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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9 비자 외국인 2020년 이후 7410명 근무지 이탈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 환경 탓
“컨테이너 생활에도 근무지 못바꿔”
불법 체류자 양산하는 제도 바꿔야

지난 2020년 이후 고용허가제(E-9)를 통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 중 7410명이 근무지를 무단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컨테이너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도 최저임금 수준의 저임금을 감내해야 하는데도 근무지를 변경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탓에 현행 제도가 오히려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4일 헤럴드경제가 고용노동부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이후 올해 8월까지 E-9 비자를 통해 우리나라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 수는 약 26만5000명이다. 같은 기간 근무지를 이탈한 외국인 근로자는 모두 7410명이다. 고용주가 신고한 외국인 근로자는 이탈 이후 법무부의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불법체류자’ 신세가 된다.

업종별로는 어업 분야가 가장 많은 이탈자를 기록했다. 어업에서만 3091명이 이탈했고, 농축산업은 1726명, 제조업은 1320명의 이탈자를 기록했다. 이밖에 건설업에서 270명, 서비스업에서는 3명이 이탈했다.

특히 E-9 근로자의 근무지 이탈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20년엔 947명이 이탈했지만, 2022년에는 2088명으로 그 증가폭은 무려 120.5%에 달한다.

이탈 원인은 대부분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이 최근 서울시 시범사업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사건은 이런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이들 가사관리사들은 최저임금이 보장되지만, 세금과 숙소비 등의 공제를 받고 나면 실수령액이 50만원대에 그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보다 좋은 근로환경에서 더 많은 임금을 받기 위해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을 감수하고 이탈하는 것은 부당한 대우에도 합법적으로 근무지를 이탈하기 어려운 탓도 크다. 실제 지난 8월 ‘이주노동자 증언대회’에선 충북 음성 제조업체 네팔 출신 근로자들은 사업주가 법을 어기고 컨테이너를 숙소로 제공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산재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외국인 근로자 산재 신청 건수는 2만2361명에 달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처음 고용된 사업장에서만 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장 폐업이나 부당한 근로환경과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고용노동부의 허가를 받아 근로장소를 변경할 수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제약이 많다. 이 탓에 외국인 근로자들은 불만족스러운 근로조건에서도 고용주가 변경을 허락하지 않으면 대처할 방법이 없어 이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로장소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어야 사업주가 더 나은 임금과 근로조건을 제공하려는 경쟁이 생기고, 노동 환경도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주노동팀장 최정규 변호사는 “임금 체불이 발생해도 바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을 만큼 선택권이 제한된다”며 “외국인 노동자의 이탈 사유에는 제도적 문제점도 분명 있다”고 말했다.

김용훈 기자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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