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역주행 사고에 시민·상인들 ‘집단 트라우마’… “내가 희생자였을 수 있다”
사고 발생 지점 인근 직장인·상인들 트라우마 호소
전문가 “자동차 출입 폐쇄 대처”, “심리지원 활용”
3일 오전 역주행 사고가 발생한 시청역 인근 교차로 인도에서 한 시민이 무릎을 꿇은채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있다. 김용재 기자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정주원 수습기자]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서울시청 역주행 교통사고로 인근 직장인과 상인 등 시민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거리의 경우 먹자골목, 지하철 환승역과도 가까워 퇴근 후에도 회식을 하거나 지인을 만나는 친숙한 공간이라 충격이 크다는 설명이다.

4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일 발생한 시청역 역주행 교통사고가 발생한 지점 인근 직장인들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고로 동료 직원 두 명을 떠나보낸 서울시에서는 비통한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사망한 공무원 2명은 인근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고 나오다 참변을 당했다. 서울시 공무원 A씨는 “며칠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멍한 상태”라며 “언제든 내가 사고 희생자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4명의 사망자가 나온 신한은행 역시 침통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신한은행에 다니고 있는 30대 김모씨는 “이번 충격으로 부서를 옮기겠다는 이들도 있다”라며 “많은 부서들이 (사고 당일) 회식을 진행했는데, 사고 직후 다들 말을 잃은 것 같다. 회사에서 ‘인생이 허무한 것 아니냐’는 얘기만 나온다”라고 말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시민들 사이에서는 ‘언제든 내게도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라는 두려움과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인근 직장인들은 자신의 생활 영역에서 사고가 벌어진 데에 크게 충격을 느꼈다.

노원구에서 을지로입구로 출근한다는 직장인 박모(31)씨는 “퇴근할 때 매일 다니는 길인데 이제는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사고가 났던 인근 거리를 걷기가 무섭다”라며 “횡단보도에 서서는 차량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라고 했다.

사고 당일 시청역 인근에서 회식을 했다는 직장인 황모(33)씨는 “‘내가 1시간만 늦게 집에 갔어도 참사 희생자가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더라”라며 “희생자 중에 비슷한 또래도 있는데, 정말 마음이 안좋아서 말문이 막힌다”라고 했다.

지난 1일 밤 승용차가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3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인근 교차로 사고현장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를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인근 가게 주인들도 심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인근 가판대 주인 손모(70)씨는 “사건을 봤으면 그 자리에서 충격으로 죽었을 것 같다”라며 “가게 주변이라 너무 충격이고 안타깝다. 그날 가게를 쉬어서 정말 다행이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다”라며 트라우마를 호소하기도 했다.

현장 인근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B씨는 “가게에서 좋은날, 좋은 분위기로 회식을 하다가 변을 당한 분들이 있는데 너무 마음에 걸려서 큰 꽃다발을 놨다”라며 “어제도 장사를 안했고, 오늘도 (가게를)빨리 닫을 예정”이라며 한숨 쉬었다. 삼계탕집을 운영하는 C씨 역시 “끔찍한 장면을 직접 목격한 직원이 많아 걱정”이라고 했다.

서울 자치구 정신상담센터 관계자는 “최근 여러 참사가 연속해서 발생하면서 가슴 두근거림을 호소하는 전화가 늘었다”라며 “참사가 일어난 현장을 담은 동영상 등이 인터넷 커뮤니티 중심으로 퍼지면서, 편집없는 사고 영상을 본 이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가트라우마센터에 따르면 재난경험자는 재난으로 인해 직접적 충격이나 손상이 된 피해자뿐만 아니라 재난이 일어난 지역사회 거주자, 매스컴이나 대중매체로 간접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까지도 재난경험자에 포함한다. 이들은 박동 증가, 소화 기능 저하 등 신체 반응뿐만 아니라 불안감과 우울함, 절망감 등을 동시에 겪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친숙한 공간에서 갑자기 발생한 참사인 만큼 많은 시민들이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면서 적절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준호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인근 직장인, 상인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라며 “사고 발생 장소 자동차 출입을 폐쇄하거나, 펜스 높이 재조정을 하는 등 다시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안정감을 줘야한다”라고 말했다.

심민영 국립정신건강센터 국가트라우마센터장은 “목격자나 인근 상인들은 직접 사고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괜찮은게 아니다”라며 “이들이 자신의 현재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심리지원체계를 이용하는 등 대처가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brunch@heraldcorp.com
jookapooka@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