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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진적 지배구조 개혁, 상법개정이 첫 단추”
20년간 애꿎은 법만 만지작, 문제해결 실패
일반주주 보호하는 명확한 규정부터 담아야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는 주주간 이해충돌 및 부의 이전 등 회사법 문제인데도, 지금까지는 주로 공정거래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

“지난 20년 동안 우리 법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인 취약한 거버넌스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했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를 개혁하려면 법안 체계 기틀부터 다시 손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회사법의 기본법인 상법에 일반 주주를 보호하는 명확한 규정부터 담아야 거버넌스 개혁의 큰 줄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영계에선 모호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개념은 이사들을 옥죄어 혁신과 성장에 필요한 모험자본 투자를 꺼리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전에도 빈번하게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학계 “거버넌스 개혁, 상법 개정이 핵심”=신진영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은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지배구조의 개선이 필수적이며 특히 그동안 취약했던 일반주주에 대한 법적 보호기반 마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간 학계와 자본시장에선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에 주주가 빠져있다는 점을 열악한 지배구조의 원인 중 하나라고 꾸준히 지적해 왔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 3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를 ‘회사 및 주주를 위해’로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사회가 소액주주에게 불리할 수 있는 물적분할·합병이나 오너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전환사채 발행 등을 의결해도 회사에 손실을 주지 않으면 이사들이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김우진 서울대 교수는 “국내 상장기업 거버넌스의 핵심 문제는 주주간 이해충돌 및 부의 이전 등 회사법 문제”라며 “지배주주 일가의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일가에 대한 CB·BW 저가발행, 상장기업과 개인기업간 불공정 합병 비율 등 주주간 이해 충돌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회사법에 이를 규율할 수 있는 일반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사법의 기본법인 상법을 개정해야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경제학회가 실시한 ‘K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밸류업’ 조사에 따르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요 원인 1위에는 ‘열악한 지배구조 문제(44%)’가 꼽혔다. 이어 지배구조 개선 대안을 묻는 질문에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의 충실의무에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까지 반영해야 한다’는 답변(1위·37%)이 가장 많았다. 밸류업의 성공 조건으로 상법 개정을 꼽은 것이다.

▶“주주권한 강화 vs 소송 남발 경영 차질”=주인으로부터 의사 결정을 위임받은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인-대리인(principal-agent) 딜레마’는 학계의 오랜 연구 주제다. 대리인을 견제하는 역할은 이사회가 맡아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사외이사들은 사실상 ‘거수기’ 역할을 한다는 비판이 크다. 이에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사가 주주의 이익을 고려하여 업무를 집행하도록 이사 선임에 대한 주주의 권리 강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변준호 안다자산운용 대표도 “이사회 멤버 선임 시 집중투표제 및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등을 통하여 전체 주주의 의견이 반영될 필요가 있다”며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의 비례적 이익으로 확대 적용하고, 경영진의 보수를 주주가치 제고와 연계하는 등 이사회와 경영진의 대리인 의무 강화도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토론회에선 ▷감사위원 전원 분리선임 ▷임원보수와 내부거래의 주주통제 강화 ▷기업 인수 시 의무공개매수제 도입 등 정책 대안 등이 제시됐다.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로 뒷받침해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중혁 고려대 교수는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유도할 수 있는 투자분위기와 문화조성이 병행되어야 제도 개선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선 ▷카카오톡 등을 활용한 주총 정보 알림 ▷주총 개최일 분산 ▷소집통지시 감사(사업)보고서 제출 ▷주주 제안 관련 제도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경영계에선 모호한 개념은 경영 혼란만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수많은 주주의 이익을 만족시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이사회 대상 소송이 남발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에서다. 김춘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본부장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도입은 그 의미가 모호하여 구체적인 상황에서 이사의 행위기준으로 작동하기 어려우므로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성훈 코스닥협회 연구정책그룹장도 “기업과 주주의 인식이 합치되는 것이 중요하며 중소기업의 현실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혜림 기자

fores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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