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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곤·불평등’은 선진국의 의도된 작품
서구열강, 저개발국서 ‘발전’ 명목 자원 수탈
자신들 경제성장 발판삼아 富國 지속 비판
채무국 부담 해소 등 ‘파격적’ 방법 제시
격차 / 제이슨 히켈 지음 김승진 옮김 홍기빈 해제/ 아를

G7(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캐나다), 유럽연합 등 서구권 국가는 언제부터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인식되기 시작된 것일까. 유럽인과 미국인은 근면한 국민성과 창의적인 발상을 지닌,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거주민에 비해 더 우월한 존재일까.

영국 왕립예술학회(RSA)의 회원이자 런던정치경제대 국제불평등연구소의 방문 선임연구원인 제이슨 히켈은 신간 ‘격차(The Divide)’에서 ‘더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게을러서,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 발전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후진국의 열등함을 비난하는 구태를 격파한다.

저자는 “글로벌 격차의 문제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가 각각 가진 내부적 특성 문제라기보다 이 두 지역이 어떤 방식으로 연결돼 있는가의 문제”라고 일갈한다. 또 “불평등 격차는 분명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이는 서구열강의 작품”이라고 단언한다. 저자가 불평등 연구에 천착하게 된 계기는 사회초년생 때 몸담았던 한 국제구호단체에서 크게 각성했던 경험에 기반한다. 저자는 대학 졸업 직후 아프리카 국가 스와질란드에서 가난한 사람에게 담보 없이 소액 대출을 해주는 단체에 몸 담은 바 있다. 그는 “처음에는 무언가 가치있는 일을 한다는 느낌과 모종의 사명감이 들어 나 자신이 고귀해진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선진국이 후진국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전 지구가 함께 발전한다’는 원조의 신화에 깊이 감명 받았던 순진한 청년은 곧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당시 그는 “이렇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스와질란드 사람 대부분은 왜 이렇게 계속해서 가난한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갖게 된다. 당시 저자는 스와질란드의 빈곤 문제는 그 나라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나라 밖의 문제 때문에 비롯됐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즉 서구 열강이 스와질란드를 포함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비서구권)와 관계 설정이 그 나라의 빈곤 문제와 연결됐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서구 열강이 소극적 방관도 아닌, 적극적으로 남반구의 발전을 가로막아 스와질란드의 빈곤이 지속되는 것으로 봤다. 글로벌 사우스 등 개발도상국이 발전해 나가면 서구 열강은 더 이상 값싼 노동력과 자원에 접근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같은 방해의 결과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 곳곳에서 벌어진 정치적 쿠데타와 서구 원조에 의존하는 독재 정권의 출현임을 환기시킨다. 또 저자는 서구의 자선단체들이 매년 수천 조달러를 원조 기금으로 쏟아붓는데도 개도국들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설명한다. 답은 간단하다.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금융청렴기구(GFI)와 노르웨이경제대의 2016년 연구에 따르면, 2012년 개도국이 해외로부터 받은 원조·투자는 총 2조달러가량이다. 하지만 같은 해 개도국에서 원조를 준 국가로 빠져나간 금액은 2배가 넘는 5조달러였다. 순유출 금액이 3조 달러나 되는 셈이다. 이 막대한 자금 유출은 대부분 서구 열강이 좌지우지하는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등에 ‘부채 상환’ 형식으로 빠져나간다. 상황이 이러하니 개도국에 백날 원조해봤자 효과가 있을 리 만무하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유럽과 미국이 ‘선진국’으로 불리게 된 역사는 채 300년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여러 장을 할애해 소개한다. 실제로 1500년대 전 세계 평민의 생활 수준을 비교하면 많은 면에서 오히려 라틴 아메리카, 인도, 아시아 사람이 유럽 사람에 비해 잘 살았다. 예컨대 기대 수명의 경우 1800년대 잉글랜드 주민의 기대 수명은 32~34세에 불과했고, 심지어 노동자 계급의 아이는 평균 15세 정도 사는 것이 전부였다. 반면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인은 유럽인에 비해 더 길고 건강하게 살았다. 일본인의 기대 수명은 41~45세, 중국은 35~40세,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민은 약 42세 등으로 유럽인에 비해 10년가량 길었다.

저자는 척박한 자연환경의 유럽은 그야말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탈한 은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농산물을 사올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자연적 한계를 넘어설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즉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이 세계 최초로 직물공장 등 자본집약적 산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인에게 특출난 무언가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식민지 수탈을 통한 자원의 독점 때문에 가능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저자는 글로벌 불평등을 타개할 여덟 가지 해법을 제시한다. 이들 해법을 두고 저자 스스로도 “대담하다”고 표현한다. 추천사를 쓴 경제 석학 장하준 영국 런던대 교수 역시 “미친 소리로 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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