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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십년 일했는데 집 한 채만 덩그러니”…생활비에 허덕이는 '낀 세대'[현금없는세대 5060]
초고령화 사회 진입하는데 노후대비 부실
내집 애착에 자녀·부모 부양하느라 현금 부족
“노후 현금흐름 준비를…주택연금 활용도”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 대기업 부장 A(52) 씨는 겉보기엔 남 부러울 게 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평균 이상의 연봉에 10억원대 서울 자가 한 채, 우수한 성적의 고등학생 자녀까지 늘 주변에서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을 ‘빛 좋은 개살구’라고 부른다. 8년 전 집을 살 때 받은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해 다달이 나가는 각종 대출금, 생활비, 보험료, 학원비 때문에 막상 손에 쥐는 현금은 없기 때문이다. 고정 수입이 없는 은퇴 후의 삶은 더 걱정스럽다. A씨는 “대학교 등록금이나 결혼 자금 등 목돈 들어갈 일도 많아질텐데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았다”며 “남들에 비해 비교적 괜찮은 상황이라고 생각하지만 은퇴 후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자산이 많다고 하는 5060 세대가 A씨처럼 생활비에 허덕이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보니 융통할 수 있는 현금이 없다는 얘기다.

특히 5060세대는 자녀뿐 아니라 부모까지 부양해야 하는 ‘낀 세대’이기도 하다. 지난해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2차 베이비붐 세대(1968~1974년생) 응답자의 78.8%가 자녀 또는 부모를 부양하고 있으며, 24.1%는 자녀와 부모 모두를 부양하고 있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출금 상환, 자녀·부모 부양 때문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쥐꼬리만한데 나갈 돈만 많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내 노후를 돌볼 준비는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상 ‘현금없는 노후’가 예고된 셈이다. 안지윤 KB국민은행 골든라이프센터 일산센터장은 “5060 세대는 부모는 물론, 독립하지 않는 자녀도 부양하는 낀 세대다 보니 노후 대비 자금이 부족하다”며 “내 집 마련에 대한 꿈도 강해 퇴직금을 받더라도 주택담보대출을 갚거나 자녀의 주택 매입을 지원해 버려 손에 남는 돈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자산 많아도 여윳돈 없는 5060…노후대비는 ‘남 얘기’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 연령이 50대인 가구의 자산은 6억452만원으로 전 세대 중 가장 많았지만, 대부분(75.7%)이 부동산 등 실물자산이었고 빠른 현금화가 가능한 금융자산은 24.3%에 그쳤다. 60세 이상과 65세 이상 가구에서는 실물자산 비중이 82.0%, 84.1%로 더 높아졌다.

5060 세대의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이다 보니 집값이 오르면 이들의 자산도 많아지지만, 취약한 현금 흐름 때문에 수중에 여윳돈이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여기에 부실한 노후 대비까지 더해져 은퇴 후 삶을 두렵게 만들고 있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국민연금 가입자·수급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노후 준비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률이 40.4%에 달했다. 노후 준비 필요성을 느끼는 응답자 10명 중 7명 가까이(66.4%)는 노후 준비 수준이 ‘부족한 편’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노후 대비 방안으로 의존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퇴 전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액)은 42.5%에 불과하다. 은퇴 전 평균 300만원을 벌었다면 은퇴 후 국민연금으로 127만원밖에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은퇴 후 부부의 월평균 적정 생활비가 324만원, 최소 생활비가 231만원이라는 은퇴 예정 가구의 눈높이(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친다.

젊은 세대라고 해서 노후 대비를 탄탄히 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30대 115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국민연금 외에 별도의 노후 대비를 하지 않는다는 응답자 비율이 56.8%나 됐다.

부동산 애착·대물림 욕구 버려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기준 66세 이상 인구의 소득 빈곤율이 40.4%에 달했다. 회원국 평균(14.2%)의 3배에 이르는 압도적 1위다. 이는 당장 쓸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없는 노인이 5명 중 2명이나 된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전철을 밟은 일본(20.2%)의 고령인구 빈곤율은 우리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 이유로는 ‘내 집’에 대한 강한 애착이 꼽힌다. 특히 고령층에 진입하고 있는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는 1980년대 후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벌어진 부동산 가격 상승기를 온몸으로 겪으며 부동산 불패(不敗) 신화에 대한 믿음을 뿌리 깊게 갖게 된 세대로, 현재까지도 부동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자녀에 대한 대물림 욕구도 강하다. 2030 자녀 세대 상당수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이다 보니, 자녀 지원 때문에 허리가 휘면서도 자녀에게 물려줄 내 집에 대한 애착은 더욱 깊어지는 것이다. 2030 세대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부동산 가격 급등에 따른 ‘벼락거지’ 경험 때문에 부모 지원 없이 집을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뚜렷하다는 점도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노후 위해 부동산 애착 버려야…“주택연금 활용을”

실제 부동산 자산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우리나라 5060 세대의 특성을 고려해 주택연금과 같은 노후 소득 보장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아직도 자녀 상속·증여 고민 때문에 망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택연금은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 55세 이상 노년층이 내 집을 담보로 제공하고 금융기관 대출을 통해 매달 일정 금액을 연금처럼 평생 수령할 수 있도록 국가가 보증하는 금융상품이다. 2007년 도입 이후 지난해 8월까지 11만6000가구 이상 가입했으며, 2016년부터는 매년 1만가구 이상이 가입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주택연금 가입대상 주택가격을 공시가격 기준 9억원 이하에서 12억원 이하로 상향하고 주택연금 총 대출한도를 5억원에서 6억원으로 높이는 등 가입요건도 확대했다.

안지윤 센터장은 “노후 대비를 위해서는 목돈을 마련한다는 생각보다는 노후 생활비의 현금 흐름을 맞추는 데 집중해야 한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등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현금 흐름에 대한 준비가 부족한 경우엔 자녀 지원액 한도를 미리 정해 놓은 뒤 주택연금을 고민해 보고, 주택연금 대상이 아니라면 평수가 작은 집으로 이동하는 다운사이징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sp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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