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캐’ 미진과 ‘부캐’ 임순 매끄럽게 이어져
“임순 분량 모니터링 후 촬영한 게 비결”
“차기작 검토중…가족 코미디에 욕심”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돌려 말하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 내가 지금 이런 전화 받을 기분이 아니라고 이 사기꾼 00아!”
공시생 8년차 이미진은 사실 꿀알바를 찾아 다니는 백수다. 시험 준비만 주구장창 하다 꽃다운 청춘을 날려버린 미진은 취업 사기를 당하고, 급기야 보이스피싱 전화까지 받는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팡지게 없는 하루다.
어느새 배우 데뷔 12년차. 배우 정은지는 이젠 경상도 사투리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자연스럽게 해내는 베테랑 연기자가 됐다. 처음으로 ‘2인 1역’에 도전한 그는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진을 연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4일 종영한 JTBC 토일드라마 ‘낮과 밤이 다른 그녀’(이하 낮밤녀)는 어느 날 갑자기 50대 임순으로 변해버려 이중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취준생 미진과 그에게 휘말린 검사 계지웅(최민혁 분)의 로맨틱 코미디다. 낮밤녀는 최종회 시청률이 11.7%(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지난 6일 서울 강남구 모처에서 헤럴드경제와 만난 정은지는 “마지막 방송을 배우들끼리 단체 관람했는데 (시청률이) 그냥 10%도 아니고 11%가 나와서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드라마가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조금 아쉬웠다”며 “미진이랑 임순이 헤어지지 않기를 바랐다.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것을 극복해 나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2인 1역’에 도전한 정은지는 두 사람이 같은 인물임을 표현하기 위해서 특히 공을 많이 들였다. 그는 “특히 정은 언니 연기 모니터를 엄청 많이 했다”며 “그때그때 언니가 이 전 신(scene)의 감정이 어땠는 지를 보고 저도 언니 대사를 같이 말하고 난 뒤 그 감정 상태로 바뀌어서 촬영에 들어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니의 팔 모양, 얼굴 방향, 눈물을 어느 정도 흘리는 지까지도 모두 모니터 대상이었다”며 “이런 경험이 엄청 긴장되기도 하는데, ‘체인지’되는 게 기분이 묘했다”고도 했다.
서로가 한 몸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를 하다 보니 ‘특별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는 “그날도 미진이라고 생각하고 정은 언니를 보는데, 평소 언니(가 원래 동안이기도 하지만)의 느낌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거다”며 “진짜 우리가 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드라마 보면서는 그런 느낌이 더 강해져갔다”고 말했다.
8년차 공무원시험 장수생을 연기하기 위해서 주변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기도 했다. 그는 “엄청 능력이 좋아도 운이 나빠 끝내 취업에 골인 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술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취준생의 그런 감정들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질문이 많고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힘든 점은 없었다”며 웃었다.
매년 취업에 실패하다 보니 한껏 자존감이 떨어진 미진의 심정을 이해한다고도 했다. 그는 “(미진은) 톱 아이돌인 고원이 아무리 잘 챙겨줘도 고원이를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긴 취준생활을 거치면서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미진이는 누가 자길 도와줘도 그걸 연애 감정으로 뻗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은지는 최진혁과의 케미에 대해선 “너무 친하고 편해서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촬영장에서 오빠랑 신나게 투닥거리니까 연인끼리 하는 사소한 장난이나 터치 연기가 편했다”며 “저는 편한 분위기가 연기적으로 몰입하는 데 도움이 됐는데, 오빠는 좀 방해가 됐을 수도 있었겠다”며 웃었다.
‘응답하라 1994’를 통해 연기자로 발돋움한 정은지는 굳이 무리해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고 싶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저는 제가 생활 연기를 할 때가 좋다. 제 연기가 엄청 편해 보이고, 아이디어도 샘솟는다”고 말했다.
올 하반기 새로운 드라마 촬영을 검토 중인 그는 앞으로 믿고 보는 정은지표 로코를 비롯해 가족코미디를 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또 경찰이나 군인 역을 맡아 진한 액션을 선보이거나, 검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역할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커리어와 개인 정은지로서 모두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선물처럼 들어온 작품이었어요. 배우들 케미가 좋았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선배님이 많이 생겨서 든든했습니다. 조금씩 저도 촬영장에서 ‘또 보네’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가고 있는 거 같아 정말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