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월세 15만원 뛰고 학생들 고금리 고물가 월세에 시름
기숙사 확충 등 청년 주거 부담 해소 위한 대책 필요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학·외대 인근 원룸 밀집 지역 모습 [김도윤 기자] |
“큰돈 대출받기도 어려워서, 올 초 전세사기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월세로 집을 구했어요.”
[헤럴드경제〓김도윤 수습기자]동대문구 대학가에서 만난 한 청년의 말이다. 청년들에게 전세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자산을 모을 수 있는 거주 방식이지만, 동시에 사기 위험이 여전히 큰 주거 형태로 남아 있다. 헤럴드경제는 지난 4월 대규모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한 동대문구 이문동·회기동 대학가와 전년 대비 가장 월세가 많이 오른 성균관대 인근 대학가를 찾았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20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김모(57) 씨를 검찰에 구속 송치했다. 김 씨는 경희대·한국외대 학생들이 많이 사는 동대문구 일대에 다수의 부동산을 소유한 임대사업자로, 분양 대금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세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아 114억 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임차인은 대부분 대학생으로 총 114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강을 앞두고 8월에 경희대 중문에 월세를 구했다는 대학생 이모(25) 씨는 “복학하고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할 때 전세보다는 일단 월세를 알아보고 집을 구했다”며 “부동산 중개인을 재촉하더라도 등기부등본을 보고 근저당 비율, 계약서 보증보험 여부 등을 꼼꼼히 살피게 됐다”고 답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모(24) 씨는 “지금 당장 융통할 수 있는 돈이 보증금 6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선이어서 집을 찾아보니 월세 50만 원으로는 지어진 지 20년이 넘은 구축 건물이나 반지하 집 말고는 살 수 있는 집이 없었다”며 “시간을 쪼개서 알바를 하나 더 나가고 57만 원에 이층집을 최근에 구했다”고 했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 가격 정보에 따르면 올해 동대문구의 빌라(연립·다세대) 전세 거래량은 1월부터 10월 6일 기준 935건으로 작년 1300건보다 약 28% 가까이 줄었다.
외대 후문 부동산 중개소 관계자는 “요즘 외대 후문 쪽에서는 학생들이 전세를 기피하는 추세”라며 “청년안심대출, LH 전세자금 대출 이율이 예전에 비해 오르기도 했고, 전세 사기도 있다 보니 월세를 선호한다”고 했다. 이어 “예전에 월에 60만 원 정도 하던 월세가 10에서 15만 원 올라 75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며 “학생도 학부모도 집을 구할 때 전보다 굉장히 방어적으로 집을 본다”고 덧붙였다.
▶기숙사 문제와 자취 선택의 딜레마〓 “기숙사에 살면 가스레인지를 켤 수 없고 완제품 위주로 먹거나 바깥에서 사서 먹어야 해서 돈이 더 들어요. 최근에 자취를 시작했는데 저렴한 조건으로 찾다 보니 방음이 안 되는 게 힘듭니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원룸(전용면적 33㎡ 이하·보증금 1000만원) 평균 월세는 60만원, 관리비는 7만9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9만9000원·7만1000원)과 비교해 월세는 0.2%, 관리비는 11% 각각 올랐다.
대학가 중 전년 대비 가장 월세가 많이 오른 곳은 성균관대 인근이다. 지난해 8월 53만원이던 월세가 올해 62만 원으로 17% 뛰었다.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 인근 한 공인중개사에 매물 가격표가 붙어 있다 [김도윤 기자] |
학식을 먹고 나오던 성균관대 재학생 원(25) 씨는 “4호선으로 통학하는 입장에서 학교까지 최소 1시간은 걸린다”며 “고학년이 되면서 자취를 고려했지만, 월세 60만 원이 넘는 데다 생활비, 관리비, 식비까지 감당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도서관 방향 쪽문 근처에 있던 주변 식당들이 그나마 가격이 저렴했었는데, 지금은 한끼 8000원이 넘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다”며 “학교 주변에 사는 것에 대한 메리트가 크게 줄어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과에 재학 중인 서모(22) 씨는 “작년에 학교와 가까운 곳에 자취했을 때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가 50만 원이 넘는 방밖에 구할 수 없었고 상태도 너무 안 좋았다”며 “올해는 월세 77만 원에 공과금 별도인 집을 성신여대 근처에서 구했다”고 했다. 이어 “지금 사는 집은 학교까지 15분이면 도착한다”며 “기숙사는 비용이 외부 월세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굳이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년 월세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정부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원 정책을 마련해 주면 좋겠다는 글로벌 경제학과 정모(22) 씨는 “교내에 킨고(KINGO-M)라는 앱이 있는데 국가장학금 말고도 청년월세 한시 특별지원 정책이나 생활지원비 관련해서도 대학이 정부와 연계해 더 많은 학생이 관련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홍보에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종로구 성균관로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 통학보다 자취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외국인 학생도 늘면서 이에 따라 수요는 꾸준히 증가했지만, 공급은 따라가지 못해 월세가 오르는 것”이라며 “노후 한옥을 개조하거나 신축 건물이 들어서서 주거 공급을 늘릴 방법이 필요한데 부지가 부족하고 규제도 많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답했다.
7일 한국사학진흥재단에서 발표한 ‘2023 대학별 기숙사 현황’에 따르면, 기숙사 입사 경쟁률은 사립대학이 0.8, 국공립은 0.9였다. 서울 소재 대학 중 재학생이 1만 명이 넘으면서 기숙사를 운영하는 대학은 19곳이다. 19개 대학의 평균 입사경쟁률은 약 1.51이었다. 경희대학의 경우 1.5, 성균관대학은 1.5, 한국외국어대학의 경우 1.7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청소년연구원이 2022년 12월 발간한 ‘청년 빈곤 실태와 자립 안전망 체계 구축 방안 연구 II’에 따르면, 응답자의 82.8%가 청년 주택 또는 임대주택 확대가 가장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는 청년들이 단기적인 금융 지원보다 안정적인 주거 지원을 더욱 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시의 청년 안심주택 공급 계획에 따르면, 올해 서울 지역에서 공급되는 청년 안심주택은 7781가구에 불과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대학 재학생은 약 50만7923명에 달하며, 이 중 2% 정도만 청년 안심주택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셈이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숙사 확충이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 기숙사나 청년 주거지를 확충하려는 노력이 있긴 하지만, 공급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며 “특히 서울은 지방과 달리 학령인구가 감소하지 않고 오히려 지방 대학생들이 유입되는 구조가 지속돼 문제 해결이 더욱 쉽지 않은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의 주거 문제와 관련해 현재의 대학들은 오로지 기숙사 수용률로만 평가된다”며 “기숙사 수용률 기준 11%만 채우면 나머지 89%는 해결된 것처럼 간주하는 방식은 비합리적이다. 대학이 20~30%를 수용할 수 있도록 유인책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그럴 동기가 부족한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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