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중고거래 제3자 사기에 당한 피해자들…대법 “판매자, 사기 방조 아냐”
속은 뒤에야 사기꾼 존재 인지
구매자, 판매자 상대로 소송
2심 판매자의 사기 방조 책임 인정
대법, “방조 아냐, 판매자도 속았을 뿐”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중고거래 제3자 사기에 당한 판매자에게 사기 범행을 방조한 책임을 묻는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판매자 역시 사기범에게 속았을 뿐이라는 취지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중고거래 제3자 사기에 당한 구매자 A씨가 판매자 B씨를 상대로 “부당이득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이같은 법리를 선언했다.

사건은 2021년 11월,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 B씨가 굴삭기 판매 글을 올리면서 시작했다. 성명불상의 사기꾼이 B씨에게 접근한 게 문제였다.

사기꾼은 물건을 사는 척 B씨에게 연락해 굴삭기 사진, 등록증, B씨의 은행 계좌번호 등을 알아냈다. 이후 굴삭기 구매를 원하던 A씨에게 접근해 B씨를 사칭하며 B씨 계좌로 돈을 보내게 했다. 당초 판매가는 6500만원이었지만 사기꾼은 A씨에게 5400만원만 보내면 굴삭기를 판매하겠다고 속였다.

사기꾼의 말에 속은 A씨는 B씨 계좌로 5400만원을 보냈다. 그러자 사기꾼은 다시 B씨에게 접근해 이번엔 A씨를 사칭했다. 세금신고 핑계를 대며 5000만원을 특정 계좌로 보내면 다시 6100만원을 보내주겠다고 속였다. B씨는 이 말을 믿었지만 사기꾼은 5000만원을 입금받자마자 연락이 끊겼다.

결국 A씨 입장에선 굴삭기는 받지 못한 채 5000만원만 날린 셈이 됐고, B씨 입장에선 400만원 밖에 받지 못했으니 굴삭기를 넘겨줄 수 없었다. 중간에서 서로를 사칭한 사기꾼만 5000만원을 ‘먹튀’한 것.

속은 다음에야 사기꾼의 존재를 알게 된 A씨와 B씨는 서로 법적 분쟁을 겪었다. A씨는 “B씨에게 5400만원을 보냈으니 이를 전부 돌려달라”고 했다. 반면 B씨는 “본인도 속은 것”이라며 “사기꾼에게 이미 5000만원을 보냈다”며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A씨의 주장을 일부분만 인정했다. 5400만원이 아니라 사기꾼에게 보내고 남은 400만원만 B씨가 A씨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김민철 판사는 2022년 8월, “B씨가 A씨에게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사기꾼에게 속아서 5000만원을 보낸 것을 두고 실질적 이득이 B씨에게 귀속됐다고 평가하긴 어렵다”며 “나머지 400만원만 A씨에게 돌려주는 게 맞다”고 밝혔다.

2심에선 배상액이 2400만원으로 늘었다. 2심을 맡은 대전지법 3-3민사부(부장 이효선)는 지난해 9월, B씨가 사기꾼의 범행을 방조한 책임이 있다며 이같이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거래 방법이 비정상적이었고, 인적사항을 전혀 모르는 사기범이 불법적인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B씨가 확인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사기범에게 협조한 과실이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손해배상책임 2000만원, 부당이득액 400만원 등 총 2400만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2심)의 판단이 가혹하다며 수긍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B씨가 사기꾼에게 어떠한 대가를 받지도 않았고, 굴삭지 사진 등이 사기 범죄에 이용될 것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있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며 “B씨도 사기꾼의 요청에 따라 위 돈(5000만원)을 다른 계좌로 이체 해준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러한 이체 행위가 이례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당시 B씨가 사기꾼에게 돈이 귀속된다는 사정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원심(2심)이 B씨의 방조에 의한 책임을 인정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며 “손해배상책임 2000만원 인정 부분은 잘못 판단했으니 그 부분의 판단을 깨고, 사건을 대전지법에 돌려보낸다”고 결론 내렸다.

notstrong@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