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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보 유출, 공개 소환, 진술 의존…유명인 마약수사 과제 남은 경찰
내사 단계에서부터 ‘유명배우 L씨’ 언급
총 3차례 공개 소환, 포토라인서 심리적 압박
전문가 “마약수사 진술 의존 한계 분명” 인정하면서도
“망신주기 자제, 무죄추정의 원칙 지켜져야” 제언
마약 투약 혐의를 받은 배우 이선균(48)씨가 23일 오전 3번째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경찰청 마약범죄수사계에 출석하던 당시 모습.[연합]

[헤럴드경제=이세진·박지영 기자]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배우 이선균(48) 씨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이 내사 중인 마약 사건에서 ‘유병배우 L씨’가 처음 언급되고, 곧이어 그가 이 씨로 지목된지 2개월여 만이다.

간이시약 검사와 정밀검사에서 모두 마약 음성 판정이 나왔지만 진술에 의존한 경찰 수사는 지속됐다. 그 사이 이 씨는 세 차례나 ‘포토라인’ 앞에 섰다. 내사 단계에서의 정보 유출, 관행이 된 연예인 공개 소환조사, 진술에 의존한 마약 수사 등이 그를 극단 선택으로 내몰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수사에서의 무죄추정 원칙을 바로 세우고 수사 전문성, 인권보호 원칙 또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이 씨의 마약 투약 혐의에 대한 수사는 전날 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종결될 예정이다. 앞서 가수 지드래곤(35·본명 권지용) 등을 피의자로 입건하며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경찰의 광범위한 연예인 마약 범죄 수사가 결국 성과 없이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경찰은 이 씨가 공갈 혐의로 고소했던 유흥업소 실장 A씨와 20대 여성 B씨에 대한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 차례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에 출석하지 않고 도주했던 B씨는 전날 경찰의 강제구인으로 체포됐다.

경찰은 일각에서 제기된 강압 수사 의혹에는 선을 그었다.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본지 통화에서 “소환 조사에서 모두 변호사가 동행했고, 야간 조사도 본인의 동의 하에 이뤄졌다. 조사 전 과정이 녹화돼 있다”면서 수사 과정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다만 수차례의 ‘망신주기식’ 공개 소환과 정보 유출 등 그동안의 수사 관행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단순 첩보를 토대로 기초 조사를 하는 내사 단계에서부터 이 씨의 이름이 새어나간 데 이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 수사를 당사자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섣불리 공개 수사로 전환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 씨가 숨지기 나흘 전 3차 조사를 앞두고 변호인을 통해 비공개 조사를 요청했으나 경찰이 이를 거부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 씨의 심리적 부담감을 키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다른 범죄자들에게는 신상공개 대상이 되지 않았다면 소환조사에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주는 등 조치를 취하지만, 연예인 같은 경우는 이름이 알려지게 되면 이런 조치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건물 지하로 들어가게 하는 식으로 공개가 안 되게 하면 또 특혜처럼 비춰질 수 있다”면서 유명인 수사를 다루기 어려운 측면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도 “공개 소환은 수치심을 주기 위한 것 외에 목적이 없지 않느냐”면서 “심리적 억제 효과를 줄 수는 있겠지만, 우리 헌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규정한 상황에서 이미 죄인 취급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의 내사 정보 보안도 지적됐다. 이웅혁 교수는 “피의자가 되고 나면 세간에 알려질 수 있지만 내사 단계에서 밀행성이 확보돼야 했다”면서 “아직 뚜렷한 범죄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닌 단계에서 여러 채널로 알려지게 된 것은 공적인 이미지를 생명으로 하는 배우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증이 사라진 상태에서 진술에만 의존한 마약 수사 한계도 지적됐다. 경찰은 이 씨에 대해 1차 간이시약 검사와 2차 정밀감정을 실시했지만 모두 음성 판정이 나온 가운데, 마약 투약 등 전과 6범인 A씨 진술에 의존해 수사를 시작하면서 제때 구체적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윤호 교수는 “마약수사는 피해자가 없는 범죄이기에 현장을 덮치지 못하고 마약 검사도 음성이 나온 상황에서는 진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분명하다”면서 “경찰도 방법을 달리하고 몇 차례 그를 소환하는 식으로 수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교수는 “오락가락하는 A씨 진술만 믿고 신빙성 판단에 실패한 점은 수사의 실력이기에 이 부분이 상당히 아쉽다”며 “마약 수사 인력을 늘리고 신빙성 판단 및 정보 관리 기능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이씨는 전날 오전 10시30분께 서울시 종로구 와룡공원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장례는 유가족과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용히 치러질 예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jinlee@heraldcorp.com
g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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