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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에 적은 니가타 농가월령가, 필드예술의 백미[함영훈의 멋·맛·쉼]
지속가능관광의 모범, 일본 동부 3개현⑤
‘대지의 예술제’ 논이 갤러리 된 노부타이

[헤럴드경제(니가타)=함영훈 기자] ‘대지의 예술제’가 펼쳐지고 있는 일본 니가타현 남쪽내륙의 도카마치시는 산악에서 흘러나온 시나노강이 작은 강들과 어울려 들녘을 적신다.

노부타이(농업무대) 미술관 야외 계단식논 전시장과 미술관 건물에 설치된 니가타식 농가월령가의 매칭 포토[함영훈 기자]
니가타현 중심부를 관통하는 아가노강.

도카마치시 서부 마쓰다이(松代) 지역은 시나노강의 지류인 시부미강(涉海川)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고, 주변은 높지 않은 구릉으로 둘러싸여 있다. 강이 흐르다 하상은 낮아지고 구릉이 높아지는 하안단구 지질현상의 결과이다. 단구(테라스)지역은 드넓은 논을 둘수 없었기에 계단식 논이 발달한다. 산비탈을 깎고 물의 흐름을 바꾸어 한뼘의 논이라도 더 만드려는 지혜가 발휘된다.

▶농업의 무대가 갤러리 되다= 마쓰다이 지역 사토야마(里山)마을의 ‘입체적인 논’과 구릉지, 평지의 논과 마을 사이에 들판이 갤러리가 되는 예술작품 필드와 노부타이(農舞台:농업무대) 미술관이 있다.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가 설계한 거점 건축물, 노부타이에서 산 정상의 마쓰시로성 까지 약 2km의 마을 산에 약 40점 가량의 작품이 산재해 있다.

노부타이 미술관 옆 얕은 구릉위에 있는 구사마야요이의 거대 조각품 ‘꽃피는 쓰마리’[함영훈 기자]
노부타이 미술관 옆 설치예술작품[함영훈 기자]

이곳을 촬영한 사진으로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계단식 논에 우리의 ‘농가월령가’ 같은 글귀를 적어놓은 것이다. 글귀 아래,위,옆에는 농부가 계절별로 열심히 일하는 조형물이 서 잇다.

‘4월 빛나는 태양 눈은 사라지고 눅눅한 안개가 허공을 채운다. 덩치 작은 말이 무거운 경작용 쟁기를 힘껏 당긴다. 봄 기운이 가기 전에, 논 농사 준비를 꼼꼼하게 하고, 새로운 파종과 씨 뿌리기를 한다.

5월초 태양이 아침부터 강하게 비추니, 논에 채워진 물 위로 햇살이 빛난다. 능숙한 농군이 따뜻해진 대지에 씨앗을 뿌려간다. 뾰족한 싹이 대지에서 점차 진하게 자라난다.

필드 미술관 영역중 한곳인 노부타이 계단식 논

5월의 태양 아래 나무들은 새 순을 틔우고, 논 물은 미지근해져간다. 화초의 줄기도 뻗어간다. 심어진 작물들이 대지에 안착할 수 있도록 나무틀로 괴어주고 병충해를 막아준다.

8월, 더위가 정점에 달해, 구슬같은 땀이 방울 방울 떨어지겠지. 쉴 틈 조차 없이 이 밭 저 밭 베어가겠지. 잡초가 벼를 덮어버리지 않도록. 안정을 찾는 벼. 사람 그림자 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 자란 벼 이삭.

9월은 낫을 휘둘러 한 개의 낟알도 남기지 않고 거둬들일 때다. 논에서 무거운 다발을 겨우 운반해 10월까지는 완전히 건조시켜 탈곡하자스라.’

내용은 문학적이라기 보다는 사실적이고, 또 소박하지만, 그 어떤 시(詩) 보다 농부의 땀방울이라는 문학적 아이콘이 여행자에게 주는 감흥은 크다.

▶청정 로컬푸드와 설국 홍차= 사실, 이 시는 논에 적힌 것이 아니다. 노부타이 미술관 건물 1.5층에 걸려 있는 싯구를 100m 가량 앞 계단식 논에 설치된 농부 조형물과 잘 매칭시켜 감상하는 것이다. 여행자들 사이에 매칭촬영 잘하기 내기도 벌어진다.

사토야마 로컬뷔페

이곳 사토야마(里山)식당은 로컬식재료로 건강하게 만든 가정식 뷔페로 차려놓았다. 계단식 논 풍경 보며 일본 최고의 쌀, 산나물 등을 즐긴다.

식당 내에는 지역특산품 매장도 있는데, 한국의 이천쌀에 비견되는 일본 최고의 마쓰다이 쌀과 현지쌀과 물로 빚은 사케를 구입한다. 로컬의 건강 토산품을 구입하는 것은 지속가능 여행자의 덕목이다. 소설 ‘설국’의 배경지 답게 설국홍차도 판다.

인근 '마쓰시로 향토박물관'은 지역의 역사를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휴식처로도 기능한다.

사토야마 마을 풍경

▶그야말로 ‘대지의 예술’ SOKO= 마쓰다이 지역에 있는 에치코쓰마리 소코(Soko) 미술관(화,수요일 휴관)은 2015년 옛 키요쓰쿄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리뉴얼해 ‘창고 미술관’으로 출발했다. 전시하면서 보관한다는 개념이다.

이 지역 농경문명의 본향인 쓰마리 지역의 관문이라, 현대 대형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이곳엔 대지예술제가 개최될 때 마다 많은 관람객이 방문했다.

도시를 작품 전시의 장으로 삼으려 하지만, 작품 보관에 어려움을 겪던 많은 예술가들을 배려해 폐교를 개조한 것이다. 폐교 지역민들은 예술이 들어와 좋고, 예술가들은 작품을 보관할 수 있어 좋은 상생 모델이다. 초대형 작품들을 감상하는 보기 드문 장소로, 방문객과 지역민과의 교류, 지역 행사를 개최하는 한마당으로서의 기능도 한다.

레인모우 워터 완성 기념촬영에 주민과 예술가 탐사과학자 모두 참석했다.[SOKO 사진 재촬영]

이곳에는 물줄기가 인간의 삶을 바꾼 내용의 이소베 유키히사 작품들이 대거 전시돼 있다. 시나노강 수로 탐사는 이소베가 에치고쓰마리 전역의 현지 조사를 통해 수집한 지형, 기후, 풍습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데 거의 20년을 투자한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그의 작품활동은 지질조사인지 예술창작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은 그대로 예술이고, 인간의 창의성이 가미될 때 더욱 빛나는 걸작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물줄기에 예술적인 기둥을 도열시켜 땅위에 회랑을 만들고, 물줄기 변환지점 과정을 담은 회화도 있다.

물줄기를 바꾼 과정을 담은 이소베 유키히사의 회화 작품

▶문명의 터전, 대지의 탐사도 예술이다= 지금까지 280m 길이의 ‘(인공 도랑) 레이보우워터 기념물’, ‘강은 어디로 가는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25m 더 높게 흐르는 시나노강-공중에 떠 있는 글자’, ‘노가와 강의 길’, ‘농무와 음악의 회랑’, ‘고대 시나노 강의 천연 제방이 여기에 있다’, ‘산사태 기념비’ 등이 그의 작품이다.

“예전에는 시나노강이 지금보다 25m나 더 높게 흘렀다”는 말은 옛날 하상이 높았다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하안단구(하상의융기 혹은 수량 감소로 생긴 계단식 언덕)가 형성돼 왔음을 알려준다.

‘강은 어디로 가는가’라는 작품은 노란색 막대를 사용해 100년 전 시나노강 수로의 분포를 재현하고, 과거에 시나노강과 사람들이 어떻게 접촉하게 되었는지 예술적으로 ‘표시’했다.

‘강은 어디로 가는가’ 옛 강물길의 자취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

산사태 기념비는 작품이자 유적이다. 2011년 3월 나가노현 북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인해 쓰난초 다쓰노구치의 도야 호수에서 대량의 암석, 눈, 흙, 모래가 포함된 산사태가 발생해 국도 353호선이 100m 이상 매몰되었는데, 이 작품은 아직 붕괴될 위험이 남아있는 지역에 기둥을 세워 산사태와 그 위험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한편, 마쓰다이 지역 대표 유적은 서기 807년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가 누나가와 공주를 모시기 위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시전 마쓰오신사이다. 본전은 1497년 건립된 목조 초가집이라 이채롭다. 목조 초가지붕 건축물로서는 가장 오랜된 것 중 하나이다.

왕건과 이성계가 임실 성수산 상이암에서 기도를 올려 대권을 잡은 것처럼, 우에스기 겐신(上杉 謙信)을 비롯한 전국시대 최고 무장이 기도를 했다고 전해진다. 겐신이 기증한 단도와 히로마루의 부채가 이곳의 보물이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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