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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 칼럼] 한국 정당사와 정치테러를 생각한다

정치테러는 모방범죄와 상당한 유사성을 갖는다. 일반적인 폭행치상과 달리 정치적 성격이기 때문에 정치상황이나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을 모방한 결과물이다. 테러범이 맹신하는 이념이나 그가 추종하는 정치인의 공격적 언행을 모방한 극단적 행위라 할 수 있다. 구체적인 범행동기가 조사되기 전에 본질적으로 증오정치의 배설물 같은 것이다. 제아무리 확신범이라 해도 혼자만의 생각으로 행동에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범인의 자연적 악성뿐만 아니라 거기에 정치권의 극단적 증오언사와 적대적 막말이 투영돼서 테러행동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범행 당시 갖고 있던 변명문이나 경찰에서 진술 등 언론에 알려진 것만 보아도 전 정부에 대한 반감과 이 대표에 대한 적대감이 테러의 배경인 것으로 분석된다.

자신이 맹신하는 신념과 정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으로 넓은 의미의 정신병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정치환경에 암시받거나 마치 성범죄에 종종 등장하는 ‘그루밍’과 같은 최면효과에 걸렸을 개연성이 크다. 우리는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암살당한 정치테러의 어두운 과거사를 갖고 있다. 그 교훈을 정치인들이 먼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1945년 이후 해방정국 3,4년 사이만 해도 송진우, 여운형, 김구 선생을 정치테러로 잃었다. 해방정국의 첨예한 이념갈등과 정부 수립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이 테러범에 영향준 결과였다. 그때도 정당간 연합이나 좌우합작 운동과 같은 대화와 협치의 정치가 원활하게 이루어졌더라면 그런 흑역사를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국제사회의 영향력 있는 언론들이 정치병리학적으로 비정상적인 나라라는 뉘앙스의 보도를 내놓고 있지 않은지 뼈아프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독일의 슈피겔, 미국의 뉴욕타임스, 프랑스 르몽드, 영국 BBC 방송, 일본 NHK 방송, AP통신, 등등 유력 국제언론들이 사건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정론 언론의 특성은 확인된 사실만을 근거로 그것에 대해 분석 평가한다는 점이다. 이것도 정치권과 근접해 있는 한국의 언론과 본질적인 차이다. 국제 언론들의 보도는 치안이 좋기로 정평있는 한국에서 야당 지도자가 테러당했다는 것, 그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불과 0.73%포인트 차이로 패했고 현재 차기 대선 후보 중 지지율이 높으며,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 지지를 호소하던 정치일정 중이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한국은 정치권력에 대한 비판과 야당의 활동공간이 위험하며 실질적으로 정치적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후진국이라는 낯뜨거운 시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여야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상대를 악마화하는 증오발언과 극단적 막말을 국회와 정당에서 퇴출시키겠다고 경쟁적으로 나섰다. 이번 총선 출마희망자들에 대해 증오발언 여부를 공천심사에서 가려내 정치권 진입을 막겠다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대결주의적 언행이 정치테러범에 의한 모방 대상임을 이제사 인식한 사후 조치다. 정치권은 협치 없는 증오정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깊이 자성해야 한다. 그것도 4월로 다가온 총선거에서 득표하기 위한 책략으로 읽히지만 부디 일과성이 아니라 제대로 개혁 차원에서 단행하기 바란다. 정치테러의 근원적 재발방지를 위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정상적 복원에 정치권이 선도하고 국민이 함께 나서야 한다. 민주주의와 정당 협치가 원활한 정치환경으로 테러가 발붙일 여지를 근절해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신당 창당 움직임이 번지고 있다. 이낙연, 이준석, 조국, 금태섭 신당 등이다. 항상 신당 창당의 동력이 큰 것은 현실적으로 총선거지만 기존에 몸담고 있던 정당에서 탈당해 신당을 창당하려면 선거용이 아니라는 대의명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우리 정당사를 보면 적어도 나라의 주권회복이나 정부수립이 정당 결성의 대의명분이었다. “당으로써 나라는 다스린다”는 뜻의 이당치국(以黨治國)이 정당 결성의 정치철학이었다. 이승만·김구·여운형·신익희·김성수 등에 의한 1세대 정당인 한민당, 한독당, 인민당이 그랬다. 군사쿠데타 주도자들인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2세대 정당인 공화당, 민정당도 국민 설득력과 관계없이 나름의 국가근대화 같은 것을 내세웠다. 민주화 투쟁 역정을 거친 제3세대 정당인 김대중·김영삼의 평민당, 신민당은 민주헌정 복원이 일관된 목표였다. 독립운동, 군사쿠데타, 민주화투쟁의 공통적인 결과는 카리스마적 권위다. 노무현 시대에 전개된 제4세대 정당인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의 창당그룹이 제시한 명분이 탈권위였으며 이에 바탕한 실질적 민주화와 정당개혁이었다. 앞선 정당들과 달리 인물 중심으로부터 탈피해 중앙당과 당권 지도부가 아닌 바닥 당원으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조직과 공천제도를 시행했다.

지금은 그런 정당사와는 다르지만 최소한 기존 정당들이 대변하지 못하는 국민의사와 정치적 이익이 무엇인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면 기존 정당에 대한 주관적 감정의 발로로서 또다시 감정적 대립의 정치를 부채질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뿐이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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