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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노인에 대한 반성 [조원경의 현인들의 경제적 조언]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1961. 9 -)는 프랑스의 소설가다. 고양이, 개미, 타나토노트, 천사들의 제국, 신 같은 작품으로 세계적으로 많은 팬이 있다. 어릴 때부터 만화 그리기에 재능을 보였고, 에드거 앨런 포의 영향을 받아 8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베르베르는 법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우주 정복에서 인공 지능이나 의학에 이르기까지 과학의 모든 주제에 관한 기사를 발표한다. 1991년 발표한 ‘개미’로 곤충에 대한 탁월한 지식과 관찰력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이 작품으로 과학 잡지인 ‘과학과 미래’가 주는 그랑프리를 받았다.

베르베르는 늘 그랬듯 아침에 일어나 기억을 더듬으며 꿈을 기록한다. 한국 어느 요양원을 다녀온 꿈 속 일이 새롭다. 한국은 출산율이 낮아져 젊은 사람들이 부담해야할 노인수가 크게 증가했다.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에 불만을 품은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출산율이 1명 미만인 초저출산이다. 저출산 쇼크로 인구 절벽이 현실화했고 재정 부담이 가중돼 노인 인구 연령조정(65→70세)과 연금개혁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얼마 전 이 나라에서는 지하철 경로우대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쑥 튀어나왔다. 사회적 공론화가 이뤄지기도 전에 해당 담론은 사회적 비판으로 자취를 감춰 버렸다. 베르베르는 문득 자신이 20여 년 전 쓴 이야기 ‘황혼의 반란’을 반추해 본다. 소설에는 오늘날 한국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프랑스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장관들은 모두 젊은 층으로 구성했다. 노인 인구가 늘면서 사회보장제도의 적자폭이 커지자 청·장년층이 노인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노인 때문에 국가 재정이 바닥이 난다고 거들었다. 레스토랑에는 ‘70세 이상 노인 출입금지’ 팻말이 걸렸다. 자녀와 연락이 끊긴 노인들은 CDPD(휴식, 평화, 안락 센터)란 기관에 끌려가 주사를 맞고 생을 마감해야 했다. 프레드 부부는 70대 노인이다. 믿었던 자녀의 신고로 CDPD에 끌려갈 운명에 처한다. 부부는 자신들을 잡으러 온 CDPD 기관원들의 버스를 훔쳐타고 다른 노인들과 함께 산으로 도망간다. 그들은 산속에 요새를 만들고 저항한다. 정부가 헬리콥터를 띄워 독감바이러스를 살포하자 바이러스에 감염된 프레드의 아내부터 죽는다. 프레드는 진압군에 붙잡혀 안락사를 당하고 만다. 그는 자신에게 주사를 놓는 젊은이의 눈을 쏘아보며 이렇게 말한다.

“너도 언젠가는 늙은이가 될게다.”

베르베르의 소설 속 대통령 신년담화는 세상을 진정으로 슬프게 한다. 간담이 서늘하다.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순 없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돼야 한다.”

신년담화가 나온 뒤 70세 이상 노인을 위한 약값과 치료비 지급을 제한하는 조치가 취해졌다. 100세 이상 노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일절 받을 수 없게 됐다. 베르베르는 약 20여 년 전 한국에서 자살한 노인의 유서를 담은 컴퓨터 기사에 눈이 간다. 황혼의 슬픔이 물씬 느껴진다.

“나는 외로운 80세 독거노인입니다. 1990년도부터 당뇨와 녹내장을 앓아 왔습니다. 더 견딜 수 없어 이 길을 택합니다. 집주인 아줌마와 2동 사회담당 보조 아가씨,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그는 2005년 신변을 비관해 지하철에 투신자살했다. 병들고 가진 것 없어 늘그막에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생을 등지는 사건은 막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평균 수명은 올라가고 있지만 각종 질병으로 건강수명은 그만큼 늘지 않고 있다. OECD 연금소득대체율은 평균 50.7%인데 한국은 31.6%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 전체가입자의 평균소득 대비 연금 지급액 비율이 낮아 소득보장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베르베르가 소설을 낸 이후에도 고령화와 관련한 소설은 여기저기에서 실렸다. 그는 유심히 읽은 책 가운데 꽤 인상적인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훗날 지구인들이 외계 생명체들과 경쟁해 새로운 행성을 개척하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외계 생명체와 싸우는 우주개척방위군이란 이색 소재를 다뤘다. 특수 군대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75세 이상이란 연령 제한이 있었다. 입대하는 순간이 되면 지구에서는 사망한 것으로 간주했다. 우주개척방위군이 지구로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었다. 한 남성이 75세 생일에 아내의 무덤을 찾아 작별을 고하고 입대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그건 입영열차를 타는 젊은이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라 슬프기만 하다. 베르베르는 문득 자신이 쓴 노인 호소문을 떠 올리며 정부가 지향해야 할 미래 청사진을 고민해 본다.

“우리를 존중해 주십시오. 우리를 사랑해 주십시오. 노인들은 아기들을 돌볼 수 있고 뜨개질을 할 수 있습니다. 다리미질이나 요리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젊은이들이 싫어하는 모든 일을 우리는 아직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중략) 노인을 배척하는 법률을 철폐합시다. 우리를 제거하기보다 활용할 생각을 하십시오.”

베르베르는 시계를 보며 고령화 문제를 내 건 심포지움에 참석 한다. 노르웨이 출신 노벨경제학자 핀 쉬들란(Finn Erling Kydland)의 고령화 해법과 관련한 프리젠테이션을 들었다.

“정년 기간을 65세로 연장한다던지 혹은 젊은 이민자를 유입시키는 방향도 고령화에 대한 해법이라 생각합니다. 노르웨이는 1980년 대 이후 대륙붕 유전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수익을 쓰지 않고 펀드 형태로 비축했죠. 그렇게 오일 펀드의 규모는 급격히 불어갔어요. 노르웨이가 고령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은 축복이에요.” 쉬들란은 정년기간을 연장시켜 조금이라도 더 세금을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이나 예산을 늘려 추가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젊은 20~40대 일할 수 있는 이민자를 대거 수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쉬들란은 과학기술로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여지도 남겼다. 과학자들의 임무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기초 과학 분야에 대한 꾸준한 투자로 노화를 방지하는 것이야말로 노인 의료비용 감소의 해결책이라고 역설했다.

일본이 정년 연장으로 사회 전반의 합의를 이끈 것에도 주목했다. 일본은 3년에 1년씩 연장해서 지난 15년간 5년 연장을 도출했다. 한국에서는 동국제강그룹 노사가 지난달 정년을 만 61세에서 62세로 높였다. 2022년 정년을 만 60세에서 61세로 연장한 뒤 2년 만에 정년퇴직 연령을 올렸다. 62세 때는 61세와 같은 임금을 받는 조건이었다. 사측은 숙련 인력이 지닌 경험과 노하우를 원했다. 노조는 더 오래 일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년 연장 필요성에 노사가 함께 공감한 것이다.

싱가포르가 오는 2030년까지 정년퇴직 연령을 65세로 높인다. [AFP]

일본에 이어 싱가포르가 정년 연장에 적극적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6년 7월부터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정년 후 ‘근로자 의무 재고용 나이’도 68세에서 69세로 조정한다. 싱가포르는 2012년부터 정년 후 의무적인 ‘근로자 재고용’ 제도를 시작했다. 정년을 맞은 근로자 본인이 희망하면 사업주는 재고용에 응해야 한다. 건강에 문제가 없고 업무실적이 양호하다는 조건이 있긴 하다. 싱가포르 정부는 정년 연장 외에도 보조금 지원, 직업 교육을 통해 고령 근로자 취업 확대를 유도했다.

중국에서도 여성 정년 연장을 두고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중국 여성 정년은 50세다. 60세가 정년인 남성보다 10년 빠르다. 고령화 속 노동인구 유지와 성 평등을 위해 여성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 반면,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 하는 상황에서 정년 연장은 청년층의 밥그릇 뺏기라는 주장도 있다. 베르베르는 자신이 쓴 이야기와 달리 세상은 노인층이 주류일 것 같은 사회가 다가올 예감을 받아 혼잣말을 한다.

“그래. 노인 세대는 더는 소수가 아니라 주류야. 그들의 건강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한 돌봄 로봇이나 실버산업의 발달만 봐도 내 생각이 모두 옳았던 게 아니야. 노인빈곤율과 저출산에서 세계에서 넘사벽인 한국을 보면 청년정책과 노인정책 모두 공존해야 할 것 같아.”

노인과 청년이 지속가능성을 매개로 함께 행복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가 중요한데 각론에서는 의견이 저마다 다르다. 일손이 부족한 일본을 보면 정년연장이 한국에도 정해진 미래로 보인다고 베르베르는 생각한다. 기금이 소진된 후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게 가능할까. 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인구수가 적은 청년층이 인구수가 많은 고령층을 부양해야 하는 구조라면 공정하지 않다. 연금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소득보장과 재정안정 사이의 절충이 있어야 하는데 마냥 쉽지 않은 고차 방정식이라 특단의 정책 선회가 필요하다.

무언가 큰일을 성취하려면, 나이를 먹어도 청년이 되어야 한다고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도 뭔가를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청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그의 생각이 마음에 들기도 하나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는 꼭 큰일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세상을 야심으로보다 관조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베르베르는 어떤 시각이든 삶을 대하는 자세에서 취해야 할 태도는 일관돼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의 열정을 유지해주는 것은 ‘삶의 조화와 경이로움’이라고 말이다.

bons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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