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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행 교사 눈앞에서 투신, 자퇴…10년 만에 학교로” 이 교사가 돌아온 이유[우리사회 레버넌트]
“감옥 같던” 학교, 교사 폭행과 학생들 비웃음에 학교서 투신
그 길로 자퇴…“내 얘기 들어주는 사람 있었다면” 교사 꿈꿔
자퇴생 출신에 장애까지…6년의 시도 끝 사립고 정교사로
“망해서 나가는 것도, 루저도 아니야” 자퇴생 위로하는 교사
[우리사회 레버넌트]

‘바닥’에서 ‘반전’은 시작됩니다. 고비에서 발견한 깨달음, 끝이라 생각했을 때 찾아온 기회. 삶의 바닥을 전환점 삼아 멋진 반전을 이뤄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 위기를 겪고 있다면, 레버넌트(revenant·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반전의 실마리를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이윤승 교사가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랑구 이화여대 병설미디어고등학교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함부로 남을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1996년 서울의 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이윤승(44)씨는 5층 교실 창틀에 서서 이렇게 생각했다. 수업이 한창이던 오후였다. 이씨는 곧장 뛰어내렸다.

이씨 뒤엔 교사가 서 있었다. 그의 손엔 이씨가 공책에 끄적인 습작 글이 들려 있었다. “수업도 안 듣고 니까짓 게 무슨 글을 쓰느냐”며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앞에서 이씨의 글을 읽어내렸다. “엎드려 뻗쳐!”라는 고함과 폭행이 이어졌다. 그 뒤로 들려온 건 “쟤 원래 좀 이상해요”라는 학생들의 비웃음.

“걔 연애 문제 없었냐?” 투신에도 반성 없던 학교

그날 이후 이씨는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온몸의 뼈가 부러진 큰 사고였던 탓에 1년 간 병원만 전전했다. 후유증으로 이씨는 지금까지도 지팡이를 짚고, 가끔은 통증으로 잠을 이루기 어렵다. 치료 중에 자퇴서를 냈지만 학교에선 이유조차 물어오지 않았다. 교사에 대한 학내 징계 절차도 없었다.

해당 교사는 이후 교장직까지 맡으며, 이씨의 말로는 “승승장구”했다. 오히려 이씨의 친구들에게 “걔(이씨) 연애 문제 없었냐”, “집안 문제는 없었냐”고 물으며 이씨가 투신한 다른 이유들을 찾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 몇몇 기자들이 취재를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회가 교사를 비판할 리는 없다’는 회의감에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28년이 지난 지금, 이씨는 학교로 돌아와 있다. 서울 중랑구의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에서 15년째 교사 생활 중이다. 다른 학교에서의 기간제 교사 생활까지 합하면 21년째다. 이씨를 학교로 돌아오게 만든 건 두 가지 마음이었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교사가 한 명만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사립학교 문화를 바꾸고 싶다”는 약간의 복수심.

“감옥 같았다” 학교 떠난 이유
이윤승 교사. 임세준 기자

그날 이씨의 투신은 하루만의 충동적 결정은 아니었다. “정말 감옥 같은 곳이었다.” 이씨는 자신의 학교 생활을 이렇게 회상했다. 학생 인권이란 개념이 자리 잡기 전인 그 시절의 만연한 분위기였다고는 하지만 이씨는 견디기 어려웠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만 쾌적한 자습 공간을 줬던 사소한 차별부터, 폭력이 당연한 분위기까지. “내가 장애인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너네는 장애인도 아니면서 고마워할 줄을 몰라”라고 말한 교사에 이씨가 문제 제기를 하자, 교사가 “너 나랑 ‘맞짱’ 한번 뜨자”며 빈 교실로 이씨를 불러낸 일도 있었다. 이씨는 “마음껏 때리라”며 교사를 내버려뒀다. 이씨가 학내에서 소위 ‘또라이’로 찍힌 계기였다.

이씨는 “괜찮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괴로웠다”며 “친구들과 떠들고 매점에서 간식을 나눠먹고 복도에서 놀다가도, 종이 울리고 교실에 들어갈 시간이 되면 막막해졌다”고 털어놨다.

“왜 자퇴했느냐” 탈락 또 탈락…6년의 기간제 생활
이윤승 교사. 임세준 기자

‘자퇴생’ 신분으로 2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 이씨에겐 어느새 ‘교사’라는 꿈이 생겼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대학에 가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신분을 마냥 즐겨왔던 이씨가 아쉬움을 느끼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씨는 “폭력을 참으라고만 하지 말고 도움을 주려는 교사가 한명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쯤 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가지 않았을까, 고등학생인 이윤승이 원했던 그런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후 이씨는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해 고려대 수학교육과에 입학했다. “사립 고등학교로 돌아가겠다”는 게 유일한 목표였기 때문에, 교대나 임용고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무난히 대학을 졸업했지만 정교사가 되기까지는 다시 쉽지 않았다. 졸업 후 2년 간은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했고, 이후로 총 6년 동안은 기간제 교사 생활만 했다. “서울에 있는 모든 사립학교란 사립학교는 다 다닌 것 같다”는 게 이씨의 회상이다.

정교사 최종 면접에 가더라도 늘 “왜 장애가 있느냐”, “왜 자퇴를 했느냐”는 질문에 부딪혔다. 이에 이씨는 등산을 하거나 추락했다거나, 학교에서 청소를 너무 열심히 하다 떨어졌으며 이 때문에 자퇴를 했다는 등 ‘본심’을 숨기기도 했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면접 과정에서 “걸을 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 학생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다”, “자식 같아서 하는 말인데 어차피 교사가 되긴 힘들 거다, 앉아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이씨가 탈락을 거듭하던 중 처음으로 이씨의 자퇴 경력이나 장애 여부를 개의치 않았던 게 당시 이씨를 채용한 지금의 학교였다.

“만만한 사람 하나 있었어” 기억 남기고파

교사로서의 이씨 목표는 하나다. “우리 학교에 참 만만한 사람 하나 있었어”라는 기억을 학생들에게 남기는 것. 이씨는 “프린트 해달라고 하면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그런 선생님이 되고 싶다”며 “상하관계가 분명한 경직된 학교 문화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씨가 학생들과 서로 ‘반말’을 쓰는 것도 이 이유다. 학생들이 “이윤승 뭐해?”라고 물으면 이씨는 “어, 밥 먹으러 가”라고 답한다. 이씨는 교사가 학생들에게 숨기며 말하지 않는 것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불문율’을 없애고 싶다.

이런 이씨 덕분에 학생들도 편하게 질문을 하고, 때론 이씨 말에 거절도 한다. “왜 수학여행 버스에 다른 반끼리 섞여서 타야 돼?”라고 물으면 “한 반이 같은 차를 타기엔 비싸고, 학교 입장에서 그게 편해서 그래. 만약 용납이 안 되면 내가 한번 싸워볼게”라고 답한다. “모의고사 끝났으니 같이 삼겹살을 먹으러 가자”는 이씨의 제안에 학생들이 “싫다”고 하면 원하는 학생 서넛만 남기도 한다.

“앞으로 발전할 학생” 텅빈 자퇴생 생기부 채워준 교사

이씨는 ‘과거의 이윤승과 같은 학생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말에 곧바로 한 학생을 떠올렸다. 이미 한 차례 자퇴를 했다가 복학했지만 또 다시 자퇴를 해 결국 학교를 떠났다는 최모 씨다. 가끔 연락 없이 학교에 나오지 않는 등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는 최씨.

최씨 담임을 맡은 적도 없어 이씨도 최씨의 자세한 사정을 알진 못한다. 하지만 최씨는 가끔 이씨에게만 “병원에 가느라 학교에 안 나온거다”라며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결국 최씨가 자퇴를 하겠다며 이씨를 찾아온 날, 이씨는 “망해서 학교를 나가는 게 아니야. 더 잘 되려고 나가는 거야. 나도 자퇴할 때 내가 ‘루저’인가 생각을 했는데 아니었어”라고 말했다.

학업을 다 마치지 않아 텅빈 최씨 생활기록부에 이씨만이 내용을 채워주기도 했다. 이씨는 “수업 태도가 좋고, 성실하고 밝은 학생이며 앞으로 발전할 것이란 내용을 써줬다”며 “학기를 마친 게 아니니 생활기록부를 쓸 필욘 없어 실제로 교사들 아무도 쓰지 않았지만, 몇 달이나마 학교에 있었다는 기록을 남겨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어떤 특성을 가졌든, 혹여 자퇴를 선택하더라도 모든 학생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켰으면 한다는 게 이씨의 바람이다. “자퇴생 출신인 장애인 교사가 한 명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안다면, 학생들도 학교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승 교사. 임세준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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