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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해도 드러내지 않는 LG전자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박솔미 LG전자 브랜드전략팀 책임 인터뷰
제품 뒤 가려진 사람들 이야기 책으로 엮어
자료조사부터 전현직 임원·CEO 인터뷰까지
해외에선 LG 몰랐던 시절 고군분투기 담아
박솔미 LG전자 글로벌마케팅센터 브랜드전략팀 책임이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진행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직접 집필한 브랜드북 ‘담대한 낙관주의자, LG전자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다. [LG전자 제공]

김밥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던 세계 최초 롤러블 TV, 이불에 스크린을 싸서 외출하는 모습에 착안해 개발한 스탠바이미 고(GO), 터치 두 번에 스마트폰을 켰던 기술을 그대로 가져온 냉장고 노크온 기능까지.

LG전자는 출시 때마다 세상을 놀라게 했던 혁신 제품의 개발 뒷이야기를 모아 지난 6월 브랜드북 ‘담대한 낙관주의자, LG전자 사람들’을 발간했다.

단순히 기업의 역사를 시간 순으로 정리한 사사(社史)와는 다르다. LG전자 가전이야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잘 알지만 그 제품이 나오기까지 LG전자 사람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의 순간들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야기다.

LG전자는 제품 뒤에 가려졌던 사람들을 앞으로 불러내 그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전쟁터에서도 제품을 팔기 위해 방탄복을 입고 뛰었던 전직 임원의 소회부터 얼음 정수기 냉장고를 미국에 출시하기 전 미국인들이 쓰는 모든 컵과 텀블러의 사이즈를 일일이 전수조사했던 일화, LG라는 브랜드를 알지도 못했던 호주 사람들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던 ‘Life’s Good‘ 슬로건 탄생 비화까지.

LG전자의 첫 브랜드북은 이제 막 입사 1년이 지난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바로 박솔미 LG전자 글로벌마케팅센터 브랜드전략팀 책임이다. 브랜드북 제작을 직접 제안한 박솔미 책임은 지난해 3월부터 1년 넘게 자료 조사와 전·현직 임직원 인터뷰, 집필에 매달린 끝에 책을 선보였다.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만난 박 책임은 “사내 모든 본부의 마케팅에 관여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그동안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들어 책을 한 번 써보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박 책임은 과거 제일기획 카피라이터와 애플 콘텐츠 에디터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여러 권의 책을 낸 경험도 있다. 다양한 형식의 글을 써왔던 박 책임은 LG전자에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전·현직 임직원 48명으로부터 에피소드를 수집하고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일화를 모아 잊혔던 LG전자의 역사를 한 페이지씩 복원해갔다.

박 책임은 “회사에서 책 집필에 대한 전권을 제게 줬다”며 “회사에 오래 재직한 분들이 누구를 만나보면 좋을지 힌트도 줬고 연락이 어려운 퇴직 임원들의 경우 윗분들이 직접 나서서 인터뷰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도 박 책임의 브랜드북 제작 소식을 듣고 직접 만나자고 제안해 자신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들려줬다. 그 덕분에 책에는 사원 시절부터 CEO를 꿈꿨던 조주완 CEO의 에피소드와 캐나다법인장 시절 LG전자를 프리미엄 브랜드로 각인시킨 일화 등이 담겼다.

지금은 LG전자를 떠난 퇴직 임원들도 책을 통해 재조명된 자신들의 ‘그 때 그 이야기’를 보고 뜨거운 반응을 보내오고 있다고 한다. 박 책임은 “퇴직 임원 분들이 가장 열렬한 팬”이라고 들려줬다.

‘세탁기 신화’의 주인공으로 유명한 조성진 전 부회장의 이야기도 책의 한 챕터를 장식했다. 조 전 부회장 아내의 말 한마디에서 출발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의류관리기 ‘스타일러’ 개발기가 대표적이다. 조 전 부회장은 책을 집필한 박 책임에게 “고생 많았다. 잘 읽어보겠다”는 격려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박 책임은 책을 쓰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느꼈던 에피소드로 1984년 LG전자가 미국 현지 바이어로부터 더 이상 함께 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던 일화를 꼽았다. 당시 가성비 좋은 제품으로 유명했던 LG전자는 ‘프로덕트(제품) 리더십’이 없다는 지적과 함께 바이어에게 ‘이별’을 당했다. 이는 LG전자가 가성비 전략을 버리고 프리미엄 브랜드로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됐다

박 책임은 “단순히 제품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라 사람 역시 더 오래, 멀리 가려면 스스로 프리미엄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일화를 책에 잘 담으면 단순히 LG전자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을 넘어 대중에게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던 일화”라고 말했다.

박 책임은 이번 책을 준비하기 위해 많은 LG전자 사람들을 만나면서 공통점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LG전자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안 했던 것 같다. 스스로 드러내고 자기 자랑을 절대 나서서 하지 않는다. 좋은 제품을 개발하기까지 이래서 힘들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데 LG전자 사람들의 화법에는 그런 것이 없다. 고객들이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알아줄 것이라는 게 기본적인 마인드”라고 설명했다.

제일기획과 애플을 거치며 브랜딩 경험과 마케팅 역량을 쌓은 박 책임은 지난 2022년 LG전자에 합류하면서 LG전자 사람들을 외부에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번 브랜드북 발간도 그 일환이었다.

박 책임은 “이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나둘씩 꺼내며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들과 친해지는 작업을 해도 되는 시대”라며 “이전 회사에 다니면서 그 훈련을 정말 많이 했는데 지금 LG전자에서 하고 있는 일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이번 브랜드북 판매로 얻는 인세 수익금 전액을 사회공헌 기금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현재 2쇄까지 찍은 책은 예약주문이 몰리면서 다 팔렸다고 한다. 영문으로도 번역돼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도 판매 중이다.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겐 LG전자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입문서’로, 예전 LG전자에서 근무했던 이들에게는 과거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추억소환서’로 인기를 얻고 있다.

책이 발간된 이후 사내에선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며 박 책임에게 ‘제보’가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박 책임은 “이번 책은 실제 준비한 이야기의 절반 밖에 담지 못했다”고 했다. 아직 세상에 보여주지 않은 LG전자 사람들의 담대한 이야기가 절반이나 더 남은 셈이다.

김현일 기자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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