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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양궁 실력은 한민족 DNA+협회 공정시스템[서병기의 문화와 역사]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한국 양궁 대표팀이 '2024 파리올림픽' 양궁에 걸린 5개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고 돌아왔다. 내외신 기자들은 대한민국은 왜 양궁을 잘하는지를 분석하느라 분주하다.

일본 기자는 3관왕의 주역 김우진에게 "조선, 고구려 때부터 활 잘 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라고 질문을 던졌다. 김우진은 우리 민족의 양궁 DNA보다는 대한양궁협회(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잡혀 있어 모든 선수가 부정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한다고 말했다.

한국 양궁이 세계 최강인 것은 한국인의 피속에 양궁을 잘할 수 밖에 없는 유전적 기질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협회를 바탕으로 공정한 시스템이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전자도 중요하고 후자도 선수들이 기량을 발휘하는 데에는 핵심이다.

특히 양궁은 학연과 인맥 등 체육계의 고질병이기도 했던 파벌이 철저하게 배제돼 있어 좋은 결과를 낳았다. 양궁은 양자(兩者)가 시너지까지 냈으니, 결과는 좋을 수밖에 없다. 이는 '믿보양'(믿고 보는 양궁)의 이유다.

사격은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음에도 사격연맹 회장이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의 임금체불로 사표를 냈으며, 배드민턴도 여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안세영이 "대표팀과 함께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힌, '차분하게 분노한' 기자회견을 통해 협회 행정 체계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민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북방과 남방의 다양한 집단이 이주하면서 섞이는 과정을 통해 한반도까지 와 정착하게 됐다는 건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는 국사를 좁게 해석해 정주민(定住民)인 농경민족의 성격이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유목민의 후예라는 생각을 별로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몽골어, 만주어와 함께 한국어와 같은 알타이 어족(語族)에 속하는 나라인 튀르키예 사람들이 우리에게 "헤이, 브라더!!"라고 해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튀르키예는 학교에서 자신의 조상의 분파인 튀르크 민족인 돌궐(突厥)이 한반도 주변까지 이동했다고 배운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2011년작 영화 '최종병기 활'은 우리 민족의 유래와 이동에 대한 범위를 넓혀준 작품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병자호란기 조선 최고의 신궁 남이(박해일)가 청나라 정예부대 '니루'의 공격으로 누나와 매형이 포로로 잡혀가자, 이들 가족을 구하기 위해 활로 '니루'를 하나 둘씩 처단한다.

만주어를 쓰는 청의 무지막지한 명장 쥬신타(류성룡)도 남이의 신묘한 활솜씨를 보고 잔뜩 겁낸다. 남이는 직사(直射)는 물론이고, 날아오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곡사(曲射)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적을 불안하게 함과 동시에 명중률을 높인다. 여기서 남이의 명대사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가 나왔다.

중국의 한족(漢族)이 오랑캐라고 일컫는 북방 유목민들은 하나같이 활을 잘 쏜다. '한나라 기병 100명은 흉노 기병 3명이면 충분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목민족의 기마궁수(궁기병)는 강력하다.

활쏘기는 수렵용이자 전쟁 전략으로 발전됐다. 북방 유목민족들은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으로 한족들을 굴복시키곤 했다. 거란은 송을 굴복시키고 고려 땅을 넘봤다. 말과 활로 무장한 10만 몽골병력을 이끄는 알탄 칸은 명나라 11대 황제 가정제가 도교에 푹 빠져있는 사이 베이징 근처까지 침범해 명나라를 위기에 빠트렸다.(경술의 변)

이후에도 건주여진을 통합한 누르아치는 '나태 끝판왕'인 만력제가 있는 명나라를 본격 침입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그의 아들 홍타이지는 조선의 인조에게도 '삼배구고두례'의 수모를 안겼다.

당 태종은 안시성에서 고구려 장수가 쏜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물론 기록에 과장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개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고구려의 소수맥에서는 각궁(角弓)인 맥궁(貊弓)이라는 좋은 활이 생산됐다는 기록이 '위지(魏志)'에 나올 정도다.

말을 탈 때 발을 디딜 수 있도록 만든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인 등자[쇠 금(金) 변에 오를 등(登)]도 중국(랴오닝성)이 유럽보다 훨씬 먼저 출토됐다. 등자가 있어야 두 손이 자유로와져 마상무예가 가능해진다. 전쟁시에는 달리는 말 위에서 적군의 좌안, 또는 우안을 정확히 명중시키는 기마궁수들이 있었던 것 같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 광개토대왕릉비에서 멀리 않은 곳에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무덤 무용총(舞踊塚)이 있다. 무덤속 오른쪽 벽에는 미술 책에 자주 등장하는 수렵도(狩獵圖)가 있는데, 한 고구려 무사가 말 위에서 목디스크 위협을 무릅쓰고 얼굴을 뒤로 돌려 달아나는 사슴에게 활을 쏘고 있다. 이 정도면 난이도가 높은 '샷'이지 않은가. 수렵도에는 등자도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반면, 유럽에는 중세에도 말을 타고 활을 쏘기보다는 마창술(馬槍術)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동서양의 차이는 말 종류의 다름에서도 연유한다. 유럽 말의 기본은 아라비아 말이다. 유럽은 아라비아 수말을 유럽 암말에 종부시켜 말 크기를 키운 '서러브레드'(Thoroughbred)를 탄생시켰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다수 국가의 경마장에 있는 말들은 99% 서러브레드종이다.

유럽말들은 경쾌하고 빠르지만 장거리에는 약하다. 반면,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탔던 몽골말 등 북방유목민이 타는 말은 둔중하면서 장거리에 강하다. 말 위에서 활쏘기는 유럽말보다 북방 아시아 말이 훨씬 유리하다.

유럽에서도 영국은 튜더가의 마지막 군주 엘리자베스 1세의 아버지인 헨리 8세가 6번이나 결혼하며 로마 교황과 갈등관계를 조성하는 등 자신의 결혼만 신경 쓴 게 아니라, 1538년에 처음으로 양궁 대회를 여는 등 스포츠로서의 양궁 역사가 오래됐지만, 한국과의 경쟁에서는 뒤진다.

북방 중앙아시아 유목민족만 말을 타고 활쏘기를 잘 한 게 아니다. 우리 조상인 고구려나 발해 말갈족들도 말을 타고 활쏘기를 잘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선조의 피를 물러받은 우리가 지금도 양궁은 세계선수권대회보다 국가대표선발전이나 전국체전이 더 어려울 때가 있고, 금메달은 한국이 따고,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받은 국가에는 우리 지도자가 파견돼 있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해가 간다. 다른 국가 양궁선수는 "한국을 이기려면 한국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양궁대회가 세계화하면서 한국에서 세계 1위 선수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79년 세계선수권(서베를린) 금 김진호, 84 LA올림픽 금 서향순, 88 서울올림픽 금 김수녕 등 여자 선수들이 먼저 두각을 나타냈고, 남자도 2024 파리올림픽 총감독인 박성수가 88 올림픽 단체전 금, 양창훈 파리올림픽 여자대표팀 감독의 91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 등의 성과를 올렸다.

이제 이들의 후배이자 한국의 자랑스런 젊은 양궁 선수들이 멋진 경기를 펼치며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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