능을 마음껏 펼친다”며 일갈한다. 그러면서 “군중은 익명성에 힘입어 무책임해지기 마련인데 개인을 옭아매던 책임감을 완전히 벗어버리는 날에는 본능을 억제하기가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라고 덧붙인다.

저자는 특히 “군중이 느끼는 격렬한 충동은 구성원 각자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증폭되는 탓에 더욱 격렬히 나타난다”며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개성이 강한 사람은 극소수이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충동의 흐름에 맞서기 힘들다”며 통찰을 더한다. 이에 독립된 개인으로서는 교양인일지 모르지만 군중 속의 개인은 본능에 충실한 야만인이 되는 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반대로 개인은 절대 하지 못할 ‘도덕적인’ 행동을 군중은 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역사적으로 증명됐다. 의병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도 긴 역사에서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을 겪었지만 그때마다 조정이 나라를 지키지 못하면 의병이 일어나 막아냈다.

저자는 “군중은 살인과 방화를 비롯해 거의 모든 종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헌신과 희생, 이타적 행위를 실천할 수도 있다”며 “이는 심지어 혼자인 개인이 실현할 수 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이라고 짚는다.

물론 저자는 수천마리의 레밍이 줄지어 바닷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에 빗대어 군중의 ‘우매함’을 조롱하기도 한다. 하지만 “군중이 이성적 사유를 하지 않으며 특히 무의식에 이끌려 행동한다는 사실에 너무 불평할 필요는 없다”며 “만약 군중이 이따금 생각이라는 걸 하며 제 눈앞의 이익을 따졌다면 아마도 이 지구상에는 어떠한 문명도 발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면도 언급한다.

군중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자는 바로 지도자다. 저자는 위대한 지도자의 자질로 ‘타고난 위신’을 꼽는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취하는 것 이상의 아우라가 있어야 역사에 남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위신을 타고나는 능력은 극소수만이 갖는데 그들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이들이 자신의 사상과 감정을 강요하면 군중은 그 소수에게 복종하고 만다. 마치 맹수가 한 입거리도 안 되는 조련사에게 복종하듯이 말이다.”

일례로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 잔다르크, 나폴레옹 등이 ‘위신’을 타고난 인물들이다. 저자는 “신, 영웅, 교리는 받아들여지는 것이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타고난 위신을 지닌 지도자일수록 왕관의 무게를 무겁게 지닌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어제까지 군중에게 환호를 받던 영웅도 실패를 겪으면 바로 다음날 야유를 받는다”며 “그러한 반응은 그가 떨친 위신이 클수록 더욱 강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어떻게 하면 지도자는 왕관을 계속 지켜낼 수 있을까. 그는 “일단 논란의 대상이 된 위신은 더 이상 위신이 아니다”며 “군중이 우러러보는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촌철살인을 날린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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