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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집 폐업 속출...부모들 아이 맡길 곳 찾아 ‘전전긍긍’ [0.7의 경고, 함께돌봄 2024]
낮은 출생률 보다 더 빠른 폐업속도
영등포구서만 1년사이 3곳 문닫아
“어린이집 찾아 목동까지 원정나서요”
2023년도 4분기 합계출산율이 0.6대가 전망되고 있을 정도로 매년 신생아수가 급감하고 있다. 이에 악화한 수익성에 폐업하는 민간어린이집이 급속도로 늘면서 부모들이 맞닥뜨린 보육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사진은 지난 연말 광주 북구청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청룡의 해를 맞아 용을 그리고 있는 모습. [연합]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사는 김민주(가명)씨는 지난해 가을 내내 만3세반 입학을 앞두고 있는 둘째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유치원을 물색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지난해에만 동네에 있는 민간 어린이집 세 곳이 줄폐업을 하면서 안양천 건너 목동 유치원들의 설명회를 다녔다. 다행히 운좋게 한 유치원에서 한 반을 새로 만들어줘서 들어가게 됐지만 등·하원시마다 목동까지 ‘라이딩’ 전쟁을 치러야 할 판이라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다. 김 씨는 회사 복직을 앞두고 있어 더욱 부담이 크다고 했다.

저출산 여파가 어린이집을 직격하고 있다. 막연히 출산율이 떨어졌으니 ‘어린이집 입학 경쟁률도 낮아지겠거니’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아이가 적게 태어나는 것 보다 어린이집 폐업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이다. 마땅히 아이 맡길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3일 보건복지부의 ‘보육통계’에 따르면 2022년 12월 31일 기준 어린이집은 3만923개로 집계됐다. 가장 어린이집이 많았던 2013년의 4만3770개와 비교하면 1만개가 넘게 사라진 셈이다. 특히 2020년부터 어린이집 폐원 속도는 더욱 가팔라져 매년 2000개 이상씩 문을 닫았다.

어린이집 폐업은 최소 충족인원을 못 맞추면 지원금이 끊기는 민간·가정 어린이집이 주도하고 있다. 2017년 1만4045개였던 민간 어린이집은 2022년 12월 기준 9726개로 감소했다. 가정 어린이집도 같은 기간 1만9656개에서 1만2019개로 내려앉았다. 10년 전인 2013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

그나마 국공립어린이집은 같은 기간 3157개에서 5801개로 늘었고 직장어린이집 역시 증가하면서 ‘어린이집 난민’이 된 아이와 부모를 받아냈다. 하지만 국공립어린이집은 태어나자마자 대기번호를 걸 정도로 경쟁률이 높아 들어가기 어렵다.

김씨 사례는 한 동네에서 민간어린이집 세 곳이 줄폐업하면서 타 지역으로 원정을 간 사례로 특히 주목된다.

보육업계와 영등포구 등에 따르면 지난해 2월 영등포구 문래동에 있던 ‘ㅂ어린이집’이 갑작스레 폐원하고, ‘ㅅ어린이집’이 임대료 체납으로 일방적 문자통지 후 하루아침에 문을 닫은 데 이어 ‘ㅋ어린이집’도 올해 초 폐원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문래동 등 영등포구 일대는 재개발로 아파트가 계속 세워지면서 인구 유입은 늘어나고 있지만 어린이집은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만1세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을 알아보던 손정아(가명)씨도 지난해 직장 복직을 앞두고 거주지인 영등포동의 한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뒀지만 폐업 예정이므로 대기를 취소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복직을 미뤄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남편 직장의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 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어린이집 부족 문제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주로 맞벌이부부가 생후 24개월 미만 아이를 맡기는 ‘0세반’ 이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 성모 씨는 가정보육을 최소한으로 하고 9개월된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알아보고 있다. 주변에서는 엄마가 좀 더 아이를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지만, 맞벌이를 계속 유지해야만 하는 경제적인 필요성에 이어 회사 적응을 하려면 기왕이면 빨리 복귀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다. 성씨는 양가 부모 모두 지방에 있어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0세반이 없는 어린이집이 태반이고, 간혹 있다고 해도 입소 대기를 걸어둔 사람이 적어 최소인원을 못 맞춰 폐강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으로 전국 어린이집 3만923곳 중 0세반이 없는 어린이집은 1만3129곳(42%)에 달했다. 이 비율은 최근 3년 동안 42∼44%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0세반 아동의 어린이집 이용률은 2018년 12월 18.5%에서 2022년 12월 24.8%로 크게 증가했다.

서울에서는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어린이집 가운데 0세반 및, 0·1세 통합반이 미설치 된 어린이집이 14%에 이른다. 서울 어린이집 10곳 중 2곳 가까이가 해당되는 셈이다. 지난해 기준 0세아는 2022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이며, 1세아는 2021년 1월 1일 이후 출생아다.

성 씨는 “3월로 대기를 걸었는데 신학기 입소희망자가 아직 우리 밖에 없다고 해서 다른 아이들이 제발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갈수록 신생아가 적어지다보니 어린이집 입장에서 0세반 운영을 꺼리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저희처럼 가뭄에 콩나듯 있는 수요조차 받아줄 곳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 입장에서 0세반은 운영하기 까다롭다. 서울지역의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보육교사들도 손목이 아프고 체력소모가 심한 0세반 맡기를 꺼리고 있는 데다 최소정원을 못 맞출 리스크까지 있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현행법상 0세반은 보육교사 1명당 돌봐야 할 적정 인원이 아동 3명으로, 아동 5명당 보육교사 1명이 투입되는 1세반, 아동 7명당 교사 1명이 필요한 2세반, 아동 15명 당 교사 1명이 배정되는 3세반에 비해 인건비 부담이 큰 편이다.

경력 17년차인 보육교사 표모 씨는 “한 지역에서 오래 일하다보면 그 지역에서 신혼부부 유입이 멈추고 0~3세반이 미달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며 “원래 살던 사람들 아이는 계속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는데,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새로 들어올 어린 아이를 둔 부모가 이사를 안 오니 어린이집이 자꾸 문을 닫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민간어린이집은 보육교사가 매년 원장과 재계약을 해야 하기에 근무 안정성도 떨어지고 노동강도가 체감상 더 세다”며 “그 중에서도 0세반은 ‘왕중왕’에 해당하기에 대부분의 보육교사는 그 반을 맡기를 기피한다”고 귀띔했다.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 시대에 소아과, 산부인과 병원이 자꾸 없어져서 태어난 아이 키우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것처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도 비슷한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것”이라며 “그러다보니 가정 보육 여력이 없는 맞벌이 부부가 가장 크게 타격을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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