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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한가운데 놓인 ‘텅 빈 수영장’…우린 무엇을 잃어가고 있나 [요즘 전시]
엘름그린·드라그셋 듀오 개인전
공간 속 사회적 맥락 뒤트는 작품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기획전 ‘스페이스(Spaces)’.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마이클 엘름그린(63)과 잉가 드라그셋(55)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볼법한 거대한 수영장을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설치했다. 그런데 수영장에 있어야 할 물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한 방울조차 없다. 한 소년이 홀로 걸터 앉아있고, 다른 소년은 VR(가상현실) 기기를 착용한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물 빠진 사람’이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지만 라이프가드는 맡은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듯 키가 높은 의자에 앉아 망원경으로 여기저기 살핀다.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수영장에 놓인 관객은 자신만의 세계에 있는 이들을 보며 질문하게 된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 단절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존재 의미를 어떻게 찾아나가야 할까.

엘름그린&드라그셋 ‘더 아모레퍼시픽 수영장(The Amorepacific Pool)’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SNS 피드를 넘기면서 마주하는 일상의 이미지처럼 작품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숨겨진 내러티브를 찾을 수 있고요.” 전시장에서 만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관객이 전시 속에서 다양한 해석을 하는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며 이같이 전했다.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한 이들은 북유럽 출신 듀오 작가로 공간의 사회적인 맥락을 뒤트는 설치작품과 퍼포먼스로 이름을 알렸다. 실제로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전시장도 수영장을 포함해 집, 레스토랑, 주방, 작업실 등 5개의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됐다. 아시아 최대 규모 개인전이다.

관객을 맞는 작품은 42평에 달하는 집이다.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델하우스 같은 공간 내부에는 한 소년이 창문 유리에 ‘I’(나)라고 적고 있다. 이밖에도 ‘다시는 보지 말자!’고 적힌 거울, 뒤집어진 침대, 바닥에 널브러진 구름 관찰자를 위한 그림책 등이 퍼즐처럼 숨겨져 있다. 관객은 작품 곳곳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집이라는 실재적 공간이 어떻게 그 자체로 고립감을 나타내는지 추리할 만한 단서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두 작가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엘름그린&드라그셋 ‘쉐도우 하우스(Shadow House)’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엘름그린&드라그셋 ‘더 크라우드(The Cloud)’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더 크라우드’ 이름이 붙은 고급 레스토랑에는 친구와 영상 통화를 하는 극사실적인 여성 조각이 홀로 앉아 있다. “결국 비밀이라는 건 질질 새어 나오기 마련”이라면서도 “나는 너의 비밀을 진짜 무덤 끝까지 가져갈 거야”라는 수화기 너머 친구의 하소연이 쉴 새 없이 쏟아진다. 무관심한 표정으로 그저 화면을 바라보는 여성의 얼굴이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쏟아내는 친구의 목소리와 대비된다. 물리적으로 만나야 할 공간에서 기술로 이뤄지는 두 인간의 대화가 ‘진정한 소통’으로 연결될 수 있을지 판단하는 것은 결국 관객의 몫이다. 두 작가는 “개인적인 경험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열린 구조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레스토랑과 문 너머로 연결되는 주방은 마치 실험실을 연상케 한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현미경을 통해 말 그대로 음식을 개발하고 있다. 그들 옆에는 성공적인 연구 결과를 알리는 듯 ‘유기농 과학’이라고 적힌 쌀 포대가 놓여 있다. 새의 알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노란 조도 아래에서 부화를 기다리고, 정작 새의 알이 있어야 할 둥지에는 책 ‘새가 되는 법’이 덩그러니 있다. 두 작가가 비튼 일상의 공간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이렇듯 우리는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전시는 내년 2월 23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8000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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