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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미제라블’ 작사가 알랭 부블리 “시대를 타지 않는 작품…삶이 힘든 사람들 공감” [인터뷰]
‘레미제라블’ 프랑스 초연 극작·작사
“아름다운 한국어, 작품에 큰 도움”
알랭 부블리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분노한 자들의 노래가(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a song of angry men)” (뮤지컬 ‘레미제라블’ 메인 넘버 ‘민중의 노래’ 중)

40여년 전, 노래는 태어났다. 벼락같이 찾아온 영감이었다. 프랑스 극작가 겸 작사가 알랭 부블리(82)는 당시를 떠올리며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찰스 디킨스 원작의 뮤지컬 ‘올리버’를 보고 있을 때였어요. (작품을 보면서 갑자기)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뮤지컬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공연을 보는 내내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한쪽 뇌로는 공연을 보고, 다른 한쪽 뇌로는 ‘레미제라블’을 어떻게 뮤지컬화하면 좋을 지 상상했어요.”

1980년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으로 막을 올린 뮤지컬 ‘레미제라블’. 3개월 간 무려 10만 명의 관객이 찾았다. 그것이 끝인 줄 알았지만, 이 작품은 생물처럼 새로운 세상을 향해 갔다. ‘운명 같은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1983년, 비 오는 파리에서 부블리는 영국 런던에서 온 전화 한 통을 받게된다.

“당신을 오래 찾았습니다. 전 뮤지컬 ‘캣츠’를 제작한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입니다.”

확신에 찬 젊은 프로듀서는 부블리에게 “당신이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 공연의 음악을 듣고 ‘내 인생 최고의 공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42세의 부블리와 36세의 매킨토시가 ‘인연의 끈’을 맺는 순간이었다. 매킨토시는 그에게 글로벌판 ‘레미제라블’의 제작을 제안했다. 매킨토시는 ‘레미제라블’ 제작에 영감을 준 작품 ‘올리버’를 제작한 장본인이다.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뮤지컬 ‘레미제라블’(3월 10일까지·블루스퀘어)의 개막에 맞춰 한국을 찾은 부블리는 “그 땐 ‘캣츠’라는 작품도, ‘캐머런 매킨토시’라는 사람도 누군지 몰랐고, ‘레미제라블’ 때문에 이렇게 한국에 오게 될 줄도 몰랐다”며 벅찬 심경을 드러냈다.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의기투합한 부블리와 작곡가 클로드 미셸 숀버그, 프로듀서 매킨토시는 프랑스판을 보완한 글로벌판 ‘레미제라블’을 무대에 올렸다. 작품을 잘 모르는 다양한 국가의 관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장발장이 가석방돼 시작하는 15분 분량의 프롤로그를 넣었다. 이 작품은 지난 1985년 초연 이후 53개국에서 22개 언어로 막을 올리며 1억3000만 명이 관람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정의 앞에 꺾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웠다. 2016년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 현장, 튀르키예, 미얀마, 홍콩 등의 민주화 운동 현장마다 ‘민중의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울려퍼졌다. 부블리는 “‘레미제라블’의 성공이 아직도 동화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프랑스어로 ‘레미제라블’은 ‘궁핍한 사람들’과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레미제라블’에서도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장발장의 인생 역전극, 대혁명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부블리는 “‘레미제라블’을 이해하기 위해선 제목을 생각해야 한다”며 “도둑이나 범죄자를 ‘미제라블’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결국 ‘미저리(궁핍)’가 ‘미제라블’한 짓을 범하게 만든다는 메시지”라고 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은 시대를 타지 않는 작품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사랑받는 거죠.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시대, 우리의 옆에도 선입견에 사로잡힌 자베르와 같은 사람이 있고, 삶에 배신당해 절망하는 판틴이 있어요. 이 작품의 넘버가 시위 현장에서 불리는 것도 놀랍지 않아요. 정치적으로 힘든 나라, 삶이 힘든 사람들이 많은 공감을 한다고 생각해요.”

뮤지컬 ‘레미제라블’ 프랑스 초연 극작과 작사를 맡은 알랭 부블리는 최근 한국을 찾아 “‘레미제라블’의 성공이 아직도 동화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레미제라블코리아 제공]

부블리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이다. 너무나도 오고 싶었던 한국이었지만, 다른 작품을 쓰느라 이제야 시간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오디션 때 들은 한국 배우들의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해서 (한국 공연을) 꼭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한국 공연에선 ‘장발장’ 역할에 최재림·민우혁, 장발장을 쫓는 ‘자베르’ 역에 김우형·카이가 출연한다.

“한국어 자체엔 굉장히 아름다운 선율이 있어요. 그런 점들이 ‘레미제라블’ 작품에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배우들이 너무나 훌륭하게 잘 하고 있어요.”

부블리는 세계 뮤지컬계의 살아있는 역사다. ‘레미제라블’로 몰리에르상을, ‘미스 사이공’으로 이브닝 스탠다드 그래미상을 들어올렸다. 두 개의 토니상과 두 개의 그래미상, 두 개의 빅투아르 드 라 뮤직상을 받은 그는 한국에서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동시대 한국은 독특한 점이 많아요. 대비되는 것이 많은 나라예요. 조선시대의 고전적 느낌과 현대가 어우러지고, 같은 시대 속에 여러 스타일의 음악이 존재하고, 골고루 사랑받죠. K-팝과 뮤지컬 넘버가 공존하고, 뮤지컬 안에서도 많은 장르가 한꺼번에 인기를 얻어요. ‘레미제라블’의 한국어 공연을 볼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다음에는 ‘미스사이공’으로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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