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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산에 웬 아테네 여신상이? 美작가가 본 천년 뒤 서울은… [요즘 전시]
미래로 관람객 초대해 현재 보여줘
일상의 물건이 막 출토된 유물 같아
맥락 없고 완성도 떨어진 이미지 아쉬워
다니엘 아샴의 ‘서울 3024’ 전시에 발굴 현장처럼 연출된 작품 ‘발굴현장’. 이정아 기자
다니엘 아샴의 ‘서울 3024’ 전시에 발굴 현장처럼 연출된 작품 ‘발굴현장’. 이정아 기자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00년 전과 비교해서 오늘날의 세계가 점점 더 비슷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티파니앤코, 디올, 포르쉐, 디즈니, 아디다스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브랜드부터 더 위켄드, 퍼렐 윌리엄스 등 유명 뮤지션과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인지도를 높인 미국 작가 다니엘 아샴(44)의 전시가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을 찾았다. 조각, 드로잉, 영상, 설치미술 등 250여 점의 작업으로 천년 뒤 서울을 재해석한 ‘서울 3024’ 전시다.

전시는 천년이 지난 미래로 관람객을 초대해 과거가 된 현재를 조망한다. 동서양 문명이 시간을 초월해 혼재하고, 실재하는 존재와 허구의 존재가 시공간을 넘어 뒤엉킨다.

다니엘 아샴의 ‘서울 3024’ 전시에 부식된 피카쥬 조각 ‘좌수정 결정으로 된 피카츄 좌상(Amethyst Crystallized Seated Pikachu)’(2020). 이정아 기자
다니엘 아샴의 ‘Fractured Idols XVII’(2024). [롯데뮤지엄]

예컨대 전시장 한 켠은 일상의 물건이 마치 막 출토된 유물처럼 변모했다. 석고로 뜬 스마트폰, 컴퓨터, 태블릿, 기타, 모자 등이 바닥에 가지런히 깔려 발굴 현장을 방불케 하는 연출이다. 고전 그리스·로마 조각상과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절반씩 뒤섞인 회화가 벽에 걸렸고, 동굴처럼 연출된 공간에는 퇴색되고 부식된 포켓몬 캐릭터 조각이 진열돼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아샴은 “우리가 도착하는 매 순간이 미래”라며 “우리는 이미 미래에 도착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올해 앞서 개막한 ‘베니스 3024’, ‘방콕 3024’을 잇는 콘셉트의 전시로 지난해 뉴욕과 파리에서 연 20주년전에 출품된 작품도 포함돼 있다.

다니엘 아샴. [롯데뮤지엄]

그의 작품 세계의 시작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그는 루이비통의 커미션 작업을 위해 남미 이스터섬에서 유물 발굴 현장을 접하게 됐다. 이때 아샴은 과거 유물로 현시점의 역사를 추적하는 고고학자에게 영감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자신만의 미학적 개념을 만들었다. 바로 ‘상상의 고고학’(Fictional Archaeology)이다. 그렇게 아샴은 석고로 떠내고 다시 부식시키는 방식으로 일상의 사물을 미래에 발굴된 유물처럼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예술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봤다. 순수 미술만이 아닌 상업 예술을 넘나들며 잇따른 협업으로 반경을 넓힌 배경이다. 그 결과 ‘지금 가장 눈에 띄는 작가’로 꼽히게 된 아샴은 인스타그램 팔로워만 144만 명에 달하는 소위 잘나가는 ‘셀럽’이다.

다니엘 아샴의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2024). [롯데뮤지엄]

다만 고고학이나 역사를 주제로 하는 작가라고 소개하기에는 여전히 동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가 심히 부족해 보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천년 뒤 서울을 주제로 선보인 대형 신작 2점이 대표적이다. 천년 뒤 북한산에 아테네 여신상과 로마 조각상이 느닷없이 나타난 모습을 표현한 그림인데, ‘혼종적 미래’라는 콘셉트만 있을 뿐 역사적 맥락은 고려되지 않았거나 다소 폭력적으로 완전히 배제됐다. 미국 사회를 대변하듯 ‘멜팅팟(melting pot·용광로)’처럼 질서 없이 뒤섞인 허구적 이미지 사이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은 관객의 몫이라지만, 작가로서 최소한의 문제의식도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다니엘 아샴의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2024). [롯데뮤지엄]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열린 ‘베니스 3024’ 전시에 출품된 회화와 비교해 보면 서울 주제 신작은 미학적 완성도가 떨어진다. 해당 전시는 9월 15일까지. [다니엘 아샴 인스타그램]

그림 제목과 달리 실제 북한산을 떠올리기 어려운 구도나 떨어지는 그림의 완성도 등의 이유로 이미지 그 자체로 완결된 미학이나 디자인으로 보기도 어렵다. 작가는 북한산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통해 ‘북한산’을 검색, 이를 자신의 상상력과 결합시켜 화면을 채웠다.

한편 아샴은 ‘색맹’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초기작에서 유독 하얀색이 많이 보이는 이유다. 그는 “지금은 시력을 교정해주는 렌즈의 도움을 받아 더 많은 색감을 볼 수 있게 됐다”며 “색상마다 12개의 숫자를 붙여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10월 13일까지. 관람료는 성인 기준 2만원.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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