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오상현 기자] 항공기가 적에게 격추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탐지되거나 격추될 수 있는 고도보다 높이 날거나, 날아오는 미사일보다 빨리 날거나, 왔다 갔는지도 모르게 모습을 숨기는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또 일부가 격추되더라도 더 많은 항공기를 투입해 임무를 완수하는 방법도 있겠네요.
미국은 이 네 가지 방법 중 항공기 임무 특성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해왔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무기큐브에서도 소개했던 U-2 정찰기가 대표적입니다. 일단 한 번 높은 고도로 올라가면 적진에서는 굳이 낮은 고도로 내려갈 필요가 없는 정찰기라는 임무 특성이 이 방법을 선택하기에 적합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지만 우주공간을 본격적으로 활용하면서부터 점차 효용성이 줄어들어 이제는 설 자리를 잃고 있고 오는 2026년 결국 퇴역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빨리 나는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U-2가 소련 상공에서 격추당하면서 개발한 SR-71 블랙버드가 이런 방법을 채택했었죠.
U-2 정찰기와 같은 고도에서 음속의 3배, 마하 3의 속도로 순항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연료소모와 엄청나게 비싼 유지비용, 잦은 기체 고장으로 일찍 퇴역하고 말았죠.
세 번째 방법은 앞선 두 방법보다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정찰기처럼 특정 고도에서 우아하게 비행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기체가 아니라 다양한 고도에서 공대공·공대지 임무를 수행해야하는 전투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죠.
가장 대표적인 예는 F-22로 들면 되겠네요. 현존하는 최고의 전투기라고 불리는 이유는 많지만 스텔스 기능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전투기에나 쓰일법한 스텔스 능력을 전투기보다 더 뛰어나게 발휘하는 폭격기가 있습니다.
B-2 스피릿.[사진=미공군] |
저는 이렇게 소개하고 싶군요. “바다에 핵잠수함이 있다면 하늘에는 B-2 폭격기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은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북대서양조약기구 간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촘촘한 소련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가 적 항공기들이 이륙하기 전에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 국방부 국방과학위원회는 1974년 높아진 기술 성숙도에 맞게 스텔스 공격기를 개발해야할 때라고 권고했고 이듬해인 1975년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실험용 생존성 테스트, XST사업을 제안하고 업체들을 모집했습니다.
XST 사업에는 노스롭과 록히드, 맥도넬 더글라스가 참가했고 이 중 록히드의 해브블루와 노스롭의 태싯블루가 선정돼 DARPA와 계약을 체결했죠.
이 사업에서는 A-12와 SR-71 개발 경험이 있는 록히드가 선택됐고 이 사업의 결과물은 최초의 스텔스 공격기 F-117 나이크호크로 나옵니다.
이 사업 이후 스텔스 기능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판단한 미국 정부는 1979년 첨단기술폭격기 프로그램, ATB 사업을 시작합니다.
이 사업에는 노스롭과 보잉이 한 팀을, 록히드와 록웰이 또 한 팀을 이뤄 참여했죠.
앞선 XST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던 노스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전투기와는 달리 폭탄을 실을 공간이 마련하려면 날개 전체를 활용할 수 있는 전익기 형태가 유리한데 노스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증기로 개발했던 YB-35와 YB-49 등 전익기 디자인을 개발했던 경험이 있는데다가 직전사업에서 고배를 마셨던 태싯블루의 스텔스 구조 설계 경험이 있었죠.
미 정부에서 록히드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는 후문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사업의 주인공은 노스롭이 됩니다.
1981년 10월 20일 노스롭의 디자인이 채택되고 B-2 스피릿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습니다.
이후 임무 고도가 고고도에서 저고도, 지형 추적으로 변경되면서 설계 변경이 이뤄졌고 1988년 11월 22일 캘리포니아 팜데일에서 처음 공개 됐으며 1989년 7월 17일 첫 공개비행이 이뤄지며 대중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명의 승무원이 탑승하는 B-2 스피릿은 길이 21m 날개폭 52.4m, 높이 5.18m의 거대한 동체를 가졌습니다.
1만7300파운드급 F118-GE-100 터보팬 엔진 4기를 장착하고 최대 1만5200m고도에서 최고속도 마하 0.95로 비행할 수 있죠.
순항속도는 마하 0.85로 1만1100㎞의 항속거리를 자랑합니다.
폭격기인 만큼 엄청난 양의 폭장량을 자랑합니다. 2개의 내부무장창에 18t의 무장을 장착할 수 있는데요.
80발의 500파운드급 폭탄 Mk-82를 장착하거나 750파운드급 폭탄 36발, 또는 GBU-38 JDAM을 80발 장착할 수 있습니다.
또 2011년부터는 최신형 순항미사일 AGM-158 JASSM을 16발 장착할 수 있고 최대 350kt급의 B61이나 1.2Mt급의 B83핵폭탄을 16발 장착할 수 있습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가 TNT 1만5000t의 위력인 15kt급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B-2는 이런 핵폭탄을 고도의 스텔스 성능을 유지한 채 적 상공으로 침투해 투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레이더 반사면적은 0.1㎡로 알려져 있고, 반사 방지 페인트를 동체에 칠해 1만5000m 상공에서 낮에 비행해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앞서 제가 B-2 전략폭격기를 핵잠수함에 비유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을 소개할 때도 언급했지만 일단 물속에 들어가면 찾기 어려운 잠수함이 언제 어디에서 공격할지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선제공격을 할 수 없는 것처럼 B-2 전략폭격기 역시 고도의 스텔스 능력으로 핵 보복공격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강력한 억제수단이라는 것이죠.
B-2는 1999년 3월 24일 NATO군의 유고슬라비아 공습작전인 ‘얼라이드 포스’ 작전으로 데뷔했습니다.
B-2는 선진화된 유고슬라비아군의 방공망을 돌파해 합동직격탄(JDAM)을 투하했습니다. 3월 24일부터 6월 19일까지 79일 동안 6대의 B-2가 JDAM 656발을 투하해 무기공장이나 공군기지, 지휘·통신시설을 정밀 타격했죠.
9·11 테러 보복작전의 선봉에 선 것도 B-2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공습에 B-2 6대가 3일간 투입됐는데 6번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40시간 동안 1만2000㎞,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해 폭격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 대기하던 조종사와 교대해 30시간 동안 모기지인 화이트맨 기지로 돌아갔는데 왕복 70시간에 달하는 작전시간은 미군 항공 작전 사상 가장 긴 시간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능력을 자랑하는 B-2에게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바로 생산비용과 유지·보수비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것이죠.
애초 미국은 1980년대 중반 B-2를 132대까지 생산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비싼 개발비용 탓에 75대로 줄었고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되자 20대만 생산하기로 했죠.
우여곡절 끝에 21대만 생산된 B-2는 현재 19대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2008년 2월 23일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이륙 직후 추락해 전소되면서 한 대를 보내드렸고 또 한 대는 지난 2022년 12월 10일 기내 오작동으로 비상착륙했지만 지난 5월, 1년 반 동안 고민하던 미 공군은 “수리하기에 비경제적”이라며 매각 결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런 B-2 전략폭격기가 최근 집단비행을 펼친 영상이 공개되면서 주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지난 4월 15일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에서 12대의 B-2 스피릿이 한 활주로에 늘어선 모습이 공개된 건데요.
B-2의 위력과 준비상태를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스피릿 비질런스 훈련인데 중국의 스텔스 폭격기 공개를 앞둔 기죽이기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B-2 전략폭격기도 이제 일몰의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미국은 이를 대체할 더 강력한 전력을 준비했고 지난 5월 23일 공개했죠.
미 공군이 개발 중인 신형 전략핵폭격기 B-21 레이더(Raider)의 모습. [미 공군] |
바로 차세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1 레이더’ 입니다.
길이 16m, 날개폭 40m, 무장탑재중량은 9.1t으로 B-2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지만 스텔스 성능이 향상되고 첨단 기술이 총집결된 디지털 폭격기라는 점에서 작전능력은 더 뛰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0년대 중반에 배치될 예정이고 100대를 제작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최초의 6세대 항공기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던데.. 단순한 폭탄이나 유도미사일 말고 엄청난 수의 군집드론을 쏟아내는 건 아닐지 모르겠네요?
무튼 우리 머리 위로 그런 것들을 떨어뜨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B-21은 어떤 능력을 보여줄까요? 혹시 여러분이 알고 계신 정보가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프로파일럿= 기자 오상현 / PD 김성근, 우원희, 박정은, 김정률 / CG 이윤지, 임예진 / 제작책임 김율 / 운영책임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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