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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고서 가난하다고 학폭…죽기 억울해" '수능 6수' 배달 기사의 꿈
정순수 씨[유튜브 채널 '미미미누' 캡처]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가난하다는 이유로 과학고등학교에서 학교폭력을 당해 대학에 진학 못하고 배달 기사 일을 하며 6년째 꿈을 키우고 있는 20대 중반 수험생의 사연에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

115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채널 '미미미누'는 1월 31일 '헬스터디 시즌 2'에 참여할 수험생 중 한 명으로 이같은 사연을 가진 정순수(25) 씨를 공개했다. '헬스터디'는 공부와는 담을 쌓은 N수생에게 그해 수능 시험까지 강의와 교재, 생활비 등을 전폭 지원하는 대입 콘텐츠다.

이 채널 영상에서 정순수 씨는 중학교 재학 당시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으나, 과학고등학교 입학 후 모든 것이 변했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놨다.

정 씨는 "입학하면서부터 적응하지 못했다"며 "대치동에서 과학고 입시반에서 친해진 애들끼리 무리가 형성되어 있고, 대학 수학까지 (선행학습을) 끝내고 온 애들끼리 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발표를 해보라고 하면 당연히 못 푸니까 애들이 낄낄거리고 웃거나 조별 과제를 할 때도 '정순수랑 같은 팀 하면 망한다'고 꼽을 주거나 같이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없어 혼자 했다"고 털어놨다.

결정적으로 친구 세 명이 정 씨의 노트북을 뒤지다 그의 가정이 경제적으로 곤란하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본격적인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 친구는 "가난하다는 걸 까발리겠다"며 협박하기도 했다고 한다.

정 씨는 "가난이 들키면 안 되는 건 줄 알고 너무 무서웠다. 친구 중 한명이 '살살 좀 괴롭혀라. 저러다가 자살이라도 하면 어떡할 거냐'고 비꼬듯이 말하는데 좀 많이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정 씨는 친구들의 멸시와 괴롭힘에도 꾹 참으며 학교 생활을 이어갔지만, 3학년 때 한 친구가 노트북을 밟아 부수며 또 다른 문제에 부딪쳤다고 한다.

그는 "친구가 '엄마에게 말하지 말아달라, 대학생 되면 과외해서 갚겠다'고 했는데 대학생이 된 뒤 잠수를 타는거다"라며 "재수를 하기 위해 노트북을 사서 인터넷 강의를 들어야 했기에 20살 때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정순수 씨[유튜브 채널 '미미미누' 캡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친이 조울증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정 씨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점점 커졌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배달일을 했다고 말했다.

배달을 하다 사고가 나 전신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병원비가 아까워 가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연고를 바르고 버틴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며칠 뒤에 아버지가 발견했는데 제가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급성 패혈증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을 뻔했다더라"라고 돌이켰다.

그는 "너무 억울했다. 노트북 하나 때문에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나. 가난하면 많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불행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정 씨의 아버지도 치매에 걸린 것. 그는 "2021년이 가장 힘든 해였다. 아빠를 입원시키려고 대학병원에 데려갔다.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치매, 파킨슨이 의심된다고 했는데 '네가 의대생이라도 되느냐'며 무시당했다. 살도 40kg까지 빠져있는데 어쩔 수 없이 집에 데려왔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때가 제 생일이었는데 암울해서 죽으려고 했다"며 "그냥 죽기가 너무 억울하더라. 학교 폭력 당한 것도 내 잘못 아니고, 엄마 아빠 아픈 것도 내 잘못 아닌데…"라며 눈물을 쏟았다.

그런 정 씨에게 '못 해줘서 미안하다'고 한 아버지의 말은 정 씨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정 씨는 "아빠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냥 과학고 간다고 하지 말고 일반고 가서 잘해서 의대 갔으면 내가 아빠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 텐데"라고 말했다.

정 씨는 의대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 그는 “내가 의사가 돼서 부모님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장기적으로 나같이 힘든 사람을 도와주자는 결심으로 의대를 지원하고 있다”며 “학폭과 가난이 얼마나 아픈지 알기 때문에 그런 친구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택배 상·하차 일을 하면서도 지난 5년간 계속 수능을 봤다고 했다. 전혀 준비되지 않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꿈을 놓지 않았다.

정 씨는 "(가난을) 모든 사람에게 오픈하면 더 이상 부끄럽거나 이런 것도 없는데, 그거 다 내려놓고 족쇄 같은 거 채워진 거 깨버리고 도망치지 않고 정면 돌파 하고 싶다"며 "끝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려고 한다"고 다짐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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