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 후보자, 아직 구체적인 통상 공약 제시 않아…바이든 정책 계승
미국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로이터] |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 50여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외교·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인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통상 정책에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는 대미 무역흑자(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를 문제삼아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적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한미동맹 중시 기조를 계승할 것으로 보여 원만한 관계가 예상되지만, 아직 구체적인 통상 공약을 제시하지 않아 물음표도 일부 남겨두고 있다.
16일 정부에 따르면 미국 대선은 오는 11월 5일 치뤄질 예정이다. 두 후보자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해리스 부통령 모두 중국에 대한 강경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한중관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재임 기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개시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에만 60%가 넘는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전기차 수입을 막겠다고 공약하는 등 이번에도 유세 과정에서 중국을 맹공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도 중국과 21세기를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겠다고 선언했으며, 민주당 정강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 대응, 중국의 첨단기술 확보 차단, 미국 중심의 공급망 강화 등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 근간을 유지했다. 다만 두 후보 간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접근은 독불장군식이지만, 해리스 부통령은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정책이 위협적으로 비치는 것에 비해 허술한 점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 반면, 바이든 행정부는 수출통제와 투자 제한 조치 등으로 촘촘한 포위망을 짜고 있어 한국 등 중국의 주요 교역국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평가도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스스로를 ‘관세맨’이라고 칭했던 첫 임기 때처럼 관세를 경제 문제의 ‘만능 해법’으로 여기고 있으며 외교에서 상대국의 양보를 압박하는 무기로 사용할 태세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에 관세를 부과하는 국가에 같은 수준의 관세로 대응하는 ‘상호 무역법’을 제정하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그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우리나라에도 FTA 체결 취지를 무시하면서까지 관세를 부과할 것이냐다. 바이든 행정부의 공급망 재편으로 우리 기업들이 점점 중국에서 미국으로 눈을 돌리면서 이제 미국이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됐기 때문에 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한국은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민감하게 여기는 대미 무역흑자(미국 입장에서 무역적자)는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금액은 216억7100만달러(약 29조원)로 작년 동기보다 86.9% 급증했다. 대미 수출액이 25.9% 증가한 데 비해 미국으로부터 수입액은 4.8% 늘어나는 데 그쳐 흑자액이 크게 불어났다. 이 기간 세계 각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23.9% 증가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거래하는 200여개 국가 중 한국의 무역흑자 규모 순위는 종전 14위에서 9위로 5계단 뛰어올랐다. 한국이 대미 무역흑자 순위 10위권으로 진입한 것은 2019년 10위를 기록한 이후 3년 만의 일이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대부분 경제학자의 지적처럼 관세가 일반 미국인의 물가 부담을 키운다고 보고 부정적인 기류다. 그는 최근 토론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관세 제안을 “전 국민 부가세, 트럼프 세금”이라고 비판하고서 관세를 부과하면 중산층 가정이 지급해야 할 비용이 연간 4000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리스 캠프는 관세에 대한 입장을 “미국 노동자를 지원하고 우리 경제를 강화하며 우리 적들이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해 전략적인 표적 관세”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핵심 산업에서 중국과 경쟁에 필요한 제한적 수준의 관세에 찬성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바이든 행정부의 다양한 지원책에 끌려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등 청정에너지 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한 한국 기업들의 사업 환경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보조금 등을 “녹색 사기”로 규정하고서 이런 사업을 위해 책정했지만, 아직 사용하지 않은 예산을 도로, 교량, 댐 등의 사업으로 전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전기차 보조금 등을 없애려면 의회의 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지 못하더라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지급 요건을 더 까다롭게 바꿀 수 있다. 다만 공화당 강세 지역이 IRA 보조금에 따른 투자 혜택을 적지 않게 보고 있고, 이미 전기차로 전환을 시작한 자동차 업계가 정책 변화를 원치 않을 수 있어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IRA의 상원 표결 당시 찬반 표가 같은 상황에서 찬성표를 던져 가결 처리한 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청정에너지 확대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 기조를 이어갈 태세라 더 안정적인 사업 환경을 기대할 수 있다.
한편,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기자들을 만나 “과거 2016년, 2020년 대선 때와 비교해 올해 미 대선에선 통상 이슈가 크게 두드러지지 않은 상황”이라며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응해 나갈 수 있도록 통상정책 변화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중국 정책은 (민주·공화) 양당 후보가 비슷하기 때문에 얘기를 해도 차별화가 잘 안된다”라며 “통상정책을 내세워서 유권자 표심을 흔들 수 있는 이슈가 큰 틀에서 보면 많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 다시금 한미 FTA 재협상 요구에 나설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며 “아직은 그런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osky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