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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일·반독재 '고흥의 인물' 서민호 선생 고향서 홀대
군립도서관에 책1권 없어 홀대...군민들 "월파 잘 몰라"
고흥군 고흥읍 군립중앙도서관. [독자 제공]

[헤럴드경제(고흥)=박대성 기자] "월파 서민호 선생의 올 곧은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선생님의 업적을 보존하고 발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2023년 11월 23일 월파 선생 탄생 120주년 기념 학술행사에서 공영민 군수의 인사말.)

전라남도 고흥 출신 의로운 인물인 월파(月坡) 서민호(1903∼1974) 선생을 기리는 운동이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그와 관련된 책이 한 권도 없어 군민운동으로 승화시키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수감되고 해방 이후에는 평생을 자유당 독재와 군사독재에 맞선 월파 서민호 선생은 구한말 고흥에서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해 일본 와세다대학과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반독재 투쟁에 나섰던 인물이다.

그가 높이 평가 받는 부분은 본인의 안위만 생각한다면 부친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보수주의자의 삶을 걸어 왔을 법한데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반기를 들고 저항했다는 점이다.

월파 서민호 선생은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에 항거해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고, 3·1운동 때는 상해 임시정부 비밀지령문 등사 주모자로 지목돼 두 번의 감옥 생활을 했다.

이승만 정권 시절 국회 민의원에 당선된 이후 생명을 걸고 거창양민학살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을 폭로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시기임에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면서까지 굴욕적인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 비준을 반대하며 끝까지 투쟁했다.

동강면 노동리 죽산마을에서 태어난 월파 선생은 근현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꼽히며, 일제강점기 때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광복 이후에는 독재 타도운동을 벌였고 은퇴 이후에는 통일운동에 매진하다 1974년 유명을 달리했다.

고향인 고흥에서도 뒤늦게 월파 선생의 치열한 삶을 되돌아보는 기념식과 월파 유적지 탐방 행사를 열며 고흥의 인물 임을 부각시키고 있다.

월파 서민호를 재조명하는 학술행사가 '월파 서민호 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지난해 11월 열렸고 기념사업회(이사장 송원하)는 이달부터는 매월 2회씩 고흥 동강면과 보성군 벌교읍 지역의 월파 선생 유적지 탐방 행사도 개시했다.

이처럼 고흥을 대표하는 서민호 선생 재조명 운동이 활발하게 일고 있지만, 정작 군민들에게 월파 선생 일생을 조명한 책이나 회고록, 발언집, 필설(글과 말) 조차 구할 수 없어 저변 확대에 한계가 있는 실정이다.

고흥읍 주민 류모 씨는 "우리는 그분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으나, 젊은 세대는 전혀 모르고 있더라"며 "이 고장 출신 인물을 선양해야 할 고향에서조차 월파 선생에 관한 책 한 권 없어서야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이에 대해 군청 문화체육과 관계자는 "월파 서민호 선생님 관련 책이 도서구매 목록에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며 "앞으로 구매 목록에 포함시키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0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고 그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3묘역에 이장 후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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