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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부족사태-멈춰선 자동차…쿠바는 왜 한국수교 서둘렀나
반미·공산주의 견지…미국 제재로 경제난 겪어
식량난·연료난 등 시달려…자동차도 멈춘다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 경제난에 K-컬쳐 매력도↑
北, 심리적 타격 불가피…우방국 쿠바가 변했다
쿠바

[헤럴드경제=서정은 기자] ‘북한의 형제국’으로 손꼽힌 쿠바가 우리나라와 전격적으로 수교를 맺게 된 건 지독한 가난이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겼던 문학적 낭만이나 쿠바의 재즈가 주는 자유로움은 빈곤이라는 벽 앞에 멈춘지 오래다.

연료 부족으로 버스가 멈추고, 국민 대다수가 ‘죽지 않을정도만’ 굶주리는 상황은 사회주의라는 이념 대신 경제적 실리를 택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류 문화가 스며들면서 쿠바 국민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가진 것도 한 몫 했다.

▶닭고기 훔치고, 자동차 멈추고…정부, 쿠바 힘들때 인도적 지원으로 신뢰 쌓았다 = 대통령실과 외교부는 한국과 쿠바의 수교가 전격적으로 이뤄진 배경으로 ‘경제적 기회’, ‘한류’ 등을 지목했다. 우리나라가 쿠바와 물밑 작업을 하는 동안 이 두가지 측면에서 교류 기회를 확대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쿠바에서 연료저장시설이 폭발하거나, 지난해 6월 폭우피해, 올해 식량부족 상황때마다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제공했다”며 “지난해 12월에는 한국영화특별전을 열어서 비정치분야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기를 조성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바나 국제영화제에는 한국 영화 ‘자산어보’와 함께 이준익 감독이 아시아 영화감독 중 유일하게 초청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실제 쿠바의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은지 오래다. 특히 미국과의 관계가 풀리지 않으면서 쿠바의 경제위기를 더욱 앞당겼다.

쿠바 관영언론 그란마와 국영 TV뉴스 카날카리베 등에 따르면 최근 쿠바에서 주민 배급용 닭고기를 대거 훔친 이들이 무더기로 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공공 식품창고에서 냉동 닭고기 133톤(t)을 훔쳐 시중에 몰래 내다 팔았는데 판매 수익금을 통해 냉장고, 노트북, 텔레비전 등 주로 가전제품을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닭고기가 쿠바 주민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라는 점, 이들이 구입한게 보석·의류 등 사치품이 아닌, 가전제품이었다는 점에서 쿠바의 식량난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연료 부족으로 지난해 5월 1일 세계 노동절 행진을 취소한 것도 쿠바의 힘겨운 상황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최대 100만명에 이르는 쿠바 국민들은 붉은색 옷을 입고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공산주의과 1959년 쿠바 혁명을 지지하는 깃발을 흔들어왔다. 코로나19로 3년간 중단됐다가 열린 행사가 연료난으로 취소된 것은 쿠바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이 쿠바와 전격적으로 수교를 맺은 가운데 마르코 루비오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은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오랫동안 도와 온 쿠바의 범죄정권과 외교관계를 맺은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16일 보도했다.

여기에 쿠바의 주요 수입원이던 관광 산업 또한 코로나19로 타격이 컸다. 기본적인 생필품 수급조차 되지 않고, 의료품 부족에 애를 먹는 등 국민 대다수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중이다.

쿠바는 외국인 투자 문호를 열고, 사적이익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등 시도를 꾀했지만 식량난은 풀릴지 않았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쿠바 경제 성장률은 2020년 마이너스(-) 10.9%를 기록한 이후 2021년과 2022년 0∼1% 안팎의 저성장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물가상승률은 2021년 424%까지 치솟아 극심한 인플레이션 상태다. 민간기업, 투자에 대한 개방이 있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쉽지 않다는게 경제학자들의 중론이다.

▶우방국 쿠바의 변화 “北 심리적 타격 불가피, 대세 보여준 것” = 쿠바의 역사와 현재를 미뤄봤을 때, 우리나라와의 수교는 쿠바가 경제난 타개를 위해 실리주의로 돌아섰음을 알 수 있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반미(反美) 노선과 공산주의를 견지해오고 있다. 에르네스토 체게바라, 피델·라울 카스트로 형제, 알베르트 바요 등을 중심으로 한 주민들이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다.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를 선언한 뒤 미국인 소유 기업과 자산을 몰수하는 조치를 단행하자 미국 또한 1961년 국교를 단절하고 쿠바 침공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은 쿠바와 2015년 국교를 재개했지만, 여전히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한 적성국이다.

여기에 쿠바는 1986년 3월 북한과 친선 조약을 통해 ‘형제적 연대성 관계’를 맺은 나라이기도 하다. 북한입장에서 내편이라고 믿었던 쿠바가 돌아서게 된 것이 치명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또한 “과거 동구권 국가를 포함해 북한의 우호 국가였던 대(對)사회주의권 외교의 완결판”이라고 평가했다. 또 북한을 겨냥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대세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나라와 쿠바의 수교 소식이 전해진 지난 15일 김여정 북한 노동장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기시다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같은 반응을 두고 외교가에서는 우리와 쿠바 수교에 따른 외교적 충격을 줄이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중이다.

한편 이번 쿠바와의 수교를 통해 한국과 쿠바간 경제적 협력 뿐 아니라 문화적 교류도 활발해 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약 1만2000명이 넘는 한국인이 쿠바를 방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관광 목적이라면 다소 신중해야할 전망이다. 쿠바를 방문한 뒤 비자 없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이 거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쿠바의 대표 관광지인 말레콘 방파제에 모여 있는 쿠바 시민들 모습 [로이터]
lu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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