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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혼모가 피의사실?'…이선균 협박범 사생활 공개에 열광하는 대중들 [김성훈의 현장에서]
유흥업소 여실장과 함께 배우 고 이선균씨를 협박해 금품을 뜯은 혐의를 받는 20대 여성 A 씨가 28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이선균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여성의 신상 정보가 한 유튜버에 의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신상 공개에 찬사하는 목소리가 큰 가운데, 무분별한 사생활 공개는 자제돼야 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무분별한 사생활 공개로 안타깝게 소중한 배우를 잃었지만,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면 그것이 피의사실이건 사생활이건 뒤를 캐야겠다는 대중들의 욕망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유튜버 '카라큘라 범죄연구소'(이하 카라큘라)는 지난 29일 이선균을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A 씨의 신상을 공개했습니다. 그의 이름과 얼굴, 나이는 물론이고, 미혼모라는 사실, 출신 지역까지 공개했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공개를 칭찬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높았습니다.

헤럴드경제는 이에 지난 30일 과도한 신상 공개를 비판하는 기사를 냈습니다.(12월30일자 〈이선균 공개는 욕하고, 협박범 공개는 열광…두 얼굴의 대중〉) 과도한 신상 공개는 사적 제재이자 명예 훼손에 해당하는 범죄적 행위이며,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비판입니다. 댓글 상의 여론을 보면 공감해주시는 분도 일부 있었지만, 역시 대부분은 신상공개를 응원하는 글이었습니다.

기사가 나가고 몇시간 뒤 카라큘라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해당 기사에 대해 "A 씨가 건네준 녹취록을 받아서 언론이 공개한 것은 공적제재였나, 무죄 추정 원칙 지켰나, 피의사실 공표죄 아닌가"라고 반박했습니다. 또 "유명인 포토라인 세워서 사생활 다 까발리고 앞다투어 기사 낸건 정당하고 공정한 참된 언론의 순기능이었나"라고도 했습니다.

고(故) 이선균의 영정사진 [연합]

피의사실 및 신상에 대한 공개를 어디까지 해도 되는가는 매우 논란이 많은 이슈입니다. 다만 그 어떤 행동이건 법의 테두리 내에서 해야한다는 것은 기본 상식입니다.

피의사실 공표는 형법에서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원 최종판결이 나기까지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혐의가 먼저 알려지면 여론 재판을 받을 수 있고 명예가 훼손되는 등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유명인의 경우, 공익상 보도가치가 있다면 또 다른 헌법상 가치인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피의사실 공표가 어느 정도는 허용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입니다. 실제 독자 독자들이 접하는 사회 기사 상당수가 경찰, 검찰 수사 단계의 피의사실이 공표된 것입니다.

배우 이선균도 마약투약 피의사실이 경찰을 통해 알려져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통상적인 수준의 보도였습니다.

문제는 사생활 보도입니다. 이선균이 또 다른 협박범인 유흥업소 여실장과 주고받은 통화내용은 대부분 사생활에 해당하며, 피의사실을 간접적으로 입증하는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보도를 한 언론사는 자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헤럴드경제는 가장 문제가 됐던 KBS의 통화내용 보도 다음날인 11월27일 사생활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며 자제를 촉구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소수의 목소리에 그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11월27일자 〈"적당히 해라" 이선균 도넘은 피의사실 유포에 여론 싸늘〉)

[게티이미지뱅크]

'공익을 위해 피의사실은 보도될 수 있고, 사생활 보도는 자제돼야 한다'는 원칙은 이선균 협박 혐의를 받는 A 씨에게도 적용돼야 합니다. 이에 언론도 A 씨의 피의사실을 보도해 왔습니다.

다만 그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는 것은 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사안입니다. 대법원이 1998년 "범인이나 범죄혐의자에 대한 보도가 반드시 범죄 자체에 대한 보도와 같은 공공성을 가진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라며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까지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을 공개해 보도했던 언론사들은 이후부터는 익명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선균처럼 유명인이거나, 수사기관에서 공적으로 신상 공개를 결정한 경우는 실명이 보도됩니다.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은, A 씨가 미혼모이고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점 등은 그의 혐의와는 무관한 사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선균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이 잘못이었다고 우리 사회가 반성했다면, A 씨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것도 자제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비교적 폭넓게 허용한다는 미국에서도 그런 점들을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지난 10월 국회 본회의에서 특정중대범죄 피의자 등 신상정보 공개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

사적인 신상 공개는 범죄자에 온정적인 현행 사법체계에 대해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공적인 절차를 거쳐서 제도개선으로 해결해야할 문제이지 카라큘라처럼 법을 어기는 방식으로 대응할 문제는 아닙니다. 단순히 신상 공개 유튜버의 레이더에 걸렸다는 이유로 온라인 상에 신상이 박제돼 조리돌림 당하고, 여론의 주목을 피했다는 이유로 덜 고통받는 불공정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A 씨보다 더 악질적인 범죄자지만 신상이 공개되지 않은 이들도 많으니까요.

사적으로 정의를 구현하겠다며 신상 및 사생활을 공개했다가 엉뚱한 사람을 공개해 말썽을 일으킨 경우도 툭하면 발생합니다. 이번에 A 씨의 신상 공개된 이후에도 이름만 같고 전혀 다른 사람을 A 씨라고 지목한 온라인 게시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제도 개선을 통해 잘못에 부합하는 공정한 처벌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접근해야 합니다. 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불법이 정당화되고 찬사받기까지 한다면 우리 사회는 무법천지가 될 것입니다.

카라큘라는 일개 유튜버가 아닙니다. 구독자 127만명을 확보한 하나의 언론사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시는 기사를 쓰고 있는 기자의 포털사이트 구독자는 고작 8000명도 안됩니다. 언론과 유튜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대입니다. 언론에게 윤리가 요구되듯, 유튜버에게도 윤리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카라큘라는 30일 미국으로 도주한 전세사기 피의자 부부에 대한 또 하나의 영상을 올렸습니다. 2024년 1월15일까지 귀국해 자수하고 자신에게 세부 일정을 보내라는 내용입니다. 그는 그러면서 "그렇지 않으면 피의자 부부의 얼굴이 들어간 의료 등 굿즈(물건)를 제작해 구독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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