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천연암석에 새긴 신비한 불상들…지리산 恨 위로하는 벽송사·서암정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㉒ 경남 함양 벽송사·서암정사
.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사찰 100곳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서암정사로 이어지는 계단길 옆의 사천왕상. 경주 불국사의 사천왕상을 본떠 천연암벽에 불상을 새겼다.

무심하게 보이는 바위조차도 어떤 의미에서는 살아 있어 고유의 주파수를 갖고 외부와 소극적이나마 정보를 교환한다. 영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1917~1992)의 사상이다. 그는 우주를 생물과 무생물로 나누는 건 무의미하다고 봤다. 생명과 지능은 생물-무생물을 막론하고 우주라는 총체에 깃들어 있어서 어떤 식으로든 연결돼 있고 거기엔 ‘내재적 질서’나 ‘숨겨진 질서’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암반을 깎아 만든 마애불 앞에서 사람이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사람이 마치 살아있는 바위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데이비드 봄의 시각대로라면 서로 엮여 있는 우주 구성체의 조화로운 현상일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 6·25전쟁으로 지리산 자락에서 수많은 이들이 숨졌다. 그곳엔 자연 암반에 수많은 불상을 조각한 절이 있다. 이곳 석불 앞에서의 기도 가운데는 분하고 억울하게 숨진 지리산의 수많은 원혼을 위로하는 내용이 많을 것이다. 그 장면에서 6·25 비극의 영혼이 위로 받고 있음을 느낀다.

함양 오도재를 넘어 지리산 칠선계곡 초입. 전투의 한복판에서 희생양이 되었던 고찰 벽송사, 그리고 원혼들을 위로하는 신비로운 장소인 서암정사를 다녀왔다.

한 많은 지리산
벽송사 전경

“봄이면 봄마다 젊은 피 흘린 자국, 검불 속 돌 틈 사이로 두견화는 피었다 지는가?

산등성이 골짜기마다 바람 불어 곳곳 살펴, 영혼 달래려는 운무(雲霧)는 천왕봉을 끌어안고...”

(‘한 많은 지리산’ 중에서 /신원미상)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골짜기, 안개와 구름에 뒤덮인 산봉우리를 보며 이름 모를 시인은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한 지리산’을 떠올렸던 것 같다. 지리산은 거대한 산이다. 전북, 전남, 경남 3도에 걸쳐 둘레가 800여리에 이르고 천왕봉, 노고단, 반야봉 등 3대 주봉을 비롯해 1500m가 넘는 봉우리만 10여 개에 이른다. 피아골, 뱀사골 등 10km 넘는 계곡도 10여 개쯤 된다.

산세가 웅장한 까닭에 민족의 성스러운 산으로도 여겨진다. 금강산, 한라산과 더불어 신선이 있다는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로 꼽히고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삼각산(북한산) 등과 함께 국가 제사를 지냈던 오악(五嶽)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해방 후 현대사에선 비극의 산이다. 좌익-우익의 격전장이 되어 골짜기마다 피로 물들었다. 지리산에는 구례 화엄사·연곡사·천은사, 하동 쌍계사·칠불사, 산청 대원사·법계사·내원사·율곡사·정취암, 남원 실상사, 함양 벽송사·안국사 등 웅대한 전통 사찰들과 암자, 그리고 각종 국보와 보물, 천연기념물 등 많은 문화재들이 전쟁 피해를 입었다. 특히 함양 칠선계곡에 있는 벽송사는 지리산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이 점거해 야전병원으로 삼았고 그들을 축출하려던 국군이 불을 질러 삼층석탑 하나만 남겨두고 전소했다.

한국 선불교 최고의 종가 벽송사
층층양식으로 조성된 벽송사 경내

그래서 벽송사가 세워진 내력은 여전히 명확히 알지 못한다. 여러 차례 화재로 사적기(事蹟記)가 사라지며 창건 연대와 역사를 기록한 사료가 남질 않았다. 다만 다른 기록에 의존해 1520년에 벽송(碧松) 지엄(智儼)선사가 중창하여 절 이름을 ‘벽송사’로 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이후 이 절은 한국불교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임제종(불교의 한 종파) 전통을 계승한 환성 지안선사(1664~1729)가 중수하면서 상주 스님이 300여 명이나 되는 벽송총림(叢林)으로 번성했다. 당시 조선조정은 숭유억불 정책을 펼쳤으나 벽송사를 중심으로 선불교 명맥이 이어졌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불교말살 정책과 6·25전쟁의 아픔으로 화마에 휩싸였고 앞서 언급했듯 석탑 하나만 남았다. 잊혀진 절이 되었다가 지난 1960년대 원응선사에 의해 현재 위치에 중건되었다.

벽송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며 지엄선사가 간화선 수행법에 의해 수행하고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예로부터 비구들이 참선하는 수행처로 알려졌다. 서산대사(벽송사 3대 조사)와 사명대사가 도를 깨달은 곳이며 이 외에도 기라성 같은 전통 조사(법맥을 잇는 중요한 승려를 뜻함)들이 수행교화하여 스승이 될 만한 대종장(大宗匠)들을 108명이나 배출했다. 조선 선불교 최초·최고의 종가를 이룬 유서 깊은 절이다. 근현대 불교의 최고의 선지식인이자 ‘길 위의 큰스님’으로 불렸던 경허선사도 집필을 위해 벽송사에 머물렀다 한다.

벽송사의 상징인 두 그루의 소나무. 왼쪽이 미인송, 오른편이 도인송이다.
벽송사의 벽송선원

절 주차장에 들어서니 전각을 둘러싼 울창한 낙락장송과 도인송(道人松)과 미인송(美人松)이라고 불리는 수령 300년 이상의 소나무 두 그루가 자태를 뽑내고 있다. 다만 미인송 쪽은 힘에 겨운지 기둥에 의지해 서 있다. 이처럼 푸른 소나무에 둘러싸인 절이라 벽송사라는 이름이 더욱 어울린다. 산 중턱에 절이 터를 잡은 까닭에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하여 층층식으로 전각을 배치했다.

사찰 들어가는 초입 가장 아랫단에는 좌우에 쌍둥이 건물인 요사채 안국당(安國堂)과 유정 서산대사의 호를 붙인 청허당(淸虛堂)이 마주보고 있다. 수행자들의 선방인 벽송선원(碧松禪院)이 넓은 중앙을 차지하고 좌측에 2층짜리 간월루(看月樓)가 자리하고 있다. 벽송선원은 스님들의 선방인지라 외부인들이 내부를 볼 수 없다. 조심스럽게 주지스님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선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정면에 석가모니불 하나만 놓여 있는 단조로운 법당이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벽송선원 내부
한국전쟁 당시 벽송사 건물이 모두 전소하고 이 삼층석탑 하나만 남았다. 이 공터가 과거 벽송사가 자리했던 장소다.

상층 계단을 올라가면 11면 관음보살좌상과 지장탱 등을 봉안하는 원통전(圓通殿)과 산신각, 범종각, 장승각 등이 있다. 장승각에는 조선 후기 민중의 해학을 잘 드러낸 목장승 2기가 있다는데 미처 보지 못해 아쉽다. 미인송 위 높다란 축대를 쌓은 마지막 공간은 벽송사의 본래 절터다. 널따란 공터에는 보물로 지정된 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조선시대 3층 석탑과 부도(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묘탑) 3기만이 덩그러니 있다. 2025년까지 대웅전 건립을 목표로 불사가 진행 중이다.

방문한 날 부슬비가 내렸는데도 탐방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벽송사 성지순례를 온 타지의 사찰 신도회를 환영하는 플래카드도 걸려 있었다. 대웅전 건립 불사가 오랫동안 진행되었는지 소원을 적은 기왓장이 여러 곳에 널려 있다. 벽송사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2~3분 가다 보면 서암정사와 나뉘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바위와 대화하는 곳, 서암정사
서암정사 전경. 유독 바위가 많고, 바위에 새긴 불상도 많은 신비로운 장소다.

지리산 자락엔 워낙에 천년고찰이 많아 과거에 서암정사(瑞庵精舍)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벽송사에 부속된 조그만 암자(서암)였던 미타굴을 벽송사 주지 원응스님(?~2018)이 서암정사로 중창해 오늘에 이른다. 1990년대부터 석굴 불사가 꾸준히 진행되었고 덕분에 2018년 8월부터는 벽송사에 딸린 부속암자가 아니라 해인사 말사로 등록·독립된 사찰이 됐다. 현재는 어엿하게 경남 함양을 대표하는 사찰 한 곳 대접을 받는다.

입구에 커다란 돌비석이 양옆에 있어 일주문 역할을 수행한다. 그곳을 지나니 창건주 원응스님의 것으로 추측되는 사적비와 부도탑이 있다. 천연암벽에 경주 석굴암의 사천왕상을 참조하여 새겼다는 사천왕상과 대방광문이라 새겨진 천연 석문을 지나면 마애불과 석탑들이 보인다. 2012년에 완공한 대웅전도 만난다. 아자형(亞字形) 뼈대에 중층의 겹처마 양식과 화려한 금단청으로 한국 전통 목조건물의 선과 미를 극대화시킨 건물이다.

서암정사 용왕전 불상들
석굴법당인 극락전 입구문

대웅전 지하에는 1985년부터 석굴법당의 원만한 불사를 위하여 원응스님이 금박가루로 사경(寫經, 후세에 전하거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경문을 베끼는 일)한 화엄경을 전시하는 ‘금니사경 참배관’이 있는데 필자가 방문했을 때엔 출입을 막고 있었다.

사찰 안내문을 보니 이곳의 핵심은 석굴법당으로 보이며 이는 원응스님이 6·25전쟁으로 희생된 지리산의 무수한 원혼들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1989년부터 10년에 걸쳐 불사를 진행한 곳이라고 한다. 아미타불 중심으로 자연석벽에 여러 불보살이 조각되어 있는 석굴법당인 극락전 안에는 불교의 이상세계를 상징하는 극락세계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감탄을 자아내는 조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으나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천연 지형을 활용한 연못 옆에 태고청풍(太古淸風)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범종각이 있고 사찰 곳곳에는 주변의 천연암석을 이용하여 조각하여 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용왕전, 비로전, 산신각 등 다양한 법당이 무수한 불상으로 새겨져 있다. 석굴과 석상을 조성하는 데에는 짧게는 2~3년, 길게는 10년 이상이 소요됐다. 많은 석공들이 참여하여 불교예술의 극치를 만들어냈다. 더욱이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칠선계곡의 초입에 있어 많은 신도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들기도 한 오도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지리산제일문이 나온다. 거기 조성된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 풍광은 일품이다.

벽송사와 서암정사는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IC 또는 함양IC를 통해 빠져나오면 30여 분 거리에 있다. 지리산IC로 들어갈 경우엔 인월시장과 남원 실상사를 들러도 좋고 함양IC로 진입한다면 오도재를 넘어 지리산 조망공원에서 잠시 쉬며 지리산 풍광을 만끽해도 좋겠다.

“초연(硝煙)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파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6·25전쟁을 소재로 쓴 가곡 ‘비목(碑木)’의 한 대목이 벽송사와 서암정사를 떠나는 길에 문득 떠올라 흥얼거려봤다.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연재 기사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