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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로운 마이산 3대 사찰이 품은 ‘조선왕조의 꿈’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⑨ 전북 진안 사찰기행
신비로운 마이산 3대 사찰
태고종 탑사·은수사
천년고찰 금당사
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100곳의 사찰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아홉 번째 방문지는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금당사와 탑사, 은수사입니다. 〈편집자 주〉
#100대명산 #마이산 #탑사 #은수사

무진장(無盡藏)은 양적으로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고 불교에선 덕이 광대하여 다함이 없음을 뜻한다. 불교 경전 유마경은 무진장을 실천하여 빈궁한 중생을 도와야한다고 가르친다. 중국 사찰에선 무진장이라는 금융기관을 두고 신자들이 희사한 보시금을 서민들에게 낮은 이자로 대출해주는 일을 했다. 전라도에선 무주. 진안, 장수, 세 지역의 앞글자를 따 무진장이라고 묶어 부른다. 오지(奧地) 지역을 뜻하는 말로 통한다. 오지 중 한곳인 진안에는 기이한 형태의 마이산이 있다.

조선 왕실 어좌 뒤편에 놓여있고 만원권 지폐에도 있는 그림이 ‘일월오봉도’다. 태조 이성계가 왕의 계시를 받은 꿈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그 오봉이 마이산을 모델로 그려졌다는 설이 있다. 마이산 은수사엔 이성계 방문 설화가 있고 태극전엔 일월오봉도가 걸려있으며 이성계의 첫째 아들이 진안대군(鎭安大君)인 것을 들어 마이산이 조선의 건국설화를 품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진장의 마음으로 진안 마이산 일대 사찰을 다녀왔다.

“마이산은 신이 창조한 조화이니 산중에 영산(영산)이라.

하늘을 품은 기상은 人道 가는 길을 엄중히 묻는다

천지탑은 인간이 축조한 걸작이라 만인의 정성을 괴어올린 숭고한 모습

한 개, 두 개 올려놓은 저들의 소망을 받드는가” (중략)

〈허호석의 ‘마이산’〉
‘일월오봉도’ 모델, 기이한 마이산
탑사의 경내 모습. 80여기의 돌탑이 곳곳에 있어 신비로운 정경을 만들어 낸다.

마이산은 두 봉우리가 서로 등지고 있는 모습으로 솟아있다. 노령산맥의 줄기인 진안고원과 소백산맥의 경계에 자리 잡고 있다. 동쪽을 숫마이봉(681m), 서쪽을 암마이봉(687m)이라 한다. 산 전체가 거대한 암석덩어리다. 먼 옛날 부부신이 몰래 지상에 내려와 살다가 하늘로 올라 갈 때가 되어 새벽에 조용히 떠나려다 동네사람에게 들켜 그대로 산으로 굳어버렸다는 마이산 전설이 있다.

과거엔 서다산, 속금산(東金山)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지만 조선 태종이 남행하여 이 산 아래를 지나다가 그 모양이 ‘말의 귀’와 같다 하여 마이산이란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쫑긋 선 말귀 형상이다. 흙이 전혀 없이 퇴적암으로만 구성된 바위산인데 산 정상에는 중사철 등 희귀관목이 자라고 세계 최대 규모의 타포니 지형이 있어 지질학적 가치가 높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됐다.

천왕문(天王門) 이정표를 보고 은수사 대웅전 뒤 끝없어 보이는 324계단을 오른다. 암·수마이봉이 만나는 협곡이 금강과 섬진강을 나누는 분수령이다. 분수계(分水界)가 있어 남쪽으로는 ‘섬진강의 시작’이, 북쪽으로는 ‘금강의 시작’이 표기되어 있다.

금강과 섬진강을 구분하는 분수계

천왕문은 마이산 등반의 입구이기도 하여 그곳에서 숫마이봉으로 150m 올라가다 보면 화엄굴이라는 천연동굴과 작은 샘에 이른다. 숫봉우리 바위틈에서 내려오는 석간수라 의미가 다르다하여 아이를 갖지 못한 여인이 마시면 득남한다는 전설이 있다. 한 잔 마시고 싶어 입구까지 갔으나 겨울철 출입 통제 기간이라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마이산은 유명 관광지다. 남부주차장에서 탑사 매표소까지 1.4Km 이어지는 길엔 각종 기념품 판매점, 음식점, 카페 등이 즐비하다. 놀이와 휴식을 위한 다양한 관광코스도 있다. 저수지(탑영제) 오리배 놀이터, 오토캠핑 및 몽골텐트, 숙박이 가능한 마이산 야영장, 돌탑 쌓기 체험장과 마이산 부부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겨울에는 암마이봉 등산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탑사는 입장료(3000원)를 받는다. 비가 오는 2023년 마지막 날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신비스런 ‘탑사(塔寺)’
마이산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탑사 경내

암마이봉의 수직 벽이 올려다 보이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 탑사는 80여 개의 돌탑으로 유명하다. 탑을 쌓은 이갑용(李甲用, 1860~1957) 처사는 1885년 스물다섯 살 되던 해에 유·불·선 삼교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의 실현을 꿈꾸며 이곳에 들어왔다고 한다. 임오군란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처형되는 등 시대적으로 뒤숭숭했고 어두웠던 세속을 한탄하며 사람들의 죄를 빌고 창생(蒼生)을 구하겠다는 구국일념으로 솔잎으로 생식하며 수도하던 중, 백팔번뇌에서 벗어나고자하는 염원으로 30여 년 간 밤낮으로 108기의 탑을 쌓았다. ‘내가 지은 공덕을 이웃에 널리 돌리고자 한 것’인데, 불교용어로 회향(廻向)한 것이다. 처음에는 절의 이름도 없었다가 그가 108탑을 축성하자 주변 사람들에 의해 탑사(塔寺)로 불리기 시작했다.

탑사 창건자인 이갑용 처사의 상

돌탑은 입구 쪽의 월광탑, 일광탑, 중앙탑, 그리고 대웅전 뒤의 오방탑, 천지탑을 비롯 약사탑, 월궁탑, 용궁탑, 신장탑 등으로 규모가 큰 탑들은 모두 이름이 붙어 있으며 탑마다 각각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닌다고 한다. 주위에서 모은 자연석으로 원뿔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올린 탑들의 높이는 낮은 것은 1m에서 높은 건 13.5m에 이른다. 돌탑의 형태는 일자형, 원뿔형 등 단순한 형식이고 크기도 다양하지만 비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무너지지 않아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탑 중에서 가장 큰 대웅전 뒤 천지탑은 하나의 몸체를 이루다가 한 쌍의 부부처럼 양탑, 음탑 등 두 개의 탑으로 갈라졌는데 마이산 산세와도 잘 어울린다. 몸체 위 탑만 해도 어른 키의 약 3배 정도 높이는 될듯한데 출입이 제한되어 멀리서만 바라봐야해서 아쉬웠다. 탑사의 돌탑들은 1976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마이산 암마이봉

법당으로는 초입의 영신각과 규모가 작은 팔작지붕의 대웅전, 그리고 산신각이 있다. 대웅전 올라가는 길목엔 천연기념물 줄사철나무가 담장을 푸르게 장식하고 그 아래 약수터에서 객들이 목을 축일 수 있다. 사찰 가장 중심부에 이갑용 처사 좌상을 만들어 기념하고 있었다.

탑사를 둘러싸고 있는 암마이봉에는 타포니(풍화혈)라 불리우는 폭격을 맞았거나 벌집 같은 크고 작은 구멍들이 장관을 이룬다. 그 안에 여러 유형의 석탑, 불탑들이 세워져 있어 신비스럽다. 타포니는 암석의 표명이 오랜 시간 물과 바람 등에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바위표면을 밀어내면서 만들어진다고 하는데, 암마이봉은 세계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된 곳이란다.

마이산 은수사에 얽힌 조선왕조 설화

은수사는 탑사를 지나 약 300m 정도 산길을 더 우르면 숫마이봉 암벽 아래 있다. 마당에는 천연기념물 ‘청실배나무’가 쭉 뻗어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마친 태조 이성계가 기념으로 씨앗을 심은 것이 자라나 번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겨울철이라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내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견뎌 온 위풍이 느껴진다. 은수사에 얽힌 전설들은 대부분 태조 이성계와 관련되어 있지만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찰의 이름도 상원사, 정명암 등으로 불리다가 이성계가 이곳에서 왕조의 꿈을 꾸며 기도 중에 마신 물이 은(銀)과 같이 맑고 깨끗하다고 하여 은수사(銀水寺)로 정해졌다고 전해진다. 비가 온 뒤라 물이 은같이 깨끗하진 않지만 옛 생각하며 우물물을 마신다. 경내 태극전에는 이성계와 관련된 몽금척 수수도(夢金尺授受圖)와 일월오봉도가 있다 하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산신제를 지내는 마이산 제단이 은수사 뒤 숫마이봉 아래에 있다고 한다.

은수사와 그 뒤의 숫마이봉

은수사와 탑사 주변에는 겨울철에 역(逆)고드름이 목격된다. 영하 5~6도 정도 될 때 물을 그릇에 담아놓으면 얼음기둥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신비한 현상이다. 방문했던 날은 영상이어서 귀한 현상을 볼 수 없었다. 대웅전 앞에 놓인 큰북은 일반인들도 직접 쳐볼 수 있다. 북을 세 번 치면 마음이 맑아진다 해서 마이산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도 궁금해 소망을 담아 쳐보았다. 그 앞엔 북만 치고 지나치기엔 마음이 불편해지게 하는 불전함이 있었다.

324계단 길 넘어 천왕문 협곡에서 북부 주차장으로 넘어가는 기나긴 계단길이 있다. 북부주차장 근방에는 산약초 타운과 전시관, 홍삼 스파와 숙박시설 등의 편의시설이 있어 그 방면에서도 은수사로 넘어오는 등산객들이 보인다. 이들은 은수사에서 입장료를 내야한다.

조계종과 태고종의 동거
마이산 금당사 대웅전

벚꽃나무들이 줄지어 있는 남쪽 계곡 진입로 개울을 따라 남부주차장에 도착하면 ‘마이산 금당사’라는 일주문과 과거 매표소로 쓰였을 것 같은 안내소가 먼저 맞아준다. 입구 식당가를 지나자마자 조계종 금당사 나타난다. 백제 의자왕 때 창건된 천년고찰이라고 하니 예전엔 입장료를 받았겠으나, 조계종단이 입장료를 폐지함에 따라 매표소가 태고종인 탑사 입구 앞으로 이동한 것 같다. 탑사와 은수사는 태고종이다.

금당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화가 있고 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석탑이 있다. 현재는 가림막을 치고 보수공사 중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이 어수선하고 찾는 이들도 거의 없어 한적하다. 1692년에 만들어진 길이 8.7m나 되는 괘불탱화는 이를 모시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전설이 깃든 보물이라고 한다. 유서 깊은 절이지만 마이산에서는 관광지로서 탑사나 은수사에 가려져 덜 알려진 것 같다.

은수사 약수터와 숫마이봉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스님들을 강제로 결혼시켜 절을 맡겼다. 이러한 정책을 일본의 불교말살정책으로 보고 독신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많은 스님들이 항거하기도 했다. 그 바람에 결혼하신 스님(대처승)과 독신 스님들간 갈등이 생겼다. 해방이후 이 갈등은 증폭됐고 결과적으로 독신수행 가풍이 주종이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계종이 대표적 불교종단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대처승과 재가승(법사)을 인정하고 대중교화를 이념으로 머리를 기를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는 태고종단이 등장했다. 조계종에서도 천태종, 진각종 등 옛 종단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분파되기도 했다. 순천 선암사는 이런 종단간의 갈등의 표상이 되기도 했다. 마이산에서는 조계종과 태고종, 서로다른 종단이 동거하고 있는 양상이다. 등 돌리고 우뚝 솟은 부부 마이산처럼.

글·사진 = ㈜헤럴드 정용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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