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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낭만 여수의 일출명소 향일암과 빈티지 흥국사 [정용식의 내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⑧ 전남 여수 향일암-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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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은 불교의 공간이면서, 우리 역사와 예술의 유산입니다. 명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사찰들은 지역사회의 소중한 관광자원이기도 합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얻고자 할 때, 우리는 산에 오르고 절을 찾습니다. 헤럴드경제는 빼어난 아름다움과 역사를 자랑하는 100곳의 사찰을 소개하는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여덟 번째 방문지는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향일암과 흥국사입니다. 〈편집자 주〉

향일암으로 향하는 계단길에서 만나는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의 아기부처상. 이 절의 명물이다.
#향일암 #여수 #여수여행 #일출

누구나 한 번쯤은 완전한 자유를 꿈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저런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상태를 말이다. ‘만석꾼은 만 가지 고민이 있고 천석꾼은 천 가지 고민이 있다’고 했다. 누구도 욕심의 굴레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오죽했으면 속박(번뇌)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의 경지라 했을까. “너와 함께 걷고 싶다”고 노래하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 노래를 들으며 드는 생각이다.

‘자유인’ 하면 김삿갓과 달마대사가 생각난다. 김삿갓은 그렇다 치고, 달마대사의 경우엔 특별한 추억 속 이미지가 있다. 30대 중반쯤 새해맞이 여행으로 여수 향일암을 찾았다. 당시엔 향일암 일출을 보려면 주로 임포마을에서 민박을 했다. 달마대사 그림을 한꺼번에 본 건 그때 우연히 묵은 민박집에서 처음 경험했다. 민박집 주인장이 그림을 그려 팔고 있었기에 거실에 각양각색의 달마대사 그림을 걸어두고 있었다.

향일암 종각, 그 주변에 새돋이를 보려는 방문자들이 앉아 있다.

2024년 새해 맞이 여행의 목적지를 여수 향일암으로 정하면서, 수십 년 전 보았던 달마대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달마대사는 불교에선 고승(高僧)으로 추앙받는다. 필자에겐 친근한 생김새 덕분인지 자유인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참선의 목적이 해탈이요, 해탈은 번뇌와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니 고승을 자유인이라 불러도 틀린 말이 아닐 듯싶다. 달마대사 그림 옆에 쓰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내 좌우명이 됐다. 지금도 사무실에 족자로 걸어뒀다.

달마대사는 선문답을 가지고 제대로 된 부처의 가르침을 전하고자 동쪽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은 일출을 보기 위해 동쪽으로 가지만 여수 향일암도 동해 못지않은 해맞이 명소다. 풍광이 좋고 주변 관광지도 많아 해맞이 시즌엔 부근이 인산인해다. 작년엔 10km 밖부터 차량을 통제해서 셔틀버스를 타고 아랫녘 임포마을 주차장에서 얼굴만 빠끔히 내놓고 일출을 감상했을 정도다. 새해 아침 크고 작은 섬들에 갇힌 바다는 온화하고 잔잔했다.

해를 향하는 암자 ‘향일암’
향일암의 일주문. '금오산 향일암'이라고 현판이 걸려있다.

원효대사(617~686)는 요석공주와 사이에서 설총을 낳고 파계해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만행(萬行, 두루 돌아다니면서 수행)했다. 오랜 시간 만행을 하다보니 ‘해골물 전설’도 나오고, 수많은 사찰들이 창건한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바다의 비릿함도 없고, 동백과 사시사철 울창한 숲이 거센 바다바람도 막아주는 금오산 지형에 매료되어 암자를 짓고 수행 중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여 암자 이름을 원통암(圓通庵)이라 했다’는 원효대사의 향일암 창건 설화가 있다.

현재 이 절은 화엄사(華嚴寺)의 말사로, 그간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봉황산(460.3m)에서 흘러 남단 끝머리에 기암 덩어리로 솟아 있는 금오산(金鰲山, 323m) 중턱에 자리하고 있어 금오암이라고 하였고 절 뒷산에 있는 바위가 거북의 등처럼 보여서 영구암(靈龜庵)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금 이름은 조선시대 인묵대사가 ‘해를 향하는 암자’ 또는 ‘비로자나불(태양으로 형상)께 귀의한다’는 뜻으로 개명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일각에선 일본 천황을 향한다는 의미로 일제 때 개명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금오산은 지형이 거북이와 흡사하고 거북이가 향일암을 등에 업고 바다로 기어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자라 오(鰲)’를 쓰고 있다. 향일암은 임포마을 길을 통하거나, 금오산 등산길을 통해 갈 수 있다. 등산길을 걷다 보면 금오도, 안도를 비롯한 다도해와 남해 금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문화재청은 2022년 향일암 일원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했고 미국 CNN은 이곳을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사찰 33곳’에 선정하기도 했다. 1986년 이후에 사찰로서 면모를 갖추었으나 2009년 화재가 나서 다시 복원됐다.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 기도 도량으로 꼽힌다. 유명 관광지다.

향일암 진입로의 등용문(登龍門)
해탈문. 커다란 바위 암석 사이로 난 틈인데, 여기를 거쳐야만 비로소 절에 닿는다.
향일암의 대웅전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녘에 사람들이 향일암에 올랐다. 주차장에서 오르는 언덕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갓김치 시식 코너와 막걸리의 유혹을 견디며 걷다 보면 어느새 매표소가 나온다. 계단길과 평지를 돌아오르는 선택지가 있지만 ‘금오산 향일암’이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는 계단길로 올랐다.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의 아기부처상과 느닷없이 등장하는 등용문(登龍門)이 계단길의 지루함을 덜어준다. 시험 볼 일 없어도 커다란 원형구를 만져보고 지나쳤다.

암자 근처에 이르면 집채만 한 거대한 바위 두 개 사이로 난 좁은 석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곳이 ‘해탈문’이다. 관세음보살을 접견하는 꼭대기 관음전까지 향하는 길목에 7개의 큰 바윗돌로 된 문이 있다고 한다. 여기를 통과할 때마다 모든 괴로움이 사라지고 깨달음도 얻는다 하는데, 몸집이 있는 이들은 여길 통과할 땐 오히려 괴로움이 커질 것 같았다. 석문(石門)과 주위의 동백나무 숲은 잘 어울려 빼어난 자연경관을 만들고 있다. 암자로 이어지는 길목에 모든 바위가 거북이 등껍질 무늬를 하고 있다. 일명 ‘거북등’인 듯하다.

이곳은 과거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싸웠던 승려들의 근거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아랫마을에 군부대가 있다. 주민들은 역사·문화적 가치를 훼손한다며 군부대 이전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향일암이나 임포마을은 동백군락지로도 유명하다. 아직은 꽃이 보이지 않으나 초봄이면 암자 오르는 길이 붉은 동백꽃들로 화사해질 것이다.

향일암 해수관음보살상
향일암에서 맞이한 일출

일출 명당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였다. 대웅전 앞이나 종각 옆, 아래쪽의 해수관음전 앞, 위쪽의 관음전이나 삼성각 앞, 원효대사 수행바위 앞 등 이곳저곳을 돌며 각자가 좋아하는 위치를 골라 자릴 잡았다. 표정들이 모두 경건하고 엄숙했다. 바다와 하늘의 틈새를 비집고 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일순 탄성이 울려 퍼지고 모두가 새해 소망을 품는다. 2024년 청룡의 해가 그렇게 밝아왔다.

내려오는 길에 굴전, 해물파전, 갓김치에 개도막걸리 한 잔 걸치며 허기를 달랬다.

천년고찰 영취산 흥국사의 빈티지(vintage)

여수시내에는 1196년 지눌(知訥)이 창건한,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라는 흥국의 염원을 담은 흥국사가 영취산 자락에 있다. 향일암에서 나가는 길목에 있어 잠시 들리기로 했다.

인도 영취산은 석가모니가 가장 많은 설법을 했던 곳으로 사찰 대웅전 후불탱화에 가장 많이 그려져 있다. 여수에도 같은 이름의 영취산이 있고 진달래로 유명하다. 이곳의 흥국사는 규모가 큰 절임에도 마음에 쏙 들었다.

변방의 국찰(國刹, 국가에서 창건하여 운영하는 사찰)이자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했던 호국사찰로 창건되어 유일하게 수군 승병이 있었던 곳이다. 오랜 시간 중건을 거듭하며 조선 말기 승군이 해산하기까지 승려 643명이 상주하던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흥국사의 대웅전. 조선시대엔 승병이 지내면서 훈련하던 큰 절이다.

영화 ‘노량’이 인기리에 상영 중인데, 임진왜란 땐 이 절의 승려 300여명이 이순신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웠다. 다만 그 당시 쓰던 절 건물은 전소되었다 한다. 영화만큼이나 가슴 아프다.

보물 대웅전은 한참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로 아름다운 건물이다. 스님과 신도 몇 분이 기도하고 있는 내부는 더욱 감탄스럽다. 목조석가여래삼존상, 그 뒤의 후불탱, 관음보살 벽화 등 보물들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묵혀온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대웅전은 뒤집으면 그대로 배가 되는 모양새란다. 반야(般若, 지혜의 세계)를 목적지로 용이 이끄는 배인 ‘반야용선(般若龍船)’이라고 해서 축대나 정면 계단석에 자라, 게, 용, 거북 등이 새겨져 있다. 원통전(圓通殿)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석가의 일대기를 묘사한 팔상탱화가 봉안된 팔상전(八相殿)과 고승의 영정 9점이 봉안된 불조전(佛祖殿), 범종과 특이한 법고(法鼓)가 있는 봉황루 등 15점의 건물 모두가 꾸밈이 없고 고풍스럽다.

흥국사 원통전

국가보물 11점과 다양한 유형문화재가 있는 천년고찰이지만 사찰 주변엔 음식점이나 카페가 한 곳도 없다. 사람들이 몰리는 관광지 향일암과는 달리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예전엔 절 주변에 음식점들도 있고 마을도 있었으나 여천공단 조성으로 주민들은 이주하고 식당들도 정비되어 한적해졌다고 한다. 큰절 전체가 그냥 스님들이 수련하는 선방 같다. 고찰의 고즈넉함과 자연스레 널브러져 흐트러진 모습들이 한편으론 마음을 편하게 하지만 사찰을 운영하는 분들의 마음은 내 생각과는 다를 것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홍예석교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는 입구의 다리도 보수 중인지 가림막으로 덮여 있어 쓸쓸함을 더한다. 그래도 ‘빈티’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엔 아쉬운 흥국사엔 오래 숙성된 ‘빈티지’의 분위기가 흐른다.

영취산 계곡 도솔암 가는 길. 수많은 암자들이 있었던 곳에 108돌탑이 조성되어 있다. 신도회장이 혼자서 전장에서 산화한 의승군들의 넋과 공단 조성에 희생된 산업역군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수년 동안 쌓았다고 한다. 영취산 진달래 활짝 필 때 도솔암에 가고 108돌탑도 보고, 대웅전에서 차분히 명상에 젖어볼 날이 기다려진다.

향일암 종각과 남해의 모습

향일암 오르는 계단길에 있던 3불을 되새겨본다.

-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피라는 불견(不見)

- 지혜로운 사람은 비방과 칭찬의 소리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는 불문(不聞)

- 나쁜 말을 하지 말라, 악담은 끝내 나에게 돌아오니 항상 옳은 말을 익히라는 불언(不言)

옛말에도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남을 허물하지 말라’고 했다 남 탓하거나 원망한다고 해서 내 운명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자유를 옭매는 것, 또한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 많다는 깨달음을 준다. ‘길을 바꿀 수는 없어도 걸음은 내가 정한다’고 했다.

‘슬프고 힘들 때도 감사할 수 있으면 삶은 어느 순간 보석으로 빛납니다.’(이해인의 ‘감사예찬’ 중)

글·사진 = ㈜헤럴드 정용식 상무

정리 = 박준규 기자

ny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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