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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장금 요리사’ 윤인자 “냄새 들릴 때마다 행복해”[스.우.파]
45년 한식 전문가…윤인자 요리연구가 인터뷰
“요리 너무 사랑해서 힘든 일 있어도 힘든 줄 몰라”
편집자주

‘스’타는 아니지만, ‘우’리 주변의 ‘파’급력을 만든 사람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사회 곳곳의 소중한 사람들을 헤럴드경제가 소개합니다.

윤인자 요리연구가.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한식은 건강하다’는 사실은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말해줘요. 맛도 좋고 건강하기까지 한 음식인데 누구나 좋아할 수 밖에 없죠.”

45년 전부터 한식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을 품어오며 ‘한식 외길’ 인생을 걸어온 이가 있다. 윤인자 요리연구가다. 그는 1979년 요식업에 뛰어들어 현재는 고려직업전문학교 호텔조리학과 교수이자 글로벌K푸드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최고 시청률 57.8%를 기록한 드라마 ‘대장금’에 자문 위원으로도 참여한 바 있다.

윤 연구가는 40년 넘도록 한식의 맛과 건강을 연구하고 알려왔지만 공부할 것은 ‘여전히’ 많다고 했다. 그는 “같은 재료도 지역과 계절에 따라 맛이 다르고, 불 세기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등 조리 과정에 따라 요리의 완성도도 달라진다”며 “아직도 우리 음식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과정이 재미있다”라고 했다.

레시피 대신 ‘요리 DNA’로…“고집스러워도 재료는 당일 구입이 철칙”
윤인자 요리연구가가 지난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윤 연구가의 ‘요리 일대기’ 시작은 그가 21살이 되던 해다. 20대에 접어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한 윤 연구가는 막내 시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독립문 근처에서 갈비와 우거지탕 등을 파는 식당을 열었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요리 DNA’를 믿고서다.

윤 연구가는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서인지 어떤 음식을 한 번 맛 보고 나면 별도의 레시피가 없어도 뚝딱 만들 수 있었다”며 “요리가 너무 재밌어서 뭣도 모르는 나이에 패기 하나로 음식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타고난 요리 DNA가 매출을 보장해주진 않았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2년 만에 식당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그래도 윤 연구가는 요리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다. 주저앉기보다 다시 부딪혀 보기로 했다. 그는 독립문 근처에 ‘서당골’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한식 전문점을 개업했고 서당골은 1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켰다.

윤 연구가의 재도전이 빛을 발하게 된 건 ‘좋은 재료’에 대한 고집 덕분이었다. 당일 요리에 필요한 재료는 당일 구입이 철칙이었다. 그는 “좋은 재료라는 게 꼭 비싼 것만은 아니다. 신선한 재료가 가장 좋은 재료이다”라며 “요리하는 날 (재료를) 사와서 썰고 조리하는 것이 곧 맛이고 영양”이라고 말했다.

그의 ‘고집스러운’ 철칙 때문에 경영의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했다. 매출 대비 영업 이익이 높지 않았던 것이다. ‘이래선 남는 게 없다’는 직원들의 항의도 빗발쳤다. 그럼에도 윤 연구가는 손님에게 최상의 맛을 전하기 위해 철칙을 깰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철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겠지만 이익이 적게 남더라도 낙지 볶음에 들어갈 낙지는 크고 실한 것으로 구해와야 했고 녹두빈대떡에 들어갈 녹두는 고소한 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손님이 주문하는 즉시 갈았다”라고 했다.

늦깎이 대학생부터 ‘대장금’ 자문까지…“모든 경험은 축적된다”
윤인자 요리연구가가 지난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20대 초반부터 몸소 부딪히며 쌓아온 윤 연구가의 ‘음식 장사’ 경험은 한식을 보다 깊게 학문적으로도 살펴보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그는 과감히 요식업으로 실무를 익혔던 10여년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고 1996년 대한민국조리기능장에 도전해 자격증을 취득했다. 또 늦깎이 대학생이 돼 조리학을 전공하고 조리외식경영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공부하면서 외식업 등에 관심을 갖는 중·고등학생에게 한식을 가르치기도, 드라마 ‘대장금’의 자문 위원단에 참여해 동국세시기, 요록, 농가집서, 사시찰요초 등의 고조리서를 읽고 정리하기도 했다.

윤 연구가는 “이런 저런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실패든 성공이든 모든 건 다 ‘경험’으로 남는다는 것을 배웠다”며 “지나간 시간에 후회는 없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경험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낯선 환경이나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냐는 질문에 윤 연구가가 단호히 ‘없었다’고 답한 이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난 요리를 너무 사랑해서 요리와 관련된 모든 과정 자체를 즐겼다”며 “남들이 어렵다고 보거나 문제 있다고 여기는 것들도 내게는 다 하나하나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었다”라고 했다.

지금도 윤 연구가는 코 끝으로 맛있는 냄새가 올라올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냄새가 들린다’라고 표현한다. 윤 연구가는 “기름에 향신 재료를 넣고 볶을 때 맛있는 냄새가 코 끝을 건드리는 순간 행복이 극에 달하는 것 같다”라며 “그 냄새를 ‘들으면서’ 맛있는 음식이 완성될 것을 기대하게 된다”라고 했다.

음식물 쓰레기 줄이는 것도 ‘요리’…“요리 통해 ESG경영 실현하고파”
윤인자 요리연구가가 지난 12월 29일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한식이 맛 뿐 아니라 건강에도 좋아 하루도 빠짐없이 한식을 직접 요리해 챙겨 먹는다는 윤 연구가. 그는 “한식은 구이, 찜, 데쳐서 무치는 등의 습열 조리법이 많아 저열량인 데다 발효 음식이 많고 도라지, 인삼, 대추, 생각 등 약용 재료를 자주 사용해 영양학적으로 우수하다”라며 “이런 한식의 우수성을 알고 건강에 좋은 한식을 식생활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윤 연구가는 패스트푸드나 자극적인 배달 음식 등을 즐겨 찾는 현대인의 식습관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요리는 건강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윤 연구가에 따르면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식단 구성부터 식재료 준비, 조리, 상차림 등 음식이 식탁에 올라갈 때까지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행위다. 그는 “식재료를 직접 키워도 보면서 특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 요리하는 공간을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것 등 음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들을 확인하는 작업도 요리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버리는 음식을 줄이는 것도 요리의 한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양파와 무, 당근 등의 채소 껍질도 버리지 않고 음식에 넣고 활용함으로써 음식물 쓰레기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브로콜리의 경우, 줄기를 갈아 망에 거른 뒤 주스로 마시거나 전을 부칠 수 있다. 양파 껍질이나 파 뿌리도 깨끗하게 세㎠척해 찌개 등에 넣어 육수를 우려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윤 연구가는 “사실 환경을 위해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지만 많이들 간과하고 있다”며 “요리 연구가로서 버리는 식재료 없이 건강한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널리 알려 친환경 사회와 ESG경영에 기여하고 싶다”라고 했다.

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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