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설계역량과 동남아 자원·노동력 결합
한국·대만 등 집중된 공급망 다각화 의지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 |
미국 정부가 한국과 중국, 대만 등에 집중된 반도체 공급망을 분산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를 위해 필리핀을 위시한 동남아시아 국가에 반도체 생산을 위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미국의 최첨단 반도체 설계 역량에 동남아시아의 자원과 노동력을 결합해 대만과 한국,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포석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한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동남아시아의 반도체 제조 및 관련 산업에 미국 기업이 투자를 확대하도록 독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 기업들은 우리의 반도체 공급망이 전세계 몇몇 국가에 너무 집중돼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지정학 문제를 차치하고 집중도 문제만 따져보더라도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에 위배된다”면서 “이것이 바로 우리가 공급망을 다각화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러몬도 장관의 발언은 글로벌 반도체 생산이 한국과 중국, 대만 등 동북아시아 3개 국가에 집중된 점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반도체 파운드리 1위 업체인 TSMC의 본거지이고 한국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반도체 생태계가 있다. 중국 역시 레거시 반도체의 주요 공급국으로 최근에는 최첨단 반도체로 제조 역량을 확장하고 있어 미국의 견제를 받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반도체 공급의 상당 부분을 아시아 일부 국가에 의존하는 것을 줄이는 동시에 대만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됨에 따라 중국의 기술 역량을 억제하기 위해 추가 제재를 검토해왔다”고 설명했다.
러몬도 장관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반도체와 관련된 희토류 등 핵심 광물이 풍부하다”면서 “지금 이 지역 전체의 공급망에 중대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고 필리핀은 최고의 위치에 있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현재 13개 수준인 필리핀 내 반도체 어셈블리, 테스트 및 패키징 생산 설비를 두 배 수준으로 늘리자고 제안했다.
전날 미국 무역 사절단은 필리핀에 대한 10억달러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밝혔는데 여기에는 필리핀 내 인공지능(AI) 채택 확대를 위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 필리핀 기업 간 파트너십, 필리핀 디지털 기술 향상 등이 포함됐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따른 미국의 잠재적 지원으로 필리핀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필리핀은 2028년까지 12만8000명의 반도체 엔지니어와 기술자로 구성된 강력한 인재 풀을 만들 준비가 돼 있다”고 호응했다.
이미 필리핀 뿐 아니라 말레이시아와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대중 반도체 기술 수출 통제와 반도체 공급망 다각화의 수혜를 받는 상황이다.
이에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반도체 수입 20%를 책임지며 대미 수출국 1위로 올라섰고 베트남도 자국 반도체 산업 발전을 위해 삼성전자와 엔비디아,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2030년까지 전문인력을 5만명까지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내에서 생산한 반도체를 이들 국가로 옮겨 노동집약적인 후공정 작업을 마친 뒤 완제품이 돼 세계 시장으로 판매하겠다는 게 미국 정부와 반도체 업계의 복안이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가 중국을 외면하는 반면, 대규모 칩 생산 능력과 최종 소비자를 인근에 두고 있는 동남아시아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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