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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서 자전거 타다가 아리수 마실 때 제일 행복해요” [헤경이 만난 사람]
‘불편한 진실’ 본 뒤 기후위기에 경각심
“하루 한끼 채식, 지구를 지키는 방법”
한강변 청소 등 다양한 봉사활동 펼쳐
방송인 줄리안 퀸타르트가 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아 서울 성동구 뚝도아리수정수센터를 찾아 시설을 둘러본 뒤 소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울아리수본부 제공]

벨기에 출신 방송인인 줄리안 퀸타르트(37)는 올해로 한국에 자리잡은 지 20년째를 맞았다. 한국에서 이미 유명인이 됐지만, 환경운동가로서 삶은 이제 시작이다. 환경의 날(6월 5일)을 맞아 환경 보호를 위해 아리수(서울시 수돗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를 만났다.

퀸타르트는 1987년 8월 출생, 2004년 8월 한국에 왔다. 벨기에에서 정확히 17년을 살았고, 두 달여 후면 한국에 산 지 20년이 된다.

“어디서든 계속 말했더니 한국어 능숙해져”

이제 퀸타르트는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일단 집도, 직장도 모두 한국에 있다. 벨기에에는 부모님과 가족을 만나러 1년에 한두 번 휴가 때나 간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 삶에 갈수록 매료돼 눌러앉고 싶은 마음이 8할이라고 했다. 벨기에 불어권(왈롱)인 리에주주(州) 에와이시(市)의 쉬르라헤이드라는 작은 마을에서 2남 1녀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이름도 현지식으로 발음하면 ‘쥘리앙 캥타르’지만 한국 생활을 위해 영어식 발음 ‘줄리안 퀸타르트’를 쓴다.

요즘은 한국에서 본인의 성씨를 만들어 한 가문의 시조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성을 만든다면 줄씨가 어떨까요?” 질문에 “와, 괜찮은데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본관은 어디로 삼는게 좋을까요”라고 재차 묻자 “한국에서 저의 고향은 충남 서천”이라며 큰 웃음과 함께 “서천 줄씨 좋다”고 외쳤다. 성씨 ‘줄’로 표기할 한자 ‘茁(싹 줄)’도 그 자리에서 함께 찾아냈다.

그는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서천에 자리잡았다. 벨기에에서는 시험을 봐서 통과하면 다음 학년으로 올라가는 월반이 가능하다. 그렇게 시험을 봐서 남들보다 졸업을 일찍 했고, 상급학교 진학 전 진로 탐색을 위해 주어지는 1년의 ‘갭 이어(gap year)’를 활용해 한국까지 왔다. 그것도 여행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 로터리클럽을 통해 국제교환학생을 신청, 한국·일본·브라질, 3국 중 하나를 지망했고 학생 간 일대일 교환 규정에 따라 가장 먼저 연락 온 한국이 그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그 당시만 해도 벨기에에서 한국행을 원한 학생은 자신이 유일했다고 한다.

“친구들은 북미권이나 유럽 국가를 선택했는데, 저는 완전히 낯선 나라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저 없이 한국을 선택했어요.”

한국에 와서는 서천의 동강중에서 4개월 정도 한국어를 배웠다. 시골 마을에서 퀸타르트 포함 외국인 교환학생 5명이 한국어를 배운다는 소식이 방송을 타면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몇 개월 만에 한국어 실력이 빠르게 늘면서 방송 출연 등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배운 지 6개월여 만에 한국어 말문이 트였다니, 외국어를 빨리 배우는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막간을 이용해 외국어를 빨리 배우는 법에 대해 물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의 외국어 공부 지론은 “말을 배우려면 말을 많이 해야 한다”였다.

“계속 말을 해야 해요. 버스 기다릴 때에는 주변 사람한테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고 벤치에 앉으면 옆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이런 식으로 계속 말을 하려고 했어요. 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해서 큰 어려움이 없었어요. 혼자 있을 때는 단어 외우고 외국인들은 전혀 안 만났어요.”

모든 외국인이 퀸타르트처럼 한국어를 독하게 배우는 건 물론 아니다. 한국에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달랠 외국인 친구들하고만 어울리다 허송세월만 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운명처럼 찾아왔다. 벨기에로 가기 전 SBS 예능 ‘잘먹고 잘사는 법’에 섭외돼 촬영을 마치고 귀국했는데, 담당 PD가 방송 이후 반응이 좋았다며 계속 방송을 하자고 벨기에로 연락이 왔다. 벨기에로 돌아와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그리운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자 마음 먹었다. 그렇게 한국과 서천은 그에게 제2의 조국이자 고향이 됐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방송을 틈틈이 하며 음악감독, DJ 등으로도 활동했다. 큰 돈은 벌지 못했지만, 홀로 삶을 영위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방송 생활에 점점 슬럼프가 찾아왔다. 방송이 더 이상 설레지 않고 방송 출연이 간절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외국인 방송인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한정돼 있었고, 그 이상을 벗어나긴 어려운 구조였다.

“저한테 김치는 이제 더 이상 맵지 않은데, 방송에서는 여전히 김치를 먹고 ‘아 매워’하는 반응을 원했다고 할까요. 여러 이유로 그때는 방송에 출연하는 게 더 이상 기쁘지 않았어요.”

그때 JTBC 예능 ‘비정상회담’ 캐스팅 면접을 보게 됐다. 이 방송이 훗날 퀸타르트를 포함한 외국인 출연자 다수를 일약 스타 반열에 올려놓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방송 생활에 회의를 가졌던 퀸타르트는 그다지 간절하지 않은 심정으로 면접에 임했다고 한다. 다른 출연자들은 풀 메이크업에 정장을 입고 의욕적으로 답변하는데, 편한 차림에 간절하지 않은 태도의 퀸타르트가 낙점된 것은 ‘신의 장난’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 덕에 작은 시골서 유기농 제품 접해”

이 방송으로 스타덤에 오른 퀸타르트는 한국에 온 지 10년 차 때인 2014년 전성기를 구가했다. 뿐만 아니라 ‘비정상회담’의 명성과는 별개로 그는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친환경 DNA를 바탕으로 한국에서 환경운동가로도 거듭나고 있다.

그가 태어난 벨기에의 작은 마을 쉬르라헤이드는 인구가 50명도 채 안 되는 시골 마을이다. 퀸타르트는 사람보다 야생 염소가 더 많은 곳이라고 자신의 고향을 소개했다. 그 마을에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그의 부모님은 유기농 제품 판매점을 열었다. 1980년대 유럽에서는 농약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 문제가 큰 이슈였고, 유기농법이나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다고 한다. 그당시 대도시에도 드물던 유기농 제품 가게를 작은 시골 마을에 차린 것은 시대를 앞서나간 ‘조처’였다. 덕분에 퀸타르트는 어릴 때부터 유기농 제품을 자주 쉽게 접하며 친환경 DNA를 키웠다고 한다.

한국에서 국제교환학생 시절 동강중에 이어 송담대를 다녔지만, 단기 프로그램을 마쳤을 뿐이어서 그의 공식 학력은 ‘고졸’이다. 그러나 월반과 조기졸업, 국제교환학생 이력이 말해주듯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활동가인 퀸타르트는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살 지 자신만의 커리큘럼을 끊임없이 업데이트 중이다. 특히 세계적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챙겨보며 세계관을 확장 중이다.

“공부란 모르는 걸 스스로 배우는 거잖아요. 그리고 저는 운 좋게도 한국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위치에 서게 됐기 때문에 더 공부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항상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채식, 인간으로서 지구 지키는 최선의 방법”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안긴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은 퀸타르트가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환경 보존을 위해 무엇을 할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세웠다. 또 다른 다큐멘터리 ‘더 게임 체인저스’를 본 뒤에는 채식이 인간으로서 지구를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환경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채식이 중요하다는 확신이 들어 소셜미디어(SNS)로 ‘월요일의 채식토크’를 시작, 채식주의자 여성 보디빌더, 사찰음식을 만드는 스님 등 채식의 대가들과 함께 채식 운동을 펼치고 있다.

2021년에는 주한외국인 자원봉사센터(발룬티어 코리아)를 만들어 한강변 청소 등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외국인에게 서울이 인기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발룬티어 코리아’를 통해 한국 여행 기간 중 봉사 활동에 참여하려는 외국인도 점차 늘고 있다. 비행기 환승을 위해 한국에 잠시 머무는 ‘트랜싯 패신저’들도 짬이 나면 이 단체의 봉사 활동 참여차 서울 시내로 나왔다가 공항에 복귀할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6월에는 이태원에 문을 연 비건(채식주의자) 카페와 제로 웨이스트 숍(폐기물이 없는 가게)이 합쳐진 복합문화공간 ‘노노샵’은 이달로 개점 1주년을 맞았다. 노노샵이란 ‘노 애니멀 프로덕트(육류 제품 없음), 노 플라스틱(플라스틱 없음)’을 의미한다. 매장에서는 쓰레기가 되는 포장재를 최소화하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품과 생활용품을 판매한다. 매장 내 환경 관련 도서를 판매하는 ‘작은 서점’ 코너에서는 주말마다 환경 관련 책을 주제로 북 토크를 연다.

최근 그는 채식으로도 체력을 키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채식만 했는데도 근력 운동을 통해 3㎏이 늘었다. 채식 실천과 함께 그가 주장하는 것은 하루에 한 끼라도 채식을 하자는 취지의 ‘채소 한 끼, 최소 한 끼’다.

“우리 모두 하루 한 끼만 채식으로 바꿔도 엄청난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영국에서 나온 연구 결과를 보면 영국인들이 1년 동안 하루 한 끼를 채식으로 바꾸면 1600만대의 자동차를 줄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해요. 채식만 해도 지구를 지킬 수가 있는 거죠. 모두가 채식주의자가 되자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먹는 고기의 양입니다. 현대인은 옛날 왕에 비해서도 훨씬 많은 고기를 먹고 있어요.”

서울에서 운동하며 가장 큰 희열을 느낄 때는 한강에서 자전거를 탈 때라고 했다. 그는 성능 좋은 본인 전용 자전거, 친구 임대용 자전거, 아무 때에나 편하게 타는 자전거, 이렇게 세 종류의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다.

“한강에서 멋진 경치를 바라보며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가 한국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로 멋진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친구들이 오면 반드시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야 한다고 권하고 있어요. 한참을 달리다가 아리수 음수대를 만나 아리수를 마실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죠.” 김수한 기자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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