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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스트 라이브즈’ 유태오 “외로웠던 독일 ‘이방인’ 삶, 배우로서 가진 특권”
“영화제 상 무게감?… 전혀 없다”
해성 역에 15년 ‘무명의 한’ 녹여
다국적 성장 배경 …연기폭 넓어져
[CJ ENM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패스트 라이브즈’가 세계적인 시장에서 흥행하니 제 위치가 올라간 것 같아요. 지금도 예전처럼 오디션을 열심히 보는데, 절반 정도는 러브콜이나 오퍼로 바뀌었어요. 이전과 달리 선택의 여지가 생겼죠.”

배우 유태오는 최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으로 달라진 그의 일상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오는 6일 개봉하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그래타 리 분)과 해성(유태오 분)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 온 인연을 돌아보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태오는 평생 첫사랑을 맘 한 구석에 둔 채 그리워하는 해성 역을 맡았다.

[CJ ENM 제공]

영화는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인 이후 각종 영화제 상을 휩쓸고 있다. 특히 이달 열리는 제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과 각본상의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지금까지 각종 영화제에서 총 75관왕을 달성했고, 후보로 이름을 올린 횟수도 210번에 달한다. 유태오는 지난달 열린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유태오는 이러한 전세계적인 관심에 대해 정작 부담은 없다고 했다.

“작품을 할 땐 결과주의적인 자세로 임하지 않아요. 진솔한 표현을 어떻게 연기로 할 수 있고, 어떻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죠. 상에 대한 무게감이나 부담은 없어요. 막상 현실로 닥치지 않으면 체감하지 못하는 성격이거든요.”

[CJ ENM 제공]

영화는 ‘인연’이란 소재를 중심에 둔다. 인연이 단순히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전생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동양적인 개념으로 다룬다. 유태오는 작품을 통해 인연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연기에 대한 태도까지 바뀌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를 끝내고 많은 철학적인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연기 접근 방식도 달라졌죠. 그전까지는 연기를 교과서적이고 기술적으로 접근했어요. 그런데 인연이란 요소를 우리 일상의 사람과 물건에 개입시키 듯 캐릭터에 개입시키니 이미 생을 살았던 영혼으로 받아들여졌어요. 더 이상 특정 캐릭터가 되기 위해서 제가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가 없어졌죠.”

[CJ ENM 제공]

유태오는 극중에서 영어에 능숙치 않는 순수 한국인으로 나온다. 이는 사실 유태오의 성장 배경과는 정반대다. 유태오는 독일에서 태어나 유년시절까지 그곳에서 보냈다. 성인이 돼선 미국, 영국에서도 살았다. 때문에 영어를 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연기는 그에게 더 많은 고민을 안겨다 줬다.

“미국에서 한국 남자가 로맨스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어요. 동양인 남자는 대부분 코미디나 무술 영화에서 많이 등장했죠. 한국인이 영어를 쓸 때 우스꽝스럽게 들리지 않으면서 무게감 있게 감정선을 깨뜨리지 않는 게 늘 고민이었어요. 적당히 한국 관객과 미국 관객 모두에게 설득되는 어조로 동서양 남녀에게 여운을 남기는 것이 제 숙제였죠.”

[CJ ENM 제공]

오랜 시간 독일에서 산 경험은 ‘이방인’이란 시선 속에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야 했던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외로움과 고민도 컸다. 그가 배우를 하게 된 이유도 “자존감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정도다. 다만 그는 다국적인 성장 배경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각각의 문화권엔 단어들이 갖고 있는 특정 감수성이 있어요. 특정 감수성을 자기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게 단순화하거든요. (그 감수성을 모르는 사람은)외로울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아티스트로서 이런 걸 느낄 수 있는 게 특권인 것 같아요. 다양한 감수성 덕에 제 연기의 컬러 팔레트가 넓어질 수 밖에 없거든요. 한 문화에서 느끼는 감수성을 다른 언어와 매치시킬 때 재밌는 연기가 나오는데, 그건 저만 할 수 있어요.”

[CJ ENM 제공]

유태오는 2009년 영화 ‘여배우들’의 단역 에밀 역으로 데뷔했다. 배우에 대한 강한 열망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다국적인 배경 탓에 한국 영화나 드라마 보단 해외 작품의 출연이 많았고, 그만큼 국내에서 인지도를 쌓을 기회도 적었다. 그는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첫사랑에게 닿고 싶어도 닿지 못하는 해성을 연기할 때 이러한 ‘15년 간의 무명배우의 삶의 한’을 녹였다고 했다.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의지를 가지고 삶을 변화하지 못하는 억울함을 제가 너무 잘 이해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감정은 문화 배경이 달라도 어떤 사람이든 똑같이 느낄 수 있거든요. 스토리로 들어가면 그런 감정이 설득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CJ ENM 제공]

‘패스트 라이브즈’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단번에 쌓은 유태오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 앞에 서 있다. 동시에 새로운 꿈도 구체화하고 있다. 그는 향후 5년 간 한국과 외국 작품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한 뒤 제작 책임자(Executive Producer)로 활동하고 싶다는 꿈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역시 인생의 마지막 꿈을 위한 포석일 뿐이다.

“(배우이자 제작자로 활동하는) 배우 마동석이나 톰 크루즈처럼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품으로 어떻게 펼쳐 나갈 수 있을 지 찾아보고 싶어요. 먼 훗날 60~70살이 됐을 땐 연기 단체를 만들어서 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연기 커리큘럼을 한국 배우들에게 영어로 가르치고 싶어요. 이들을 영어권 국가로 진출시켜 세계 배우로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 제가 국내와 외국에서 인정을 받아야겠죠. 저는 지금 그 길을 만들고 있습니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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