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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구 아득한 ‘의정갈등’… 전공의 “안돌아가”·환자들 “죽으란 소리냐”
임현택 의협 회장, 회원들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 발표
박단 “범대위 공동위원장 맡겠다 한 적 없어”
시도의사회 회장 “무기한 집단휴진 발언 황당하다”
전공의 “우린 이미 공공의 적…쉽게 돌아가기 힘들어”
19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내원객들이 대기하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안효정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가 대정부 투쟁의 수단으로 총궐기대회와 집단휴진에 나섰지만 막상 의료계의 내분으로 협상 창구가 실종되는 모습이다. 정부는 단일대오 유지에 실패한 의협을 압박하고 있지만 별 성과는 못 거두고 있다. 출구로 나아가지 못하는 의정대치가 계속되는 사이 의료 현장은 파행하며 환자들의 속은 더욱 타들어가고 있다.

20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협은 지난 18일 총궐기대회에서 20일자로 범대위를 구성하겠다면서 박 비대위원장에게 임 회장과 함께하는 공동위원장 자리를 제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9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재 상황에서 협의체를 구성하더라도 대전협은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지속해서 표명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박 비대위원장은 “합의되지 않은 내용을 언론에 언급할 경우 선을 그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고 강한 어조로 임 회장에 경고했다.

임 회장은 또 총궐기대회에서 다른 의사단체와 상의 없이 ‘27일 무기한 집단 휴진’을 발표했다. 이에 경기도의사회 이동욱 회장은 입장문에서 “저를 포함한 16개 광역시도 회장들도 임현택 의협회장이 여의도 집회에서 무기한 휴진을 발표할 때 처음 들었다”며 “회원들이 황당해하고 우려하는 건 임 회장의 회무에서 의사 결정의 민주적 정당성과 절차적 적절성이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투쟁의 중심과 선봉에 서 있는 전공의 대표와의 불협화음도 모자라 대의원회, 광역시도회장, 감사조차 무시하는 회무는 회원들의 공감을 받기 힘들고 회원들의 걱정이 되고 있다”며 “의사결정 회무 방식과 절차에 치명적 문제가 있다. 시도회장들이나 회원들은 존중받고 함께 해야 할 동료이지, 임 회장의 장기판 졸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18일 집단휴진의 참여율이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낮았는데 임 회장이 또 한번 독단적인 결정을 시사하자 내홍이 터진 것이다. 정부가 발표한(18일 오후 4시 기준) 집단휴진 참여율은 14.9%로, 2020년 의협 집단휴진 첫날(8월14일) 참여율 32.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집단휴진이 없어도 평소 평일 휴진율은 5∼6% 수준은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가 ‘자중지란’에 빠지면서 환자들만 더욱 고통받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의협이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다음날인 19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환단연)는 ‘STOP(중단)’에 ‘집단사직’, ‘집단휴진’, ‘환자불안’, ‘환자피해’를 붙인 피켓 이미지를 온라인에 배포하고 SNS 등에서 온라인 피케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 단체는 또 “환자 불안과 피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휴진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고집한다면 분노한 국민으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식도암 4기 환자인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교수들의 집단휴진은) 전공의 파업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대학병원 교수님들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역할”이라며 “여러 과가 모여 협진하고 전체적으로 지휘하는 역할이 있는데 이분(교수)들이 휴진한다는 것은 오케스트라를 그만두고 그냥 나가는 것과 똑같다. 환자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포와 고통이 뒤따른다”고 언론에 호소했다.

정부는 의협을 압박하고 나섰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의협이 집단 휴진을 주도하면서 구성 사업자의 진료 활동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사업자단체 금지 행위’를 했다고 보고, 전날 의협에 대한 조사에 본격 착수했다. 공정위는 2000년 의약분업 파업과 2014년 원격의료 반대 파업 당시에도 의협에 사업자단체 금지행위 조항을 적용해 시정명령 등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의협은 두 번의 제재에 모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결과는 ‘1승 1패’였다. 승패를 가른 것은 강제성에 대한 입증으로, 정부는 이번에도 의협이 휴진에 참여하도록 강제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한편, 정부 강경 대응 와중에도 전공의들은 “돌아갈 생각이 없다”며 요지부동이다. 지난 2월 25일 기준 이탈 전공의는 총 9006명이다. 전공의들은 ‘의대 증원 백지화 없이는 복귀도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들은 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회의감을 갖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에는 의대 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나왔지만 환자·국민과 의사 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의정 합의가 어렵게 이뤄지더라도 이탈 전공의 모두가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전공의 A씨는 “정부가 의대증원 정책을 강행하면서 그동안 의사와 환자를 단단히 연결해줬던 ‘신뢰’라는 끈이 끊어졌다고 봤다”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그동안 힘들어도 의사로서의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는데, 이젠 모두가 우리의 사명감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다”며 “억울하고 속상함을 넘어선 체념의 상태에 들어섰다”고 하소연했다.

전공의 B씨는 “우리가 환자들을 그 누구보다 위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라준다”며 “국민으로부터 온갖 질타와 욕만 받는 상황인데 어떻게 병원으로 쉽게 돌아가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B씨는 “이렇게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우리에게 등 돌릴 줄 몰랐다”며 “지금까지는 내가 걸어오던 길을 의심 없이 잘 걸어왔다면 이제는 발걸음이 멈춰섰다고 해야하나. 병원 나와서 쉬는 동안에도 마음 편할 날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공의 C씨 역시 “지금은 의사들이 어떠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대로 들어주는 이가 없어 조심스럽다”며 의료공백 사태에 대한 말을 최대한 아끼고 싶다고 전했다. C씨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났다는 것만으로 이미 우린 공공의 적이 된 듯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병원에 발을 다시 어떻게 들일까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think@heraldcorp.com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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