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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판 클럽 ‘금란방’ 매직…금기는 깨지고, 이자상은 슈퍼스타가 된다 [고승희의 리와인드]
오는 28일까지ㆍ서울예술단 ‘금란방’  
매일 술시 열리는 조선의 밀주방
신분ㆍ성별 등 모든 금기를 깨는 곳
반복의 묘미로 정리정돈 잘 된 무대
서울예술단 '금란방' [서울예술단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여기는 금~란~방!”

‘조선의 힙스터’들이 20~21세기 어딘가에서 멈춘 춤사위를 입고 무대를 휘젓는다. 어깨춤이 자동 입력되는 반복적 비트에 주입식 교육처럼 외치는 ‘금란방!’. 지금 이곳은 그 어디도 아닌 조선의 밀주방. ‘음주’가 허락되지 않은 이 나라에서 매일 술시(戌時, 19~21시)에 몰래 열리는 ‘금란방’이다.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금란방’(28일까지·국립극장 하늘)이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2018년 초연, 올해로 세 번째 시즌을 맞은 ‘금란방’은 국립극장 하늘극장으로 무대를 옮겼다. 동그란 원형의 극장 한가운데 세워진 무대, 그 무대를 감싸안은 객석 구조는 공연 관람객을 금세 금란방의 손님으로 뒤바꾼다. 이곳에서 ‘금란방’ 마법이 시작된다.

‘금란방’의 시계는 18세기 조선 영조 시대에서 시작한다. 술도 이야기도 금지된 이곳에선 자유를 향한 갈망이 끝도 없이 꿈틀댄다.

‘금란방’은 등장인물도, 이야기도, 음악도 다양하다. 모든 요소들이 지루할 틈 없이 꽉꽉 채워진 ‘꾸꾸꾸’(꾸미고 꾸미고 또 꾸미고)의 행렬이다. 덕분에 눈을 뗄 수도 없고, 숨 돌릴 겨를도 없다.

서울예술단 '금란방'의 이자상 [서울예술단 제공]

주요 등장인물은 총 5명. 조선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슈퍼스타인 이자상과 술도 이야기도 금지하고선 날이면 날마다 ‘소설 듣는 재미’에 푹 빠진 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대부 신분의 ‘서간 관리자’ 김윤신, 김윤신의 딸 매화와 몸종 영이, 매화의 예비신랑 윤구연. 각기 다른 이유로 금란방을 찾은 이들의 좌충우돌 ‘현실 스토리’와 이자상이 풀어가는 ‘이야기 속 이야기’가 얽혀 이 무대를 완성한다. 그 와중에 ‘관객 참여형’을 지향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다. 보여줘야 할 것과 들려줄 것, 시도해야 할 것이 많아 자칫 어수선할 수 있음에도 ‘금란방’은 정리정돈이 잘 된 무대를 만들었다.

‘금란방’은 끊임없이 금기를 깨고 한계를 넘는 이야기다. 전기수 이자상은 이야기가 금지된 시대의 ‘금기’를 깨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스스로 ‘남장여자’로 성별을 뒤바꾼 채 물리적 성을 뛰어넘는 ‘금녀’의 사랑과 자유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이야기를 요구하는 자본에도 맞서니 끝도 없이 벽을 넘어서는 인물이다. 여기에 신분을 초월한 윤구연과 영이의 사랑, 성별의 경계를 넘어 자유로운 삶을 꿈꾸는 극중극 속 인물들이 18세기 조선에서 살아난다. 신분제와 엄숙주의에 갇힌 사대부 김윤신도 시대의 한계와 제약을 넘어 사고의 틀을 깬다.

금기를 깨부수는 이야기 곳곳엔 ‘노림수’가 숨어있다. ‘금란방’ 구성의 강점은 ‘반복’에 있다. 의도적인 반복들이 개연성을 만들어 자칫 산만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무대 위쪽에 자리한 DJ 루바토(장완석)는 막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공연 전부터 관객들의 귀에 익혀둔 반복된 비트를 던져주며 자연스럽게 몰입을 높인다. 배우들이 무대 재정비 동안 무대를 에워싼 관객들에게 ‘가상의 술’을 ‘콸콸콸’ 따라주는 연기를 하는 것도 온전히 무대에 집중하게 하는 장치다. ‘운명의 종소리’와 같은 상징적 멜로디의 삽입이나 ‘대사의 반복’, 상황의 반복도 ‘금란방’의 웃음 포인트다. 코미디의 기본은 ‘반복’에 있다는 명제를 충실히 이행한 장치였다.

서울예술단 '금란방' [서울예술단 제공]

음악은 다양성과 친숙함으로 승부했다. 클럽 음악을 기반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되 다채로운 장르로 각각의 인물의 특성을 반영했다. 국악과 테크 하우스, 발라드와 트로트 선율은 물론 민중가요의 특징까지 각각의 넘버마다 버무려졌다. ‘금란방’을 처음 만나는 관객들에겐 완전히 생소한 음악임에도 피로함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금란방’은 K-팝 그룹 멤버나 배우들이 주조연을 맡았던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시리즈와는 달리 오로지 단체의 단원들만이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서울예술단 관계자는 “한국적 소재를 기반으로 한 작품인 만큼 사물, 한국무용, 가극 등을 전문적으로 할 수 있는 서울예술단 단원이 그 재미와 흥을 더 잘 살릴 수 있어 출연진을 단원으로만 구성했다”고 귀띔했다.

전략은 통했다. ‘천 개의 파랑’, ‘신과 함께’, ‘다윗 영의 악의 기원’ 등 서울예술단의 인기 뮤지컬에선 주조연 캐릭터에 가려 존재감이 흐려졌고, 심지어 작품 안에서도 다소 겉돌았던 단원들의 매력이 이 작품에선 십분 살아났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함께 해온 단원들의 호흡도 좋았다. 서로의 에너지로 꽉꽉 채워져 무대는 빈틈없이 돌아갔고, 단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도 아닌 자신으로 존재해 개개인의 연기와 움직임이 더 잘 드러났다. 파워E 단원들 덕에 ‘금란방’은 이머시브(관객 몰입형) 공연의 정점을 찍었다. 이자상 등장신에 그 효과는 극에 달한다. 시시각각 이어지는 ‘조선의 슈퍼스타’를 향한 찬양이 객석으로도 금세 전염된다. 무대 위 배우들이 쉴새없이 숙덕거리는 ‘이자상’ 예찬에 공연 시작 30분 뒤 그는 ‘모두의 아이돌’이 된다. ‘금란방 매직’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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