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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작곡한 ‘2050년의 봄’…음울하고 어둡다 [AI 클래식] 
서울시향 임가진 제2바이올린 수석
AI가 만든 2050년 버전 비발디 ‘봄’ 평가
기후 변화로 달라진 서울의 봄 “암울”
임가진 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 [서울시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찬란한 오월의 신록은 사라졌다. 새들이 재잘거리고, 시냇물이 반짝이던 화사한 봄날은 온데간데 없고 낮밤의 구분만 가능한 황량한, 사막 같은 세상만 남았다.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예측된 2050년의 봄. 1725년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사계’를 풀어낸 천재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는 상상도 못했을 봄이 악보 위에 그려졌다. 인공지능(AI)이 창작한 ‘불확실한 사계’, 서울 변주곡 중 ‘봄’ 1악장이다.

“2050년의 봄은 꽃이 피지 않더라고요. 유전자 변형으로 세계는 변화하고, 단조의 음울함이 가득 차 있어요.”

임가진 서울시립교향악단 제2바이올린 수석은 이 곡에 대해 “악보를 보면 ‘사계’의 형식이 그대로 담겼는데 그 안에서 불협화음이 튀어나오고, 타악기가 등장해 완전히 다른 곡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퇴근길 콘서트 ‘과거와 미래의 교향곡-AI의 선율’(5월 28, 30일)에서 협연자로 함께 했다.

AI가 재해석한 ‘사계’의 탄생 과정은 독특하다.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혁신 기업 아카(AKQA)가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겸 공학자인 크로스웨이트가 모나시 대학 산하 기후 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와 협업했다. AI 작곡가는 60년의 기상 관측 데이터, 전 지구 기후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기후변화 시나리오(RCP 8.5)에 맞춰 2050년 버전의 비발디 ‘사계’를 만들었다. 아무런 탄소저감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경우 맞게 되는 ‘봄의 노래’다.

딱딱한 숫자로 경고했던 미래의 봄은 암울한 음표로 그려졌다. 한국에서 정식 공연을 통해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에 이어 임가진이 두 번째다.

임가진은 기존에 연주된 곡은 들어보지 않고 그만의 2050년 버전 ‘봄’을 만들었다. 그는 “악보를 받기도 전에 사람들이 겁을 줬다”며 “음악이 굉장히 어렵고 준비할게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악보를 받아보니 무지 어려웠다”며 웃었다.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그는 2050년의 봄을 머릿속에 그렸다. 당초 비발디가 지었던 이 곡의 제목은 ‘화성과 창의의 시’. 비발디는 화음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했지만, AI의 ‘봄’은 달랐다.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배 높아져 전 세계는 사막화가 진행됐다. 해수면은 20㎝나 상승해 어느 지역은 물에 잠겨 사라지기도 했다. 임가진은 “녹색의 이파리는 갈색이 되고, 나뭇가지는 녹색으로 뒤바뀐 미래의 계절을 상상하며 곡에 접근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AI의 ‘사계’는 이같은 자연의 재앙을 음표 안에 담았다. 환경 파괴로 동식물이 멸종하고 생물 다양성은 감소하는 시대, 가뭄과 홍수, 태풍, 산불 등 기상 이변이 속출해 재해가 일상이 된 세계 속 사람들의 삶은 공포와 음울을 넘어 종국엔 상실의 슬픔을 토해낸다. 만물이 피어나야 할 새봄이 ‘죽음의 계절’이 된 것이다.

“사실 비발디는 모든 음을 거부감 없이, 솜사탕처럼 녹는 음악을 만드는 작곡가였어요. 천둥 소리, 새소리를 선명하게 음표로 구현했고, 화성이 잘 정렬돼있어요. 그 당시로 치면 최고의 K-팝을 만드는 대중음악가였죠.”

임가진 서울시향 제2바이올린 수석 [서울시향 제공]

반면 AI 작곡가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AI 작곡가의 음악에 대해 “너무 어렵고 기괴하다”고 했다. 2050년의 봄은 공포와 슬픔이 가득하다. 기후위기 최악의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경쾌하게 활 시위를 움직이며 찬연한 날들을 노래했던 ‘봄’엔 음울하고 까끌거리는 불협화음이 넘쳐난다. 느린 박자, 슬픈 곡조를 싣고 오는 솔로 바이올린의 음색은 절망 가득한 디스토피아다. 천둥소리를 표현한 타악기는 미래의 봄을 마주하는 청중을 향한 경고처럼 들린다.

“익숙하게 진행된 화성의 전개와 배열이 아니라서 연주가 쉽지는 않았어요.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 같았죠. 기존에 익숙하게 연주해왔던 ‘사계’를 지워내고 음계의 구조부터 바꿔야 했으니까요. ‘봄’은 ‘봄’인데, 우리가 알던 ‘봄’이 아니었어요.”

임가진이 AI가 작곡, 편곡한 음악을 연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클래식 음악은 세상을 떠난 작곡가의 음악을 다루는데 AI 작품은 살아있는 작곡가이자 생명으로 다뤄야 하는 것인지 고민도 했다”고 말했다. AI 작곡가의 곡을 만나며 그는 ‘악보 전달자’이자 해석자로서 연주자의 역할도 고심했다.

“AI 작곡가(작품이)라고 해서 (제가) 악보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지진 않아요, 다른 음악과 마찬가지로 모든 음을 숙지하려 하고, 의도를 파악하려 노력해요. 다만 만약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면 물어보고 싶긴 해요. 왜 이 음을 여기에 넣었는지요. (웃음)”

AI 곡을 연주한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임가진은 “5분 만에 음악을 만들어 낸다던, 글로만 읽었던 AI의 작곡, 편곡 능력을 체감하게 됐다”며 “익숙함에서 벗어나 뇌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점이 특별하게 남았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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