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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대응 강화에도...‘깡통 전세’ 사기 여전
봉천동 일대 빌라 무더기 경매행
보증금 못 받은 세입자들 발동동

#. 지난해 말 서울시 장기안심주택 입주자로 당첨된 대학생 안모(21) 씨는 거주하던 빌라 임대인 A씨에게 중도 퇴거를 문의했다. 안씨는 2022년 6월부터 관악구 봉천동의 한 신축빌라 반지하에 보증금 1억원으로 세 들어 살고 있었다. A씨는 문의 당시 “계약기간이 지났는데도 거래가 안 돼 못 빼고 있는 방들이 있어 상황이 어렵지만 최대한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세입자가 구해지기를 기다리던 안씨는 지난달 빌라 1층에 붙은 다른 세입자의 안내문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A씨가 소유한 빌라들이 이미 경매로 넘어갔고, 전세사기가 의심된다는 내용이었다.

안씨가 거주 중인 빌라도 지난달 중순 임의경매로 넘어갔다. 안씨는 “전세 계약할 때 중개업소에서 ‘반지하 신축이면 좋다’, ‘근저당 잡혀있는 것도 이 정도 액수면 괜찮다’며 권장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금전적 측면에서도 그렇고 학생 신분이라 대응하는데 제약이 많다”고 토로했다. 결국 안씨는 파산 신청을 알아보고 있다.

#. 2021년 12월부터 봉천동 빌라에 살고 있는 직장인 노모(26) 씨는 지난해 9월 2년 계약 만기가 다가오자 임대인 A씨에게 퇴거 계획을 알렸다. 당시에만 해도 A씨는 “새로운 세입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록 집을 보러오는 사람이 없어 A씨에게 연락하니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사실 나는 명의만 빌려준 바지사장이고 빌라 관리는 다른 두 명이 한다”며 “두 명이 하는 사업이 잘 돼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노씨는 “이 말을 듣자마자 전세사기 걱정이 커져 임차권등기 신청, 소송 등 관련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고 했다. 보증금 미반환에 대한 우려는 지난달 빌라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현실이 됐다.

#. 관악구 빌라에 사는 직장인 고모(33) 씨는 지난해 1월부터 전세로 거주 중인 방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전세사기 사태가 터지며 빌라 기피 현상이 심해진 탓에 같은해 11월까지 도저히 다음 세입자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11월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부터 현재 살고 있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통지문을 받았다.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12월 초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한 뒤 수사 상황에 대해 문의했지만, 경제사범이 너무 많아 후순위로 밀렸다는 답변만 받았다. 고씨는 “일이 터지고 나서야 다가구주택은 보증보험 가입이 쉽지 않아 위험하단 것을 깨달았다”며 “배당요구 신청을 하고 경매 순서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재작년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하며 정부 대응도 강화됐지만, 2~3년 전 체결한 임대차 계약의 보증금 미반환 ‘전세사고’는 현재진행 중이다. 최근 관악구 봉천동에서도 수십억원 규모의 빌라 전세사고가 발생해 피해 세입자들이 공동대응을 모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 계약에 익숙치 않은 젊은층이 주로 피해를 입은 이같은 전세사고는 온전한 보증금 회수가 쉽지 않을뿐더러, 다가구주택의 후순위 임차인 등은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우려된다.

전세사기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기 전인 2020~2021년에는 보증보험 가입률도 저조해, 지난해 말 종료된 전세 계약과 관련한 보증금 사고는 새해에도 잇따를 수 있다. 김승남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토교통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전세 거래에서 전세보증보험 가입률은 17.5%에 그쳤다. 최근 몇 년 새 보증보험 가입률이 소폭 늘어나긴 했지만 20% 안팎 수준이다. 10가구 중 8가구는 보증보험 미가입으로 보증금 사고가 발생해도 실질적인 피해 구제책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신규계약 대상으로 강화된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이 올해에는 갱신계약에도 확대 적용된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 분석에 따르면 2022년 체결된 수도권 연립·다세대 전세 계약의 66%가 동일한 금액으로 올해 계약을 갱신할 경우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근저당권 등 선순위 담보채권이 아예 없는 것을 가정한 수치다. 2년 전 갭투자를 통해 주택을 사들였던 임대인들의 보증금 미반환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단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신혜원·고은결 기자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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