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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벽한 기술, 되려 우리는 무기력해졌다…에르메스가 픽한 김희천 [요즘 전시]
작가 김희천의 작품 ‘스터디’(2024) [아뜰리에 에르메스]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고등학교 레슬링부 코치인 찬종은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끝내 자살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전국 레슬링 대회를 목전에 둔 선수들이 사라진다. 정작 그는 자취를 감춘 선수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훈련 녹화 비디오에는 실종된 선수들과 스파링을 했다는 선수들이 상대 없이 허공에서 혼자 레슬링을 하는 기이한 장면이 찍혀 있을 뿐이다.

‘그가 환영에 시달리나’ 싶어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진다. 완전히 암전된 전시장, 칠흑 같은 어둠이다. 관람객의 몸을 움츠리게 하는 날카로운 소리만이 정신없이 귓가를 때린다. 그렇게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되살아난다. “저는 저로서 어떻게 저와 제 소리가 사라질 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리는 찬종의 내래이션이 뇌리에 박힌다. 마치 자기 자신으로서는 이 세상에서 온전히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작가 김희천의 작품 ‘스터디’(2024)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서울 청담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린 작가 김희천(35)의 개인전 ‘스터디’(Studies) 얘기다. 지난해 3월 에르메스재단은 제20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그를 선정했다. 40분가량의 저해상도 영상을 두 개의 스크린으로 송출하는 그의 신작 ‘스터디’는 일종의 공포 영화다.

“빈틈없는 기술은 우리 삶의 외곽선을 정확하게 포착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해요. 기술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 원천이 된 것이죠.”

작가는 데이터 값으로 결과를 확정하는 기술의 제안이 오히려 인간을 제한한다고 봤다. 작가가 40여분간 진행된 인터뷰 내내 “답답했다”는 말을 일곱 차례나 한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그는 “오늘날 기술이 말하는 제 자신이 너무 선명했다”며 “(작품을 통해) 위험, 불안, 초조함 같은 실존 위기를 신체적으로 감각하고 싶었다”고 했다.

작가 김희천의 작품 ‘스터디’(2024) 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이를 위해 그는 공포 영화라는 틀을 빌렸다. 이후 일부러 기술의 취약함에 천착해 이를 작품에 의도적으로 노출했다. 예를 들면 군더더기 없는 선명한 화면 대신 자글자글한 저화질 장면으로 영상을 채운 것이다. 격투를 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전개에 따라 뭉개거나 비틀었다. 완벽한 기술이 사라진 세계에 공포가 피어오르는 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무한한 속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비현실적인 화면에서 역설적으로 모종의 해방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작품 소재로 레슬링을 선정한 배경에 대해 작가는 “최근 생활체육으로 레슬링을 배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평소 관심 가지고 좋아하는 것들을 주르륵 나열한 뒤 그 의미를 따져가며 작업 재료를 고민하는데, ‘두 사람이 하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레슬링을 낙점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레슬링은 손과 손이 밀접하게 부딪히고 손을 통해 상대의 신체를 감각하고 내 무게중심을 만들어내는 운동”이라고 덧붙였다.

작가 김희천. [아뜰리에 에르메스]

김희천은 소위 잘나가는 30대 젊은 작가들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런 그조차도 “제가 완전해 보이는 기술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가 이번 전시 제목을 작품 제목과 같은 ‘스터디’로 정한 배경이다. 작가는 “그동안 작업을 너무 완성하려고만 하지 않았나 싶었다”면서 “에르메스재단 지원으로 프랑스 파리 로댕미술관 견학을 갔는데, 과정으로서의 작품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래서 단순하게 스터디 같은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6일까지.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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