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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도인데 선풍기도 못 틀어”…美빈곤층 300만명 단전 위기[디브리핑]
버지니아 주, 폭염시 단전 금지 법안 통과
대부분 단전, 여름철 집중…열 탈진 우려
전력업체들 “단전은 최후 수단…추가 규제 필요 없어”
22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2차세계대전 기념탑 앞의 분수 광장에서 시민들이 열기를 식히고 있다. [AFP]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세계 경제 대국 미국에서도 최악의 폭염 속에 빈곤층의 피해가 가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988년 이래 최악의 폭염이 닥친 가운데 요금 미납으로 전기가 끊기면서 선풍기조차 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자 단전 금지 법안까지 나왔다고 23일(현지시간) CNBC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버지니아 주에서는 오는 7월 1일부터 전력회사들이 폭염 기간 전기요금을 내지 못한 가구에 대해 전기를 끊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통과됐다. 해당 법에 따르면 버지니아 내 전력회사는 33.3도를 넘을 경우 단전을 금하며 그보다 낮은 기온이더라도 금요일, 공휴일 또는 공휴일 전날에는 단전을 할 수 없도록 했다.

해당 법안을 주도한 래쉬렉스 에어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미국과 세상이 불타고 있고 폭염에 따른 위기와 비상사태는 앞으로도 더 많은 곳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기후 변화와 기온 상승에 대안을 만들지 못하는 한 우리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며 법안의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에어드 상원의원은 “어릴 적 경제적 이유로 단전을 겪었다”면서 “지금까지 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미국 전역에서 7일 연속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워싱턴DC 일부 지역은 최고 기온이 38도를 넘어서면서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미국 기상청은 미국 전역에서 약 1500만명이 폭염 경보, 9000만명이 폭염 주의보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인구(3억4200만명)의 약 3분의 1이 폭염에 노출된 상태인 셈이다. 심지어 온화한 겨울과 시원한 여름 기후로 유명한 오리건 주에서도 열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 주의 한 태양광 발전단지 [AFP]

데이비드 코니스키 인디애나 대학 에너지정의연구소 소장은 “밤에도 열대야가 이어질 때 사람들은 열(熱) 탈진에 시달리게 되고 단전으로 냉방이 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 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나마 버지니아 주의 빈곤층은 운이 좋은 편이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봉쇄기간 동안 경제 활동 위축을 우려한 약 40여개 주정부들은 단전을 유예하는 임시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봉쇄가 풀리면서 임시 명령도 효력을 다했다. 여전히 23개 주에서는 특정 기온을 기준으로 단전을 유예하는 보호 장치가 있지만 모든 상황에서 단전이 금지되는 것은 아니며 고객이 의료적 필요와 같은 유예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오리건 주의 경우 혹한기에 대한 보호 규정은 있지만 여름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에너지정의연구소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연간 300만명의 사람들이 월 전기요금을 낼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단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 단전은 6~8월 여름철에 집중되고 있다. 평균 기온이 점차 올라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름 동안 단전이 대규모로 이뤄질 경우 빈곤층이 온열 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코니스키 소장의 설명이다.

오하이오 주에서 가난한 이들을 돕는 펠릭스 루소 뉴라이프 선교회 목사는 “가난한 이들이 전기 요금에 대한 걱정을 털어 놓으면 하루 이틀 뒤에 실제 전기가 끊긴다”면서 “직접 전력회사에 전화를 걸어 대신 협상을 시도하거나 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사회복지 기관과 연결해주고 있지만 점점 더 과부하에 걸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밀린 요금을 언제까지, 어떻게 납부할 것인지 계획을 제출하면 단전을 면할 수 있지만 추가로 붙는 이자율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밀린 요금을 갚더라도 다시 전기를 사용하려면 ‘‘재연결 수수료’를 추가로 내야 하거나 다시 요금이 밀릴 때를 대비한 보증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오하이오 주의 경우 전력회사가 1개월치 예상요금의 1.3배에 달하는 보증금을 내도록 요구할 수 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빈곤층에게는 또다른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사회복지단체 패스 홈은 “미국이 생명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상품화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단전으로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을 막을 입법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력회사들의 항변도 만만치 않다. 이들은 단전이 ‘최후의 수단’이며 추가적인 입법이나 규제는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미국 내 두번째로 큰 전력회사인 듀크에너지는 “혹서기나 혹한기에는 요금 미납 고객에 대해서는 자발적으로 단전을 유예하는 오랜 정책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항변에 대해 에어드 의언은 입법은 고객 뿐 아니라 전력회사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전력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객의 확보”라며 “(단전으로) 빈곤층이 사망하고 나면 전력회사에겐 고객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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